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Claire Keegan
이 책은 한국에서 <맡겨진 소녀>로 번역이 되어 알려진 책이다. 2009년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 (Claire Keegan)의 단편소설이며 아일랜드에서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2010년에 '뉴요커( The New Yoker) '에서 그 요약본이 소개되었다가 곧 단독 출판되었다.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라고 한다. 이 책은 아일랜드의 교과과정에 들어가 있어 청소년기부터 읽게 되는 국민소설로 성장하였다. 2022년에 말없는 소녀 (The Quiet Girl)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이 영화도 많은 국제영화제에서 수상하였고 2023년에 오스카상의 후보작으로도 올랐다. 영화는 소설에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클레어 키건은 1968년생인데 1999년에 작가로 등단하였다. 첫 작품부터 작가상을 획득하는 등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24년에 걸친 작품활동에서 단 네 권의 책만 출판하였다. 처음 두 권, (남극 Antaratica, ' 1999; '푸른 들판을 걷다 Walk the Blue Fields', 2007) 은 단편집이고 나머지 두 권은 ('맡겨진 소녀 Foster, 2009;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 2022) 단편이다. 뒤의 두 권은 영화화되었다.
이 책의 배경은 1980년대 초반으로 짐작되는 아일랜드의 시골에서 가난한 집의 소녀가 엄마가 동생을 출산하기 전까지 먼 친척의 집에 보내지는 것으로 시작한다. 소녀의 집은 아이가 많은데 엄마는 또 다섯 번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이고 아빠는 무능력하고 무책임하다. 소녀는 전혀 아이로서 보호나 배려를 받지 못하고 존재감이 없는 아이로 살아가고 있었다. 반대로 포스터 부모 (임시 양육 부모)인 킨셀라 부부는 이 소녀의 손을 잡고 걸어주고 같이 요리를 하는 등 살뜰하고 세심하게 배려하고 돌봐준다. 소녀는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는 다정한 행동과 표정, 손길,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우연히 그 부부가 아들을 잃은 슬픈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세 사람의 거리는 더욱 좁혀진다. 그러나 동생이 태어나고 소녀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집에 돌아온 소녀, 무언가 달라진 소녀를 바라보는 엄마, 떠나는 킨셀라 부부, 말이 없었던 소녀는 드디어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한다.
처음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이게 뭐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더구나 영어 원서는 아일랜드식 언어 방식이랑 시골의 가축들 관련 용어, 생활용품, 그리고 식물에 관한 단어등 모르는 단어가 많이 나와서 사전 찾으며 읽다 보니 읽는 재미가 반감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후반부는 잔잔함 속에서도 강렬함으로 남아 여운이 꽤나 깊었다. 그래서 책을 다시 펴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나중에 다른 사람들의 리뷰를 읽어보니 클레어 키건의 작품을 읽는 사람들은 많이 경험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이 익숙할 수 있는 스토리와 플롯인데 스토리가 생생하고 구체적이다. 마치 독자가 그 소녀가 되어 생각하고, 걷고, 슬퍼하였던 특별한 이야기로 느끼게 만든다. 작가의 필력을 느끼게 해 준다.
클레어 키건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짧다는 것이다. 분량도 짧고 문단도, 문장도 짧다. 내가 킨들로 읽은 분량은 51페이지 해당한다. 하지만 읽고 나면 하나의 장편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그 책에 쓰인 문장, 단어 그 어느 하나도 버릴 게 없다. 작가가 자신이 쓴 원본에서 한 10번쯤은 덜어내기를 했을 것 같은 문장이다. 작가 스스로 " 내 많은 작업은 노동의 흔적을 없애는데 쓰인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단어가 간결한데 함축적이다. 작품에서 그 어떤 단어도 뺄 것이 없어 보인다. 그래서 그녀에 대하여 '단어 하나 낭비하지 않는 작가' (The New York Times)*라 한 것은 과언이 아니다.
한 단어가 예민하고 정확하면서도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보니 문장들이 간결하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다. 따라서 이 책은 사건의 진행 위주로 읽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음미해야 할 것 같은 책이다. 그 책이 풍경묘사가 나오면 한 번 그 풍경을 그려보고, 아이가 킨셀라 부인과 손잡고 걷는 장면이 나오면 그 풍경 속에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을 음미할 때 이 책의 진정한 맛을 느낄 수 있다. 독자가 상상을 하고 느낄 부분을 여백으로 나누어 둔 느낌이다. 그렇게 작품속의 속도와 같이 읽어가다보면 작가가 단어와 단어사이, 문장과 문장사이에 덜어냈던 부분들이 손끝에 조금씩 만져지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부분을 독자 스스로 캐치해야 한다. 그 분위기를 정확한 단어로 선명하게 전달하였지만, 그 구체적인 해석은 독자에게 맡긴다. 작가는 '애써 설명하지 않고 독자의 지력을 믿는다'라고 하였다. 덕분에 독자는 더욱더 소설 속 모든 것들에게 깊숙이 눈과 귀를 대게 된다. 이것이 극대화된 것이 마지막 문장에 대한 해석이다. 한국의 유명한 영화 평론가가 마지막 문장에 대한 이해가 이 책의 전체적인 감상을 오히려 좌우하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는데 실제로 Reddit의 독서 토론 커뮤니티에서 보면 소녀가 아버지로부터 학대당했다고 하는 해석까지 있는 것을 보면 독자들 지력 또한 다양함을 볼 수 있다.
작가는 이책의 끝에 '사랑과 다정함조차 아플 때가 있다. 태어나 그것을 아직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헌정한다고 적어 놓았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일단 안도의 숨이 쉬었다. 소녀가 킨셀라 부부로 받은 사랑과 배려의 경험이 너무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소녀는 삶의 비밀을 알아버렸다. 나는 마지막 이 책의 문장을, 자신이 사랑과 배려를 받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 소녀는 이전에 당연하게 생각했던 무시와 숨김의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여운이 오랫동안 남는 소설이다. 그리고 내가 어른으로서 세상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생각을 해보았다.
*: https://www.nytimes.com/2022/11/05/books/claire-keegan-foster-book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