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없는 박찬욱팀이 그려내는 것들
올해 그저 그렇게 재미있던 몇몇 드라마와 영화를 지나고 만난 <작은 아씨들>. 아직 초반이고, 여러 이슈들도 있지만 이만큼 마음을 설레게 하는 드라마는 오랜만이다. 이 드라마에 주목할 만한 몇 가지 포인트가 있다.
1. 박찬욱 없는 박찬욱팀
박찬욱 감독과 오래 함께 협업해온 정서경 작가의 두 번째 드라마 작품
더욱 기대가 컸다. (정서경 작가의 첫 번째 드라마는 <마더>였다.) 대개 영화는 2시간으로 압축해야 하는 터라, 연출의 예술이라고 보는 부분이 크고, 드라마는 긴 호흡으로 10화 이상을 가야 해서, 작가의 예술이라 칭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정서경 작가님이 여과 없이 술술 써내려 나갈 16편의 이야기가 매우 기대됐다. 그것도 무려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모두 한 번은 마음 뛰며 읽어 보았을 <작은 아씨들>의 현대판이라니 :)
<아가씨> <헤어질 결심>과 같은 작품을 본 관객이라면 누구나, 이 드라마를 보면서 연출의 색감이 좀 박찬욱스럽다(?)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구도와 소품, 색상의 활용 같은 부분에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꽤나 디테일해서. 찾아보니 박찬욱 감독의 작품에 꾸준히 함께해 온 류성희 미술 감독이 참여한 작품. 어떤 걸 통해서 그 사람다운 느낌이 난다는 게 정말 매력적이다. 박찬욱스러운 색을 만들어내는데 가장 큰 힘을 가진 두 분이 협업하니 그 느낌이 소소하게 드러나는 것 같다.
2. 소설 <작은 아씨들>과의 몇 가지 비교
고전의 재해석
정서경 작가는 박찬욱 감독과 영화 <박쥐>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과 같은 작품에서 시나리오를 같이 집필했다. 대부분의 작품이 원작을 각색하는 것에서 출발했는데, 특히, <아가씨>는 세계적 베스트셀러 소설 <핑거 스미스>를 토대로 한 작품이었다. 이를 영화화하는 데 있어 초반 설정(소매치기로 자라는 아이의 이야기)과 중간까지의 스토리텔링 구조는 그대로 유지했지만, 시대 배경과 주요 등장인물을 비롯해 그 외 스토리와 결말은 모두 바꿨다.
이처럼 고전을 재해석하며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탄생시켜온 것을 봐온 터라, <작은 아씨들>의 제목을 보자마자, 이번에도 현대판 각색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자연히 들었다. 얼마나 현대적으로 그려낼까, 궁금했는데 지금까지는 공감 가는 부분도 있고 꽤나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등장인물 비교
현실감과 허영심을 가진 메그는 첫째 오인주 (김고은)
정의감과 공명심을 가진 조는 기자로 분한 둘째 오인경 (남지현)
예술 감각과 성공하고픈 야심을 지닌 에이미는 예고를 다니며 유학을 꿈꾸는 막내 오인혜 (박지후)와 닮았다.
(그리고 음악을 좋아했지만 병으로 인해 죽는 베스는 드라마에서 이미 죽은 설정으로 나온다. 가난으로 인해 이미 오래전 죽었고, 어린 자매의 기억 속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소설에서 베스가 최애(?)인 독자들이 꽤 있었고, 매력적인 캐릭터인데 애초에 죽은 설정으로 나온다는 게 좀 흥미롭기도 했다.)
스토리 설정 비교
소설은 자매의 사랑과 꿈에 중심이 맞춰져 있다. 시대적으로 여자는 스스로 돈을 벌기 어려운 때였지만, 이들에게도 이루고 싶은 꿈과 야망이 있고 그걸 응원해주는 느낌이 있다. 주인공들은 열심히 꿈을 따라가기도 하고,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하며 궁극적인 행복을 맞이하기도 하고.
드라마는 돈을 중심으로 한다. 125만 원이 없어 돈을 빌려야 하는 처지의 지긋지긋한 가난에 시달리는 세 자매가 재력가 집안과 얽히며 이에 맞서는 이야기. 사실 초반엔 꽤나 전형적인 장치들이 있어서 (돈 떼먹고 도망가는 엄마 등) 진부한가도 싶었지만, 매화 마지막으로 갈 때면 반드시 예상할 수 없는 포인트들이 하나씩은 있어 기대를 놓을 수 없다. 무엇보다 특유의 스릴러적인 면이 고자극 추구자(?)에게 뿌리칠 수 없는 포인트 ㅎ.
3. 궁금한 떡밥들
한국에 세 페어만 들어온 귀한 컬렉션의 구두
진화영 (추자현)이 오인주 (김고은)에게 준 구두가 유난히 부각된다. 한국에 세 페어만 들어온 컬렉션이라는 대사도 여러 번 반복해 등장하는데, 어떤 의미가 될지 궁금하다. 세 자매와 세 페어의 구두가 관련이 있을까? (지미추 구두라고 ㅎ)
파란 난초
죽은 추자현의 발목에 있는 문신이자, 누군가가 죽을 때마다 옆에 놓여 있는 파란 난초의 주인은 누구일까? 역대급 빌런으로 추정되는 박재상(엄기준)일까, 아니면 죽었다고 나오지만 과연 정말 죽은 걸까 싶은 진화영(추자현)일까?
어쨌든 끝까지 따라서 봐 볼 이유가 있는 드라마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