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하루의 끝에 탄, 택시의 의미
나아가면서도 멈출 수 있는 30분의 시간
몸도 마음도 찢긴 듯한 야근길, 택시를 탔다
잘하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안 됐다. 내가 너무 밉고, 내가 너무 싫어 힘든 그런 날이었다. 단순히 밤까지 일한 야근 때문에 몸이 지친 게 아니라 정말 마음 깊숙이 뭔가가 찌르듯이 아픈 날.
온 우주가 힘을 합쳐 나에게 고통을 준 것 같았다. 사람들과 부대끼며 대중교통을 타고 걸어선 도저히 집에 못 갈 것 같아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몇 분쯤 지났을까. 점점 집이 가까워 올수록 이대로 쭉 부산이나, 저기 어디 멀리까지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계속 쭉 택시를 타고 싶었다. 타 있는 그 상태로 오래 머물고 싶은 느낌. 그러니까 가긴 가는데 도착하긴 싫은 그 중간 상태로 있고 싶었다.
분명한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도 무방한,
어떤 말도 하지 않아도 되고
멀미를 핑계 삼아 핸드폰과도 떨어질 수 있는 시간.
멈춰있지 않고 나아가지만 동시에 행동과 생각은 정지한 채 쉴 수 있는 그 시간과 공간이 좋았다.
택시에서 느낀 30분의 여유와 위안
스스로 엄청난 채찍질을 하며 나를 못살게 굴던 그 하루의 마지막, 나는 택시 안에서 나를 위로했다. 어쨌든 목적지에 도착은 하기에 지속될 수는 없지만 그 잠깐의 30분이 주는 위안이 있었다.
회피하는 성격의 유형이라는 얘길 들은 적 있다. 택시에서 느낀 위안이 회피였을까? 결국 맞닥뜨려야 하는 문제는 남아있고, 종착지도 분명한데 거기에 도착하는 걸 가능하면 늦추고 싶다는 생각이 꼭 나쁘기만 한 걸까? 그게 어때서, 뭐 어쩌라고.
다시 택시를 타게 된다면
그날 이후 그때처럼 힘들었던 날은 다행히 없었지만 혹시나 또 찾아온다면 주저하지 않고 택시를 탈 거야.
회피하지 말라고
끝까지 문제를 해결하라고 해도 상관없다.
내가 중요해.
나에게 시간을 줄 거다.
그땐 이렇게 말해야지.
"지름길로 안 가주셔도 되고요, 어느 정도는 돌아가도 되니까 천천히 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