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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안녕 Aug 04. 2022

감독으로 영화 선택하는 시대의 종말

수준 높아진 관객 - 이제, 처음부터 앞서 나가는 영화는 없다    


오랜만에 영화 이야기를 꺼내본다. 코로나 이후 관객들이 다시 극장을 찾게 되면서, 대략 <범죄도시 2>를 기점으로 예전만큼의 흥행 추이가 나오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동안 묵혀 두었던 대작들이 연이어 개봉했는데, 꽤나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고 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감독으로 영화를 선택하는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아래와 같은 성적표가 나왔기 때문이지. 


-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브로커> 관객수 126만 명 (현재 기준) 

-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자, 한국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박찬욱 <헤어질 결심> 170만 명 

- (한 편의 흥행 실패 없는 최고의 상업영화를 만든다고 알려진) 최동훈 <외계+인 1부> 143만 명 

- (<관상>, <더 킹>을 연출한 바 있는) 한재림 <비상선언> 8.3 어제 개봉 후 당일 관객 2.2만 (> 이게 무슨 의미냐면, 망했다는 이야기 ㅎ 개봉 당일에 2.2만, 예매율이 엄청 떨어지는 거라 이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어떠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어렵다고 보면 됨) 



짚고 넘어갈 한 가지, 작품성은 흥행과 반비례한다? 


이전까지는 '작품성은 흥행과 반비례한다'는 게 정설처럼 여겨져 왔던 것도 사실이다. 영화제 수상작은 일반 대중에게는 너무 어렵거나, 다소 지루해서 이른바 '상업적인 재미'가 부족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관객의 수준은 이제 단순한 재미 하나로만 점철되기 어렵다. 관객의 입소문은 이제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어벤져스>와 같은 오락적인 재미가 아니라도, 충분한 맥락과 의미를 느낄 수 있으면 관객은 선택한다. 그걸 단순하게 취급하는 시대는 정말로 갔다. 


일례로, 지난 6월 개봉한 <탑건: 매버릭>은 현재 722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게 단순히 블록버스터라서? 4DX로 즐길 수 있는 오락적 재미가 있어서? 톰 크루즈가 나와서? 라고만 보기 어렵다. 물론 이런 부분도 있겠지만, '실감 나는 비행'과 같은 보이는 부분 이면에 캐릭터가 보여주는 뚝심, 거기에서 느껴지는 리더십과 같은 '느껴지는 만족'도 무시할 수 없다. 

(그리고 사실, 톰 크루즈는 -한국 배우들이 고작 몇 kg 감량했다는 것 정도로 혼신의 연기를 했다고 말하는 것에 반해- 목숨을 걸고 연기를 하는 배우다. 진짜 비행기를 몰고, 뛰어내리고, 매달리는 배우라는 걸 잊으면 안 된다.) 


정리하면, 관객은 바보가 아니다. 가장 정직하고 정확한 viewer다. 



대작들의 초라한 성적표, 이유가 뭘까? 


1.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브로커> 관객수 126만 명 (현재 기준) 


일단,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한국 흥행 성적은 전반적으로 낮다. (예 : <어느 가족> 17만 명, <바다 마을 다이어리> 10만 명) 한 마디로 잔잔한 예술 영화 같은 느낌이라 '좋은 영화지만, 대다수의 관객'이 선택할 만큼의 가치로 두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사집과 CJ가 제작을 하면서 갑자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대단한 상업 영화(?) 감독으로 탈바꿈한다. 그전 영화들에서는 상영관을 좀처럼 내어주지 않다가, <브로커>는 갑자기 대작 취급을 받는다. 


한국의 기라성 같은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송강호, 배두나, 강동원, 이지은(IU)까지. 스토리 특성상 제작비 자체가 엄청 높진 않을 것 같은데 손익분기점은 150만 명이라고 알려져 있다. 아직까지 달성하지 못하고 있는 것. 훌륭한 감독 + 멋진 배우들의 조합 = 실패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2. (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자, 한국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박찬욱 <헤어질 결심> 170만 명 


솔직히 이 영화는 너무 좋았기 때문에 논외로 하고 싶긴 하다. 


