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를 이끄는 두 가지 형태
요즘 드라마 뭐 봐?
요즘 두 가지 드라마를 시청하고 있다. 하나는 tvN 토일극 <빈센조>, 다른 하나는 JTBC 수목극 <시지프스>다. 송중기와 조승우처럼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출연하는 만큼 각 방송사의 상반기 주력작이라 꼽히는 작품이어서 호기심에 보기 시작했다. 마침 두 작품 모두 넷플릭스로 감상 가능하기도 하고.
두 드라마는 각자 그려나가는 스토리의 형태가 뚜렷하며, 장단점 또한 명확하게 나뉜다. 결론부터 말하고 시작하자면 <시지프스>는 넷플릭스에 영상이 올라왔다는 알림이 뜨면 켜지만, <빈센조>는 어서 토요일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 시청률에 있어서도 <시지프스>는 4~5%대를 보이고 있는 반면 <빈센조>는 10% 내외를 오가며 tvN 역대 토일극 시청률 3위의 기록으로 주목받고 있다.
<빈센조>는 스토리를 이끄는 핵심적인 강점을 최대치로 끌어올렸고
<시지프스>는 스토리를 이루는 핵심적인 약점을 그대로 노출하고 있다.
두 작품이 같은 시간대에 경쟁하는 직접적 경쟁작은 아니지만 각 방송사를 대표하는 주력작인 점, 상반된 스토리텔링의 구성을 가진 점을 감안하여 비교해보고자 한다.
1. 스토리 핵심 - 캐릭터가 이끄는 <빈센조> VS 세계관으로 펼치는 <시지프스>
<빈센조> 스토리텔링의 핵심은 '빈센조 까사노' 캐릭터에 있다. 이탈리아에서 마피아의 변호사로 활동했던 그가 한국에 오게 되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막대한 양의 금을 지켜달란 의뢰를 받은 빈센조는 어느 낡은 건물 아래 금을 숨겨두고, 이 건물에 대한 재건축을 막으려 하는 과정 속 (의도하지 않은) 기묘한 정의가 실현된다. 이처럼 큰 스토리 줄기를 따라 '정의'와는 담쌓은 무자비한 성격의 그가 홍차영 변호사(전여빈 분)를 만나 힘을 합쳐 악을 악으로 처단해가는 과정은 상상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를 테면, 대기업 산재 피해자들의 재판 당일, 람보르기니를 타고 등장해 '피해자들은 가난하다'라는 인식을 엎는다. 또한, 힘 있고 돈 있는 자들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구태여 정의를 울부짖지 않고, 때려 부수거나 죽여 버릴 거라 협박하며 여태껏 시청자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기묘한 정의를 실현해낸다. 이런 전복성이 주는 쾌감은 어마어마하다.
<시지프스>는 촘촘하게 설계된 거대한 세계관 아래 스토리를 펼쳐나간다. 천재 공학자 한태술(조승우 분)이 만든 업로더(= 타임머신)로 현재와 미래를 오갈 수 있게 된 2020년, 정부는 이를 이용해 미래에서 온 자들이 부당하게 돈을 취하거나(로또를 맞추거나 부동산 시세 차익을 보거나 등) 하는 등의 위법적 행동을 막기 위해 움직인다. 어느 날, 한태술 앞에 나타난 미래에서 온 서해(박신혜 분)는 핵전쟁이 발발한 미래 대한민국은 황폐화된다고 말하며 한태술을 구하면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업로더 제작을 막으려 한태술을 죽이려 하거나 이를 빼앗으려는 의문의 자들까지 가득한 세상, 한태술은 서해의 손을 잡고 어떻게든 위기를 벗어나려 한다.
