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을 즐길 수 있다면
도쿄올림픽을 보며 여러 생각이 교차한다. 양궁은 정말 대단하다- 감탄하고, 브라질에 완패했지만 김연경 선수의 스파이크는 정말 멋졌다. 주목받는 수영 신예 황선우 선수, 탁구 신동 신유빈 선수의 경기 과정과 인터뷰를 보고 있자면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표현과 태도가 굉장히 인상 깊기도 하다. 특히 도쿄올림픽을 보며 가장 크게 느낀 건 바로 엘리트 체육의 시대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재밌어요 / 쫄지 않아 / 파이팅!!
수영 신예 황선우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요"
탁구 신동 신유빈 "아직 쫄지 않아서 '쩔어'는 아껴뒀다"
양궁 돌풍 김제덕 "파이팅!!!!!!!!!!!!!"
즐기는 체육의 시대가 왔다. 이들의 경기와 인터뷰를 보고 그런 생각을 했다. 언론이 MZ세대라 칭하며 묶는 도쿄올림픽 돌풍을 일으킨 주역들의 모습은 그간 봐왔던 선수들과는 다른 지점이 있다. 너무나도 큰 경기다 보니 무겁고 진지한, 또는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는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지는 그런 때가 많았는데. 이번 도쿄올림픽을 보자면 순간 몰입하여 최선을 다하지만 경기 자체를 즐기는 듯한 태도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황선우 선수는 주종목이 아닌 개인 혼영에 왜 출전했는 가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에 "재밌을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 BTS의 팬이라고 밝힌 신유빈 선수는 "경기 전 BTS의 음악을 듣는다. 아직 쫄지 않아서 '쩔어'는 아껴뒀다"고 했으며, 김제덕 선수는 양궁 경기에서 한 번도 본 적 없던 "파이팅" 외침으로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최선을 다해 연습해서 국가대표가 되고,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는 엘리트 체육인의 길이
최선을 다하고 즐기는 가운데 국가대표가 되고, 올림픽에 나가 활약하는 생활 체육인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이야기는 결코 앞서 말한 선수들이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기록의 기록을 쓰고 있는 이분들의 성적이 이야기하듯 노력을 절대로 평가절하할 수 없다. 상상 이상의 노력을 매일 같이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조금은 스스로의 생각에 솔직하고, 타인의 시선에 좌우되지 않는, 노력과 즐기는 모습이 어우러진 모습"이다.
잘하는 일을 즐길 때 개인의 능력치는 최대에 이른다. 좋아하는 걸 잘하려면 노력해야 하는데, 그 과정을 즐기고 스스로를 드러낼 때, 그것은 능력과 실력을 넘어 어떤 매력을 만들어낸다.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는 그렇게 탄생한다. 이런 점에서 이들의 모습을 보고 느끼는 바가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과 간절함은 소중하다
모든 종목의 선수들이 온 마음과 온몸으로 도전하는 모습이 이 나이쯤 되니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고통도 잊게 만드는 아드레날린이 가득 퍼지는 듯한 느낌의 묘한 자극을 나에게도 준달까. 특히 가장 간절함이 와닿는 종목은 유도다.
정규시간 4분
브런치의 이 짧은 글을 쓰는 데에도 4분은 가뿐히 넘기는 시간인데, 유도 선수들이 인생을 걸고 한판을 맞이하는 시간이 4분이다.
지도, 유효, 절반, 한판, 누르기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지 않거나 반칙을 할 경우 지도를 받는다. 지도 3개가 쌓이면 유효가 되고 이건 점수로 연결된다. 한판은 그 즉시 경기가 끝나버리고 유효와 절반은 차곡히 쌓이는 점수로서 기능한다. 누르기의 경우 제대로 걸리면 상대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데 20초가 흐르면 한판과 동일하게 그 자리에서 경기가 끝난다. 이렇게 쉽게 단어로 구분되는 점수 체계와 달리 선수들의 한발 한발, 치열한 몸싸움과 힘겨루기는 이런 몇 단어만으로는 설명하기 부족하다.
긴장과 몰입
경기가 끝나고 아쉬움에 머리를 감싸 쥐는 선수들이 다른 종목에 비해 많다고 느꼈다. 여러 종목 중 가장 몰입도가 높은 것이 유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약 누군가 '아쉬워하다'라는 형용사의 감정을 한 장면으로 설명하라고 한다면 유도 경기 직후 패한 선수의 모습이라 하고 싶다. 그 마음이 애틋하면서도 멋지다.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고 아쉬워도 하고 지나간 시간을 돌아보고 하는 그 마음이 부럽기도 하다. 나는 온 마음, 온몸을 던져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즐기는 체육의 시대를 환영한다.
하지만 꼼수 부리지 않는 노력이 담긴 땀방울의 가치,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향한 간절함, 모든 준비를 마치고 무대에 나서는 짜릿한 긴장감은 여전히 소중하다.
저주받았다는 수식어를 단 도쿄올림픽은 매일 같이 혹평을 갱신하고 있지만,
그곳에 참가한 수많은 국가의 선수들의 모습은 정반대다.
그들의 모습은 이상적인 체육인, 이상적인 스포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 선수단 여러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