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 '고잉 세븐틴'의 성공 이유
아직도 아이돌을 좋아해?
아이돌을 좋아한다고 밝히면 종종 듣는 말이다. 아마도 30대인 나이를 감안했을 때, ‘아직도’ 아이돌을 좋아할 수 있냐는 반문인 셈이다. 지칠 때 힘을 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음악, 눈을 정화시켜주는 비주얼과 같이 팬으로서 얻는 기쁨과 행복도 크지만, 단순히 그것에 그치지만은 않는다. 한 명의 마케터로서 음반이 나왔을 때의 프로모션 과정을 살펴보는 것, 다양한 콘텐츠들을 보면서 어느 시점에 아티스트의 어떤 모습을 대중에게 어필하고자 하는지 들여다보는 것, 팬들의 니즈를 얼마나 잘 캐치하는지 혹은 어떻게 소통해 나가는지 보는 것까지 콘텐츠 마케팅의 흐름과 반응을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요즘 눈여겨보고 있는 건 바로 자체 제작 콘텐츠라 불리는 '자컨' 마케팅이다.
자컨의 시초, god의 육아일기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자컨, 세븐틴의 '고잉세븐틴'
현재 자컨의 시초가 되었던 콘텐츠는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해본다면 god의 ‘육아일기’, 신화의 ‘신화방송’, 빅뱅의 ‘리얼 다큐 빅뱅’등을 꼽아볼 수 있다. 2000년 1월부터 2001년 5월까지 MBC에서 방영된 ‘목표달성! 토요일 – god의 육아일기’는 god 멤버들이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담은 예능으로 당시 20% 안팎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큰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왕엄마의 역할을 한 손호영, 왕아빠 박준형, 패션 담당 윤계상, 잠자리 담당 안데니, 오락 담당 김태우까지 나눠진 역할에 따라 아이를 키우며 함께 성장하는 모습은 웃음과 때로는 감동을 전하며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가수로 보여지는 이미지 외 예능형의 특정 캐릭터를 부여해 더 친근하게 다가가게 만들었으며, god를 국민 그룹으로 자리매김하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vu_JCYrwE0&t=38s
2017년 방영을 시작한 ‘고잉 세븐틴’은 지난해 연간 전체 누적 조회수 1억 뷰를 돌파, ‘팬아보’(팬이 아니어도 본다)라는 별칭을 만들어낼 정도로 폭넓은 대중에게 다가가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대개의 아이돌 콘텐츠는 뮤직비디오와 무대 영상이 가장 높은 주목을 받는 콘텐츠로 빠르게 조회수가 올라가는 반면, 그 외 콘텐츠는 그보다는 낮은 조회수를 기록하는 편이다. 하지만 '고잉 세븐틴'은 공개와 동시에 무대 영상과 상응하는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최근 공개된 '고잉 세븐틴' EP 9 돈't Lie 3는 이틀 만에 100만 뷰를 넘는 것은 물론 JTBC2 채널로 방송되며 역으로 TV에 진출한 바 있다. 아이돌의 성공은 당연히 음악에서 출발하지만, 팬덤을 공고히 구축하고 대중적 인지도와 친근한 선호도를 높이는 데 '자컨'의 역할이 결코 작지만은 않다.
자컨 마케팅의 효과
# 전통적인 매체의 한계 극복
TV, 라디오처럼 편성을 받아 진행되는 전통적인 매체들은 한계가 존재한다. 광고 등의 여건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시청률이 중요해 더 높은 인지도를 지닌 스타들의 출연을 우선시하게 된다. 자연히 서로 모셔 가려는 스타가 아닌 이상 원하는 프로그램에 원하는 시점에 출연하는 것이 의지대로 이루어지기 어렵다. 하지만 아이돌 자컨은 소속사 또는 아티스트의 개별 SNS, 직접 소유한 온라인 채널을 통해 공개되기 때문에 이런 한계에서 자유로워진다. 더 이상 편성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PD의 눈에 들기 위해 선택을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시청률이 나오도록 자극적인 이야기나 이슈 몰이에 말리지 않아도 되고, 그들이 가진 고유의 개성에 집중해 본연의 콘텐츠를 선보일 수 있다.
