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와 질투는 언제나 나를 살게 한다

지리멸렬한 마음에서 피어나는 동력

by 김안녕


사람은 각자 동기부여를 받는 방식이 다르다. 추구하는 목표, 방향성, 가치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같은 A라고 해도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그 근원의 뿌리는 다른 경우가 많다.


나에게 동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과정.

둘째, 분노.

셋째, 질투.


1. 과정

무슨 일을 하든, 그것이 작던 크던 중요한 건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과정을 충실히, 목표한 대로 존나게 열심히 했을 때 결과가 어떻든 비로소 상관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공이라면 힘들었던 과정을 기뻐할 수 있고, 실패라면 열심히 했음에도 성과가 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파고들어 다음 시도를 위한 경험치를 쌓을 수 있다.


또한, 과정은 결국 태도다. 과정에 충실히 임한다는 건 꿋꿋한 태도를 갖췄다는 것이다. 그 일에 진심으로, 진정성 있게 다가갔다는 뜻이다. 진심이란 건 정말 중요하다. 수박 겉핥기로는 그 어떤 성과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느끼는 게 적거나 없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진심을 다해 노력하는 태도에 앞서는 것은 없다.


또한, 진심은 결국 본질이다. 진심은 항상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부수적인 것들에 한눈팔게 하지 않는다. 부차적인 것들에 신경 쓰게 하지 않는다. 오로지 집중해야 할 하나의 가장 중요한 본질을 생각케 한다.


즉, 과정을 중시하는 것은 진심 어린 태도이고, 이는 본질에 집중하게 만들어 궁극적으로는 좋은 결과를 내는데 도움이 된다.


과정은 언제나 결과에 선행한다.



2. 분노

분노는 나에게 있어 가장 강렬한 감정이다. 요즘은 분노도 ㅎ 별로 느끼지 않긴 하지만, 한번 느낄 때에는 이상하게 묘한 희열도 함께 느껴진다.


다 죽여버리고 싶다는 마음, 다 엎어버리겠다는 생각, 다 딛고 일어서겠다는 의지.


모든 걸 불태우게 만드는 혼신의 마음을 다하게 하는 감정이다. 분노는 지금까지 나를 상당히 많이 성장시켰다. 지쳐 쓰러질 것 같이 힘든 날에도 분노는 공부를 하게 만들었고, 물을 부어버리고 싶었던 몇몇 사람들을 향한 분노는 언제나 더 잘하는 것에 집중하게 만드는 동력이었다.


앞서, 진심을 다하는 태도를 이야기했는데, 갑자기 분노를 이야기해 웃길지도 모르겠지만. 분노는 항상 어느 때보다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한 과정에 진심을 다하게 만들었다. 언제나. 하나의 변수도 없이.


예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는 좀처럼 나아가기 힘들다. 최소한 나는. 다소 지난하고 지리멸렬하더라도 인정하는 바이다. 분노는 항상 나를 성장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자 엔진이다.



3. 질투

질투는 분노보다 빈도는 낮지만, 한번 발현될 때 강도가 엄청난 감정이다. 이기고 싶은 어떤 대상(그게 사람이든, 물체든, 조직이든, 나발이건 간에)을 포착하는 순간, 경쟁심이라는 어여쁜 단어의 끝자락에 질질 끌려오는 것이 질투다.


별 볼 일 없는, 고루한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떨쳐버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질투를 느낄 때 생기는 엄청난 에너지는 나를 또 집중하게 만든다.


'두고 보라고'라는 마음.

그 대상들은 내가 있는지도 ㅎ 모를 때가 많지만, 나 혼자서라도 끝끝내 닿아 시작되는 마음.



예쁘지 않은 감정, 마음은 역설적이게도 나를 가장 많이 성장시켰고,

높은 확률로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어느 날 아주 강한 분노나 질투를 느끼는 날이면 '아, 내가 뭔가를 이루고 싶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그 누구보다 잘하고 싶고, 무엇이됐든 누가 됐든 이기고 싶은 거구나. 그리고 그래야겠구나.'라고 직감한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동력이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이 동력이 오랜만에 들끓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오겠구나, 무언가를 한번 더 이루는 순간이.


아름답지 않아도 좋다.

추접스럽고 치사한 마음이어도 환영한다.


어서 와라, 내 동력들아.

기꺼이 맞아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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