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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괜찮아 Jun 02. 2024

직업으로서 소설가_ 하루키 무라카미

Haruki Murakami:  Novelist as a Vocation

그 어떤 일본 작가와의 인연


오래전, 미디아에서 떠들썩하게 소개가 되어서 <상실의 시대>라는 일본 영화를 보았는데 영 와닿는 것이 없었다.  궁금해서 소설을 읽었다.  여전히 그 상실의 실체가 잡히지 않았다. 나와 하루키와의 만남은 그렇게 실망으로 시작하였다. 사실 작가의 이름도 몰랐다. '그냥 일본작가'였다.   몇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지인이 재미있다며 <1Q84>란 책을  선물해 주었다. 너무 재미있었다. 무언가 알듯 말듯한 이야기, 현실인 듯, 판타지인 듯, 슬프면서도 황당한 이 소설에 흠뻑 빠졌었다 당시 나는 간단한 수술을 하러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밤 10시가 되면 입원실의 불을 꺼졌다.  나는 복도에 나와 이 소설을 읽을 정도로 이 책은 매력적이었다. 이때 이 소설의 작가는 '괜찮은 일본 작가'였다. 그러고 나서 하루키란 이름을 정확히 들은 것은 달리기 관련 포스팅에서 소설가로서 글쓰기와 달리기의 루틴을 꾸준히 하는 예로 많이 나와서  하루키 무라카미라는 이름을 정확히 알게 되었다.


2년 전, 시애틀에서 책방에 들렀는데 하루키의 단편집, <Men without Woman: 여자 없는 남자들(번역본) > 이 있었다.   그 책의 첫 단편이 <Drive My Car (드라이브 마이카)> 이였는데 딱 내 취향이었다. 그래서 작가로서 하루키에 대해 알아보았더니 내가 알고 있었던 '그냥 일본작가' '괜찮은 일본작가' 모두 같은 하루키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에 대한 삶이 궁금해지고 나 또한 글을 잘 쓰고 싶은 바람이 커져가면서 이 책을 자연스럽게 선택하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작가가 되고 싶어졌다


 이 책은 1949년생, 일본의 유명작가인 하루키 무라카미의 에세이집으로  작가가 된 스토리, 작가로서 성공하기 위한 요소들에 대하여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한다.


그가 작가가 된 계기는 정말 작가를 지망하는 사람들이 로망으로 생각하는 '어느 날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 졌다'였다. 하루키는 60년대 와세다 대학을 들어갔는데 당시 사회주의 사상의 열풍으로 인해  학교는 늘 데모를 하고, 심지어는 폭력에 살인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원래 일본식 교육체제를 싫어하던 하루키는 학교를 휴학하고 여자친구와 일찍 결혼을 하고 재즈바를 운영하면서 20대를 보낸다.  대출한 돈을 갚기 위해 열심히 일 하던 중에, 우연히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면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그래서 재즈바를 운영하면서 남는 시간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고 '군조'라는 문학지에 투고를 했다. 그는 그 소설이 맘에 안 들어 원고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신인상을 받게 된다. 결국 자신이 결국 소설가의 삶을 살게 될 거라는 확신이 굳어졌고 그는 나름 잘하고 있던 바를 처분하고 전문적인 작가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하루키가 '어쩌다 작가'가 된 것처럼 보이는 그 비하인드에는 그의 광범위한 독서의 이력이 있다. 일본식의 주입식 교육이 불만인 하루키는  그 지루한 중, 고등학교 생활을 영어원서 읽는 재미로 간신히 버틴다. 그는 책을 무게에 따라 값을 메기는 고물상에 가서 헐값에 영어원서책을 한 아름 사서는 종류 가리지 않고 읽었다. 그 독서력이 그의 작가로서의 기본기가 다져진 것이다. 그 또한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 최우선으로 장르, 퀄리티 따지지 말고 무조건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하고 있다.



