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도 밥 먹었는지 물어본다.

바쁘냐고 물어보는 너에게 건네는 이야기


“낀 카오 래오 버?” (밥 먹었어?)

“빠이싸이?” (어디 가니?)

“빠이싸이 마?” (어디 다녀오니?)


내가 머무는 농장과 마을 청소년센터 사이 거리는 200 미터 남짓. 엎어지면 코 닿는다는 그 거리. 대부분의 하루를 농장과 청소년센터를 부지런히 오가며 보낸다. 자전거 타는 것도 시원찮고, 조금만 무리하면 앓는 통에 당분간 그저 가까운 거리만 싸복싸복 오가면서 지내라는 탐디(삼 개월의 시간을 엄마처럼 살뜰하게 챙겨준 이, 일명 '라오 엄마', 그러나 생물학적 성별은 남성)의 엄명을 받았다.


150130 (3).JPG 농장과 청소년센터를 잇는 흙 길,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그 길


그러다보니 생활의 폭이 크질 않고 기껏해야 탐디 집으로 가거나, 센터로 가거나 아니면 거기서 돌아오는 길인데도 나를 볼 때마다 농장 팽완 아주머니께서는 꼭 어디 가는지, 어디에서 오는지 묻곤 하신다. 그러면 조각난 단어들과 춤추는 손짓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오는 길인지 답하면 꼭 덧붙여지는 말이 있다.


“낀 카오 래오 버?” (밥 먹었니?)


“낀 버?” (먹을래?)


우리 동네 식으로 좀 더 구수하게 풀어보면 “밥 먹었는가?”, “먹을텨?” 이런 느낌이겠지. 처음에는 방금 먹고 왔다고 대답하며 먹었던 음식들을 열심히 열거하다가 막히면 바보같이 헤벌쭉 그저 웃곤 했다.


IMG_2118.JPG 초창기, 음식 못하는 두 사람이 모이니 거의 시장 반찬과 생야채에 의존한 맛난 식사


카우냐우 (라오식 찰밥)

삥빠 (생선구이)

씬 무(돼지고기)

째오 막꾸어이 (가지 양념반찬) *제일 좋아하는 반찬 중 하나

막댕(오이)

쏨팍(라오식 물김치) *한 때 쏨팍 여인이라는 별명까지 안겨준, 라오식 물김치라고 할까나.


손가락으로 꼽으며 한 단어씩 뱉어낼 때마다 아주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시며 웃어주시곤 했다. 다른 농장식구들도, 또 청소년센터 친구들도 어슬렁어슬렁 지나가는 나를 보면 꼭 “빠이 싸이” (어디가니?), “낀 카오 래오 버?” (밥 먹었어?)” 라고 물었다.


이게 얼굴을 아는 이들끼리 흔히 챙기는 라오식 인사라는 건 조금 지나 알게 되었다.


이젠 누군가 나를 불러 세워 밥 먹었냐 물어보면 씩씩하게 대답한다.


“낀 래오! 짜오 데? (밥 먹었어요. 식사 하셨어요?)


사실 우리네에게도 익숙한 인사 아닌가.


“밥 먹었어요?”

“식사 하셨어요?”


끼니 챙겨먹는 게 큰 일 이었던 그리 멀지않은 그 옛날엔 누군가를 만나면 밥은 굶지 않고 잘 먹고 다니는지를, 또 밤새 별 일 없었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밤새 안녕했는지, 쌀 떨어지지 않고 밥은 먹고 다니는지를 물어보며 서로의 낯빛을 살피고, 사정을 챙겼으리라. 그렇게 물어왔던 게 어느새 굳어져 그저 우리들한텐 자연스런 인사말이 되었다.


“안녕하시죠?”

“밥 먹었어?”

“식사하셨어요?”

오랜만에 만난 이에게 건네는 “잘 지내지?”, “잘 지내시죠?” 까지.



그런데 이 잘 지내는지, 밥은 먹었는지, 안녕하는지를 묻는 인사를 대체하는 새로운('새로운'의 기간과 질감은 나중에 더 알아보기로 하고) 표현이 있다.


“바쁘시죠?”


이 바쁘냐고 묻는 인사말은 특히나 사회생활을 한다는 소위 성인집단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쓰인다. 이 질문에 대한 예상 답안도 만들 수 있다. 아주 일차원적인 예시를 들어보자.


A: 요즘 바쁘시죠?

(두 개의 예상 답변)
1. B: “아이고, 말도 마세요. 요즘 OOO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2. B: “네, 좀 바쁘네요. 그래도 OOO 만 끝나면 한 숨 돌리겠네요.”