하지만, 그래도 흥행 면에서는 실패했다. 그래도 그나마 눈에 들어오는 건 <브로커>나 <외계+인>보다 관객수가 높다는 것. (물론, 개봉일이 시기적으로 다르기 때문인 원인도 있겠지만.) 관객의 눈은 정확하다. 그래도 좋은 영화는 더 본다는 게 수치적으로도 드러나고 있다. 


그 와중에서도 '난해하다, 지루하다'는 평도 더러 있었다. 관객들은 '와, 박찬욱 감독의 신작이구나! 세상에 탕웨이랑 박해일이라고?' 라고만 생각해서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다, 더 이상. 


'이건 어떤 이야기지? 다른 사람들 평은 어떻지? 내가 좋아할 이야기일까?'를 생각한다. 그러니까 태생적으로 앞서 나가는 작품은 많지 않다. 



3. (한 편의 흥행 실패 없는 최고의 상업영화를 만든다고 알려진) 최동훈 <외계+인 1부> 143만 명 


최동훈 감독은 이른바 쌍 천만 감독이다. <암살>, <도둑들>로 전례 없는 흥행 기록을 세웠다. 그 외에도 최소 500만 내외의 기록을 세운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까지. 지금까지도 많이 회자되는 명작들을 탄생시켰다. 


무엇보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캐릭터'를 잘 만들고, '대화의 말맛'을 잘 살리는 연출로 유명하다. 전우치의 강동원, 수많은 패러디를 아직까지도 양산해내는 타짜의 캐릭터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외계+인> 또한 큰 주목을 받았다. 


류준열, 김태리, 김우빈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배우들이 나오고, 2편을 동시에 제작했으며 제작비가 무려 (1부 기준) 330억 원에 달한다고 한다. 앞서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에, 이런 제작비로 저런 배우들을 동원해 영화를 만들어내는 힘에는 이견이 없다. 스스로 신뢰를 만들었던 결과이니까. 


하지만, 그것이 또 다른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외계+인>은 개봉 후 혹평을 면치 못하고 있다. '산만하다, 누가 누군지, 최동훈의 캐릭터는 어디로 갔나, 유치하다' 등. 한국의 <어벤져스>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다고 했고, 그 도전 자체는 멋지지만 결과는 어쨌든 실패에 가깝다. 


관객들은 감독의 전작 신뢰도에 따라, 화려한 출연진의 유무에 따라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다. 다시 한번, 반복하자면 '이건 어떤 이야기지? 다른 사람들 평은 어떻지? 내가 좋아할 이야기일까?'를 생각한다. 그러니까 태생적으로 앞서 나가는 작품은 많지 않다. 



예전 방식만 고수해서는 답이 없지 않을까?


제작에는 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입증할만한 무언가가 있어야 투자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과거의 레코드가 필요한데, 이제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시대가 되고 있다. 투자자들도 이제는 작품 자체와 시나리오의 구성과 같은 본질적인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런 눈이 있어야 진짜 좋은 작품이 제대로 잘 나오고, 성공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그 감독이 했대, 누구누구 나온다!'의 시대는 가고 있다. 관객의 수준은 정말로 높아졌고,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시선으로 모든 걸 바라본다. 동시에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의 경계도 모호해지고 있고, 처음부터 출발선이 다른 (화려한 출연진, 높은 제작비, 대단한 감독) 작품들의 출발선도 낮아지고 있다. 


비로소 콘텐츠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 같다. CJ가 만들고 CGV가 배급하고, 롯데가 만들고 롯데시네마가 배급하고, 이런 일차원적인 구조 안에서 멱살 잡고 끌고 가던 흥행들이, 무너지면서 올바른 균형을 맞춰가고 있다. 


다음은 어떤 단계가 될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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