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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술꾼도시여자가 되고 싶다

인생의 다섯 가지 복 '오복'으로 보는 <술꾼도시여자들> 리뷰

by 김안녕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연대


오늘 <술꾼도시여자들>의 최종화가 방영됐다. 오랜만에 애정을 듬뿍 담은 마음으로 만난 드라마를 보내며 글을 써보려 한다. 웃다가 울다가 또 웃다가 마음 한편이 애틋하게 저려오기도 하는 이 드라마의 몇몇 순간을 기억해보고 싶다.


안소희 (이선빈), 한지연 (한선화), 강지구 (정은지) 세 친구는 이름 그대로 술꾼들이다. 다치거나 아파도 어떻게 해서든 이유를 만들어 아지트 술집 '오복집'에 모여 술을 마신다. 인생이 기승전술이다. 그 과정을 가까이 보면 우당탕쿵탕 거칠지만, 멀리서 보면 따뜻하다. 취하는 것 따위는 개의치 않는, 욕하면서도 서로를 챙기는 세 친구의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정말로 사랑스럽고, 캐릭터의 대사, 행동, 상황 요소요소에 살뜰하게 우리 모두의 현실을 녹여내 공감대를 자극하기 때문이다.


<술꾼도시여자들>은 가볍게 보면 술 좋아하는 친구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지만, 드라마 내내 이들이 찾는 술집 '오복집'의 '오복'이란 의미를 펼쳐놓고 대입해 보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다.


'오복'은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을 말한다. 순서대로 각각 장수하는 것, 부유한 것, 건강한 것, 좋은 덕을 가진 것, 평안하게 살다가 삶을 마치는 것을 의미한다. 드라마에서는 이를 섬세하게 다루며 살면서 겪어나가는 인생사를 담백하고 유쾌하게 그려낸다.



수(壽) - 오래 사는 것
고종명(考終命) - 살다가 죽는 것
#소희 아버지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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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소희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겪는다. 드라마에서는 어떤 이유로 아버지가 죽었는 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소희와 지연, 지구가 어떻게 이를 받아들이고 극복해 나가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세 친구 중 가장 효녀였던 소희였기에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더욱 힘들어한다.


누구나 오래 살고 싶고, 오래 사는 것은 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은 예측하지 못한 일도 일어난다. 억울하지만 어느 때에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일도 있다. 그런 때가 오면 드라마에서처럼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보다는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 할까'에 좀 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내 옆에도 이들 세 친구처럼 함께 울어주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부(富) - 돈, 부유한 것
#오복집 사장님의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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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복집 사장님의 존재가 인상 깊다. 한 번 앉으면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 시끄러운 세 친구들이 매일 같이 찾아와 술을 찾아도 언제나 같은 마음으로 자리를 내어준다. 항상 메뉴판에 없는 걸 주문해도 약속이나 한 듯 취향 맞춤으로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해준다. 처음엔 그냥 사장님처럼 느껴졌는데, 마지막 회에서는 세 친구의 든든한 아빠로 자리한다. 짐작컨대 사장님은 세 친구가 마신 술을 정확하게 정산하진 않았을 것이다. 메뉴판에 없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문을 닫을 시간에도 그들이 올 때면 다시 문을 활짝 열고 맞이해줬으니까.


난 돈을 좋아하고 물질적인 삶을 추구하는 것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편이다. 그럴 때 이런 드라마를 만나면 잠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인생엔 다른 종류의 부(富)도 필요하다'는 생각. 오복집의 사장님은 금전적인 손해는 조금 봤을지라도 딸처럼 든든한 세 친구를 얻었다. 인생엔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소중한 관계들이 반드시 있다. 어떤 길을 가더라도 그걸 잊지 않고 싶다.


강녕(康寧) - 건강한 것
#지연의 암 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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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고 긍정적인 지연에게 유방암이라는 청천벽력이 떨어진다. 수술 성공 확률은 50:50. 다른 작품의 캐릭터라면 울거나 멍하거나 어두운 모습이 그려졌을 텐데 지연은 아니다. "확률이 50%나 되는데"라고 말하며 오히려 친구들보다도 더 밝다. 억지로 꾸며내는 게 아니라 정말로 그런 사람이다. 본인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보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에게 차인 게 더 슬픈 게, 지연이다. 자기감정에 충실하고 오롯이 그에 따라 살아가는 정말 멋진 캐릭터. 이 드라마 자체가 밝은 작품이라고 해서 안심한 게 아니라, 지연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본래의 개성 때문에 안심했다. 지연에게 암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거기에서도 간호사를 꼬셔(?) 오늘부터 1일을 외칠 정도로 유쾌한 모습에.


건강은 중요하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게 끝이라는 말도 있는데,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디에나 희망은 있다. 아무리 아파도 기적처럼 일어설 수 있다. 포기하면 거기서 끝이지만, 내가 일어나고자 마음먹으면 과정일 뿐이니까.


유호덕(攸好德) - 덕을 좋아하여 행하는 것
#술



<술꾼도시여자들>은 유호덕의 결정체다. 술을 덕이라고 볼 수 있을까에 대한 문제는 일단 차치하겠다. 적어도 이 드라마에서 술은 덕이라고 볼 수 있어서. 술로 인해 실수도 하고 후회도 하지만, 신나게 웃고 달리고 소중한 추억을 쌓는다. 술을 마시는 과정 속에서 세 친구의 오롯한 우정이 밝게 빛난다. 촌철살인의 조언부터 말없이 술을 따라주며 눈빛으로 건네는 위로까지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 우정은 도수가 엄청 높지만 달달한 향이 풍기는 술처럼 느껴진다.


고등학교부터 내내 함께한, 지금은 각자의 삶에 충실하느라 연락을 자주 하지 못하는 소중한 친구가 떠올랐다. 대학교 때는 비싼 등록금을 내고도 땡땡이를 치고 만나 술을 마시기도 했고, 일을 할 때에는 매운 닭발집을 탐방하며 식신로드처럼 맛 평가를 내리기도 한, 지금은 쌍둥이의 엄마가 된, 누구보다 멋지고 예쁘고 소중한 그 친구를 떠올렸다. 내일은 카톡을 보내봐야지. "야, 술꾼도시여자들 봤어? 술 땡김"




나도 술꾼도시여자가 되고 싶다.


술을 많이 마시겠다는 게 아니다.

감정에 충실한, 관계를 소중히 생각하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그럼 사람,

나는 술꾼도시여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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