# 고유의 매력과 개성 전달
자컨을 통해 아이돌은 그들 고유의 매력과 개성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다. ‘보여지는’ 직업을 가진 연예인이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건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아무리 대배우라 할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캐릭터만 선택해 연기할 수 없고, 어떤 부분에서는 타협해야 하는 지점도 있다. 하지만 자체 컨텐츠를 만든다면 가능하다. 왜냐하면 아티스트가 TV 프로그램처럼 정해진 방송 컨셉의 틀에 맞춰 억지로 웃기거나 하는 등의 부담 없이 비교적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프로그램에는 진행자가 따로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누군가는 좀 더 드러나고, 누군가는 조금 더 배제되기도 한다. 반면 자컨은 오래도록 알고 지낸 멤버들이 직접 진행하고 함께 만들어가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에서 탈피, 인위적으로 연출된 상황에 무리하게 자신을 맞추거나 과장된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 공백기 없는 꾸준한 이슈 개발 – 브랜드 충성도 강화
아이돌은 대개 정식 앨범과 앨범 사이 1년 정도의 간격을 두고 컴백을 한다. 예전엔 사이에 생긴 공백기가 많았었는데, 자컨을 만듦으로써 쉬지 않고 팬들과 만날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 이는 팬들의 이탈을 막을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에게도 꾸준히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상호 이점이 크다.
[출처: 펭수 인스타그램] [출처: 삼양식품 인스타그램] [출처: 진로 인스타그램]
일반적인 브랜드들 또한 특별한 신제품 출시나 프로모션 등의 이슈가 없을 때에도 소비자들이 그들을 기억하고 관심을 이어가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EBS의 ‘펭수’,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의 ‘호치’, 하이트 진로의 ‘두껍’이 등 브랜드의 세계관을 설계하고 이를 이끌어갈 자체 캐릭터를 개발, 이를 활용한 지속적인 콘텐츠를 생성하며 브랜드를 향한 충성도를 차곡히 쌓아 간다.
# 팬덤화 + 대중화 동시 달성
기본적으로 자컨은 기존 팬층의 팬덤화를 가속화시키는 윤활유 역할을 한다. 자컨을 통해 팬과 아티스트 간에 그들만의 서사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된 친구 사이 함께 이야기하고 꺼내 볼 수 있는 에피소드가 많은 것처럼, 자컨은 그 자체로 팬과 아티스트가 함께 쌓아가는 기억이자 추억이다. 자컨이 쌓이면 쌓일수록 팬들 사이 이야기할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시간이 오래 걸릴지라도 그들은 이런 역사를 탐구하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자컨은 팬덤을 공고히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출처: 세븐틴 공식 유튜브 댓글 캡처]
또한, 자컨은 아이돌을 일반 대중들에게도 장벽 없이 친근하게 다가가는 계기를 마련해준다. ‘고잉 세븐틴’이 이러한 자컨의 대표적인 사례다. 팬이 아닌 대중은 아이돌에게 꽤 높은 진입장벽, 허들을 갖고 있는데 재미를 기반으로 한 예능형의 자컨은 이를 낮춰주는 역할을 한다. 기본적으로 세븐틴 멤버들이 직접 아이디어를 낸 콘텐츠를 중심으로 에피소가 구성되는 '고잉 세븐틴'은 이를 일반 예능으로 봐도 충분히 재밌게 즐길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연출로 일반 시청자들까지 사로잡고 있다. 실제 영상 댓글들을 살펴보면 ‘팬이 아니고 그냥 와서 봤는데 재미있다’, ‘팬으로서 좋다기보다 진짜 딱 한 번만 홍삼 게임 같이 해보고 싶다’ 등 콘텐츠 자체를 즐기는 반응이 많다. 아이돌이라는 캐릭터, 브랜드에 의존해 영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매 에피소드마다 촘촘한 구성과 연출로 볼거리가 있는 재미난 콘텐츠로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자컨은 주체적인/새로운/모두 함께를 지향한다
결론적으로 자컨의 힘은 아이돌 그룹, 콘텐츠를 브랜드화한다는 데 있다. 앞서 이야기한 ‘고잉 세븐틴’의 흥행은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가 아닌 예능형 콘텐츠로서 이례적인 기록으로 음악 외 ‘세븐틴’이라는 브랜드가 가지는 유쾌한 에너지를 만드는데 기여했다. 팬덤을 공고히 하는 것은 물론 일반 대중들의 시선까지 ‘고잉 세븐틴’이 아니었다면 보지 않았을 다른 영상들로 자연스럽게 이끌며 그룹이 보여주고자 하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자컨 마케팅의 특징을 키워드로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기존 마케팅: 선택받는/ 전통적인/ 팬을 위한
자컨 마케팅: 주체적인/ 새로운/ 모두 함께
이는 엔터테인먼트/미디어 분야를 넘어 브랜드 마케팅에서도 주목해볼 필요가 있는 키워드다. 전통적인 마케팅은 더 파워풀한 매체를 섭외해 그곳에 제품을 노출시키고 커버리지를 확대하는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우리 채널로 대중을 유입시켜 고유의 아이덴티티를 높이는 시대다. 정해진 매체의 틀에 우리 제품을 맞추는 게 아니라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품 자체가 곧 매체이자 플랫폼이자 고유의 콘텐츠로서 역할을 하는 것, 자컨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콘텐츠 마케팅이 바라봐야 할 중요한 지점이다.
됐고, 세븐틴 많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