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거짓말을 해야 해서

유난한 날들이 있다

by 김안녕


유난한 날들이 있다. 잠을 설치고, 휴대폰을 떨어트리고, 아무 장애물도 없지만 돌에 걸린 듯 삐끗거리는 발, 조금은 애써 지어보이는 웃음, 아무 일도 아무 걱정도 없다는 듯한 표정, 때로는 그 모든 걸 감추기 위한 불행 코스프레, 또는 그와는 전혀 반대로 모든 걸 감추기 위한 행복 코스프레. 같은 선상에서 공전하는 작은 감정들의 회오리. 유난한 날들이 있다.


거짓말이 필요한 유난한 날들이 있다


1. 밝지 않은 사람에 대한 시선

밝은 사람은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고, 그걸 전해주는 힘이 있다. 밝고 긍정적인 건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바이다. 징징대고 힘들어하는 사람의 이야기와 에너지를 받아주기엔, 그들 각자가 모두 힘드니까. 나도 그렇다. 어두운 사람보다는 즐겁고 유쾌한 사람이 좋다.


그런데 말이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아마도 비율을 따지자면 나는 7정도는 후자, 3정도는 전자일 것이다. 후자와 전자로 표현하는 이유는, 눈치 챘겟지만 나 스스로를 그렇게 부르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다.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어 애매모호한 대명사로 표현하고 싶다.


2. 불행 코스프레

어떤 날은 불행이 필요하다. 지금 이 모든 걸 덮어두기 위해서, 불행이 필요하다.


"나 지금 이래서, 사실 난 지금 감정이 좋지 않아서, 내 상황이 쉽지 않아서"라는 이유가 필요할 때가 있다. 스스로에게 좋지 않은 한 꺼풀을 씌우는 걸 알고 있지만, 때로는 꿉꿉한 포장이 필요한 날도 있다. 짜증나게 습하고 끈적거려 떼내어 뱉어버리고 싶지만 그걸 내 입에 붙여야만 하는 날이, 나에게는 있다.


숨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누군가는 어떤 마음 한 켠을 알아챌 수도 있고, 저런 외투로 직접 부딪히지 않고 피해가려는 것 아닌가 하는 눈치를 보내올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지. 그런 날도 필요하다. 아마도 비율을 따지자면 그런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하루 정도는 더 많을 것이다.


3. 행복 코스프레

어떤 날은 행복이 필요하다. 지금 이 모든 걸 덮어두기 위해서, 행복이 필요하다.


"사실 나 이렇게나 행복해, 나에겐 이런 좋은 일이 있어, 난 사실 이만큼이나 이뤄왔어, 난 인정받고 있어, 난 사랑받고 있어"라는 이유가 필요할 때가 있다. 스스로에게 불필요한 한 꺼풀을 씌우려는 걸 알고 있지만, 때로는 달큰한 포장이 필요한 날도 있다. 진짜를 알고 있기에 오히려 공허한 마음이 들 수 있지만, 원치 않아도 그래야만 하는 날이, 때로는 있다.


숨기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누군가는 비루한 마음 한 켠을 눈치챌 수도 있고, 나는 저것보다는 행복하다고 위안삼을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지. 그런 날도 필요하다. 아마도 비율을 따지자면 그런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는 적겠지만 말이다.


작은 틈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다


반면에, A를 생각하면 A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을 알고 있다. 참으로 멋지고 경쾌하다고 생각한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우다다 우씨- 하기도 하지만 곧내 돌아와 웃음을 짓는 사람이 있다.


작은 틈을 알아봐주는 사람이 있다. 외면하지 않고 마음 한 켠을 내어주는 사람이 있다. 스쳐 지나가도 아무렇지도 않은, 작은 시간을 건네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보며 궁금증을 가져본다.

저런 사람에게도, 거짓말의 순간은 있을까? 그렇다면 그건 언제이고, 어떤 종류의 감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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