이처럼 <시지프스>는 미래와 현재를 오간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다채로운 캐릭터들을 사이사이 편입시키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기본적으로 판타지 설정인 데다 어려운 공학적인 용어도 등장하고, 안 그래도 캐릭터가 많은데 아직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존재까지 즐비해, 매주 매회차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급급한' 느낌이 든다. 스토리가 세계관에 묻어 나가는 게 아니라, 이 엄청난 세계관을 캐릭터들이 일일이 설명하고 지나가는 듯하달까. 하여 어느 캐릭터의 감정을 따라가야 할지도 난해하다. 아마도 한태술일 텐데, 워낙에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이라 그의 진짜 감정이 뭔지, 진짜 욕망이 뭔지 따라가기가 쉽지가 않다.
2. 가족애를 다루는 법 - 공감의 <빈센조> VS 신파의 <시지프스>
<빈센조>가 가족 이야기를 통해 공감을 이끌어낸다면, <시지프스>는 신파로 전락시킨다. <빈센조>는 자신을 버린 친어머니를 극 중에서 만난다. 그녀는 가사도우미 일을 하다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지만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다. 빈센조는 그녀가 어머니임을 깨닫고 흔들리지만, (또한 이것이 훗날 이야기 전개에 어떤 변수가 되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다. 상황 자체는 진부하지만 캐릭터의 행동이 명백하게 다르기 때문에 더욱 애틋한 감정이 생겨나며 공감대를 자극한다.
<시지프스>에서 한태술은 사라진 형이 미래에서 온 자들과 관계가 있음을 알아내고, 형을 찾으려 안간힘을 쓴다. 형에 대한 미안함과 자책감을 가졌다는 설정인데 '이성적이고 이기적인' 한태술의 본성과 달리 형을 생각할 때면 '고통스러워하고 자책하는' 모습이 너무 반복되다 보니 형이라는 이야기만 나와도 지치는 느낌이 든다. "그놈의 형은 어딜 간 건데!" 이런 생각이 든달까. 박신혜도 미래에 두고 온 아버지에 대한 생각에 눈물짓는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항상 들고 다니는 펜던트 속 아버지의 사진이 깨질까 염려하는 모습도 여러 번 반복된다. 가족애가 신파로 빠지지 않으려면 균형감이 필요해 보인다. 이 거대한 세계관 안에서 두 주인공의 감정과 스토리에 그렇게나 가족이 중요한 부분이라면 최소한 캐릭터의 감정 표현에 변화라도 준다면 좋을 것 같단 생각이다.
3. 유머의 발현 - ㅋㅋㅋ! <빈센조> VS ㅎㅎ? <시지프스>
<빈센조>는 깔깔깔 현웃이 터진다. <시지프스>에도 유머 코드가 있지만, 어쩐지 어색하게 부유한다. 애초에 <빈센조>는 장르 자체가 코믹에 기반했기에 가능한 일일 수 있다. 대놓고 웃기려는 장면이 많기에 그럴 수도 있지만, 완급조절이 좋고 웃음이 필요할 때 확실한 웃음을 준다. <시지프스>는 한태술 캐릭터 자체가 '너드'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는 약간의 위트가 있다. 하지만 워낙에 힘든 상황에 쳐하고 혼란스러워하다 보니 확실하게 유머가 드러나지 않고 화면에 둥둥 떠 흘러가버릴 때가 많다. 그런 장면은 조금 더 여유로운 호흡으로 연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감히) 많이 했다.
결론은 뭐다?
<빈센조>가 훨씬 흥미롭다. 물론 <시지프스> 또한 멋들어진 CG를 차치하고서라도, SF 소재를 꽤나 현실적으로 풀어낸 스토리는 다른 드라마와 비교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이야기를 끌고 감에 있어 드러날 수 있는 약점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게 문제다.
비판은 쉽다. 여기에 이렇게 적는 글이 한 글자 한 글자 대본을 쓰고, 현장에서 땀 흘리고 뛰어다니며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스탭과 배우들과 비교하면 참으로 턱없는 일이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비판하는 건 애정이 있어서라고 말하고 싶다. 비난은 아니다. 한 명의 시청자로서 그들이 보여주고자 하는 드라마의 본질이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 어쨌든 <시지프스>도 남은 회차 모두 잊지 않고 보겠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