달리는 하루키


온전한 삶을 사는 작가


보통 사람들이 작가에 대해 가지고 있는 오래된 선입견 중의 하나는 작가의 삶은 정신적인 것이 중요하고 육체적인 것은 무시해도 된다는 것이다. 하루키는 이러한 인식에 정면적으로 도전한다. 글 쓰는 작업은 오롯이 혼자만이 하는 외로운 작업이다.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은 상당히 힘들고 어두운 과정이다. 그리고 날마다 다섯 시간씩 책상에 앉아 언어로써 그 아이디어를 형상화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쉽지 않다.  한 권의 소설이 나오기까지는 물론이고 그 후에도 상당한 혼란을 경험해야 한다. 그래서 작가는 정신적으로 강해야 한다(mental toughness).  하루키는 소설가라는 직업을 잘 해내기를 원하면, 일단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란 육체적 건강이 나빠지면  정신적 건강도 나빠지고 더불어 심리적 민첩성이나 감성적 유연성이 저하되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아침 4시쯤 일어나 5시간 동안 일본 원고지 10장 정도의 글을 쓴다. 더 쓰고 싶은 날도, 반대로 쓰기 싫은 날도 반드시 10장에서 멈춘다. 지속적으로 같은 속도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5시간의 작업 후에는 그는 자유시간을 보낸다. 자유시간은 10K를 달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중에는 수영, 자전거도 시도하여 결국 철인 삼종 경기도 성공한다.  그가 달리기를 선택한 이유는 그냥 달리기가 본인과 맞아서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달리는 것이 단순히 건강을 위한 것 이라기보다는 이 생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 중에 하나로 느껴진다고 그는 고백한다.  일종의 주문(mantra)처럼.


  " 어떤 일이 있어도 이것은 내 삶에서 꼭 해야 하는 일이다" (No matter what, this is something I have to do in my life)"  


 하지만 이는 육체가 정신보다 앞선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가 중요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삶을 온전히 사는 것(Living Fully)"이다. 육체적 건강과 정신적 건강이 서로 두 개의 축이 되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작가의 삶을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삶의 양식 (Framework)을 추구한다.



 

Haruki and his wife Yoko


온전한 작가로서의 삶

하루키는 온전히 작가로서 살기를 원한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작업과 관련하여서는 모든 것이 그의 내적인 영역에서 시작한다. 그는 자신의 소설의 고유성 (Originality)이 자유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면서 즐기는 자유로움을 다른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자연스러운 충동으로부터 온다'라고 한다. 그는  소설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기지 않을 때는 쓰지 않는다.  대신 번역을 하거나 에세이를 쓰면서 쓰고 싶은 마음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그래서 그는 마감날을 절대로 정하지 않는다.


한번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장편소설의 경우 6개월 정도면 초고가 완성이 된다. 여기서부터 주변에 보여주면서 (일단 부인에게 제일 먼저 보여준다) 재고의 과정을 여러 번 거친다. 그는 Rewriting과 수정, 그리고 교정에 상당한 시간과 글을 쓰는 이상의 노력을 한다.  자신이 만족이 될 때 그는 출판을 한다.  최선을 다했으므로 출간 후에는 독자들의 반응에는 신경이 쓰이지만 평론가의 평에 큰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신경을 쓴들 바꿀 수도 없으니. 그는  '시간이 더 많았으면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었을 텐데' 또는 ' 마감일이 닥쳐야 글이 잘 써진다'와 같은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로 시간을 조정(control)해야지 거꾸로 시간이 우리를 조정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그가 진정한 작가로서의 살아가려 하는 모습은 그가 자신의 소설을 외국에 소개하게 되는 과정에서도 잘 드러난다. 90년대 일본이 Economic Bubble (하루키의 표현)이 되자, 그에게  여기저기서 다양한 제의가 온다.  '돈은 얼마든지 대 줄 테니 세계각국을 다니며 여행하는 글을 써달라'라고 하는 등 그냥 본인이 마음만 먹으면 편하게 글 쓰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들이 많이 제시되었다. 그는 이러한 유혹을 떨쳐버리기 위해 미국으로 거주를 옮긴다. 그리고 자신의 작품을 글로벌 마켓에 내놓는 작업을 한다. 다른 일본 작가들이 주로 에이전트들에게 모두 맡기는 것과 달리 그는 자신의 작품을 자신이 선택한 번역가가 번역을 하게 하고, 그 번역 초고를 본인이 검수한 후 에디터들에게 투고한다. 미국 문학계에 신인작가로서 미국작가와 동등하게 경쟁하는 모습니다. 결과적으로 그의 작품은 서서히 미국출판계에서 베스트셀러로 진입하게 된다.  내가 실망했던 그 <상실의 시대>의 원작인 <Norwegian Wood>는 미국에서도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하루키의 이름을 글로벌하게 알리는 계기가 된다. 그의 작품들은 러시아와 동부 유럽에서도  베스트셀러로 각광을 받게 된다. 


실지로 구글링을 해 보니 다수의 하루키 작품들이 영어로 번역되어 있고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하루키가 소설가라는 가진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 직업을 자신의 천직으로 여기고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조금은 관조적인 그의 소설의 주인공들과 달리 이 책은 하루키의 고뇌와 격정이 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다고 할 수 있다. 하루키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그의 에세이는 좋다고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그의 소설들을 많이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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