OOO 안에 들어갈 수 있는 단어는 각자들이 쉽게 채울 수 있겠지. 그 다음 대답도 예상할 수 있다.


A: “아이고, 그래도 바쁜 게 노는 것보다 좋은 거예요.”


글을 쓰고 있는 지금, 16 개월째 (세상의 기준으론) 놀고 있는 나는 바쁜 게 노는 것보다 좋다는 이 예상 답변이 영 탐탁지 않다. 이 글을 쓰면서 내 또래들은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해 몇 명에게 바쁘냐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니 다들 바빠 정신이 없다고 한다. 삼십대 초반, 벌써부터 정신이 없고 누구는 죽겠다고 까지 한다. 그저 굳어버린 관용적 표현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얼마나 극단적인 표현인가! “바빠 죽겠어.” (유사말로는 “바빠서 죽을 시간도 없다.”가 있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바쁜지, 무엇 때문에 얼마만큼 바쁜지는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 이건 그냥 인사말이니깐. 그러기에 “아뇨, 바쁘지 않아요. 요새 한가합니다.”, 혹은 장기하 노래 마냥 “별 일 없이 사네요.”라고 답을 하면 참으로 불편하고도 어색한 정적을 만들어버리기 쉽다. 질문한 A는 뭔가 이런 답을 한 B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 것 같은 맘이 들지도 모른다. 위로의 말은 “아, 그래요... 뭐, 그래도 곧 바빠질 거예요.”


돌이켜보면 나 역시 누군가들에게는 “네, 바빠 죽겠네요.”의 선두주자였을 것이다. “얼굴 좀 보고 살자”, “조만간 만나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아도 정작 누군가의 연락이 오면 눈앞의 일이 항상 먼저여서 이번 주는 바쁘다는 말을 먼저하곤 했으니 말이다. (깊이 반성한다.)


언제부터 “바쁨”이 선善의 단어로 자리 잡았을까? 일을 효과적하고 우리의 수고로운 시간을 덜어주기 위해 만든 수많은 기술과 도구들이 있음에도 불구하여 여전히 바쁘고 시간이 없다. 그것 참 이상하지. 천리안 세대의 모뎀을 거쳐 가며 자라난 우리지만, 이젠 느린 인터넷 속도에 자비란 없다. 뭐든지 더 빨라져야 한다. '로딩'과 '버퍼링'이란 단어만 들어도 답답해지는 우리다. 머리와 손을 “빨리 빨리” 굴리고 놀려서 만들어 낸 우리의 시간들은 더 많은 일들을 처리하도록 쓰인다. 그래서 우리는 늘 바쁘고 여전히 시간이 없다. 오죽하면 타임 푸어(time poor, 시간 빈곤자)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까?


빠른 것이 미덕이 된 사회에서,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기초한국어 책자에는 직장에서 익혀야하는 생존한국어로 [Pali-Pali] 가 나와 있다. “빨리 빨리”. 시간이 좀 더 지나면 그 책자 안에 “바쁘시죠?”가 인사말 로 실릴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용의 팁도 아래 네모 박스로 달려있을 거다.


<잠깐, 이 표현은요!>

그대로 번역하면 “Are you busy?” 혹은 “Have you been busy?” 이지만, 이건 그냥 일이 있고 바쁜 게 좋다는 인식 하에 물어보는 가벼운 안부인사니 당신의 바쁨 정도에 대해서 어떻게 답을 해야 하는지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 말고 웬만하면 그냥 “네, 좀 바쁘네요.”라고 대답하세요.





“낀 카오 래오 버?”

(밥 먹었어?)


“낀 버?”

(먹을래?)


“빠이 싸이?”

(어디 가니?)


어느 날 매일같이 듣던 이 인사들이 가슴을 쳤다.

밥 먹었냐고 물어봐주는 이들이 걸음걸음마다 있었구나. 참, 다행이다.

서로를 궁금해 하고, 나의 걸음을 궁금해 하는 마을 사람들이 있었구나. 참, 다행이다.


그렇다.

이곳은 아직 밥 먹었냐고 물어본다.

아니, 여기도 밥 먹었냐고 물어본다.


라오에 와서 참 다행이다.

라오가 나를 받아줘서 참 다행이다.


이제 나도 계속 물어야겠다.

나의 당신들이 밥은 먹고 다니는지, 어딜 그리 다녀오는 길인지, 밤새 별 일 없이 안녕 하는지, 당신의 낯빛을 찬찬히 살피면서, 당신의 하루를 그려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