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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화’ 도대체 어떻게 하면 잘할까?

by 브릭섬

많은 IT기업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최대 고민은 역시 ‘문서화’다. 사실 이는 다른 업계들도 비슷할 거다. 먼저 회사에서는 문서화는 왜 중요할까? 문서화가 중요한 이유는 사원들이 회사에서 쌓은 경험을 개인의 것으로만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회사 내의 다른 사원들과 그 경험을 공유하거나 후대에 들어올 미래의 사원들을 위해서 회사 내에서 쌓은 경험은 반드시 유형자산으로 회사에 체계적으로 남길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경험을 체계적으로 남기기 위한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문서화’다. 문서화는 회사 입장에서 가장 덜 수고를 들이면서 사원들의 경험을 데이터화하는 방법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일을 한 사람이 직접 그 기록을 하게 만들면 되니까. 물론 회사가 그 기록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계속 검증할 필요는 있겠으나 그래도 회사가 직접 그 기록을 작성할 필요는 없다. 조선시대에는 업무의 모든 기록을 사관이 대신해주었지만 회사에서는 그런 사관이 사원 개개인마다 붙어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먼 미래에는 사원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마무리할 때까지의 모든 컴퓨터 기록, 회의 내용, 통화 내용, 그리고 마지막 성과물까지 AI가 전부 분석해서 어떤 획기적인 형태의 기록물을 남길 수는 있겠지만, 아직까지 그렇게 AI를 적극적으로 적용해 보려는 회사는 보지 못했다. 하지만 먼 미래에는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문서화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여러 회사들을 둘러보면 다들 문서화가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형식적으로만 하거나 제대로 하고 있는 곳이 별로 없다. 왜 그럴까?

만약 업무의 끝을 높은 품질의 문서화로 완결시키는 것을 필수로 규정한 회사가 있다면 이곳은 꽤나 문서화가 잘 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예를 들어 어떤 프로젝트의 공수를 산정할 때 반드시 문서화를 하는 기간까지를 함께 포함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여유 부릴 수 있는 회사는 별로 없다. 프로젝트에서 끝마쳐야 할 ‘실무’가 끝나기 바쁘게 바로 다음 프로젝트에 뛰어들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세상은 그렇게 돌아간다. 한가롭게 문서화를 하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다. 대기업들도 쉽지 않은데 하루하루 생존이 목적인 스타트업은 어떻겠나. 더더욱 문서화할 시간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두에 말한 이유들 때문이라도 회사는 문서화를 잘할 수 있는 고민들을 해야 한다. 이에 대한 나름의 해결책들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제시를 해왔다. 물론 결의에 찬 모습으로 다들 문서화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지만 곧 프로젝트 쓰나미를 몇 번 맞다 보면 곧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다. 대충 생각나는 것들을 나열해 보면, “1개월에 한 번 문서화를 잘 한 사원에게 상품을 준다”, "문서화한 내용을 연말평가 항목에 넣는다", "별도 보고용 PPT를 만들지 않고 최종 문서화할 문서의 중간 산출물들로 보고를 한다" 등등…

그렇다면 문서화를 할 시간이 없는 회사들은 어떻게 문서화를 해나가야 할까?

나는 이런 악조건인 상황에서 문서화가 잘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사원 개인에게 반드시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문서화가 작성자에게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회사가 이윤 추구를 위해 모인 조직이라면서 왜 갑자기 ‘개인’이냐고? 내 말의 취지는 개인을 우선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게 이익이 생긴다는 점을 이용해 자발적으로 문서화를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자는 얘기다. 즉 문서화를 하게 되면 “개인에게 이런 이득이 있어요”, “회사에서 업무가 이렇게나 편해져서 빨리 퇴근 가능해요”라는 실질적인 이득이 와닿게 만들어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개인이 진행한 프로젝트에 대한 문서는 회사 기밀 내용을 삭제하여 공개가능한 범위에서 개인 블로그에 올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자신의 성과를 자랑할 수 있게 허용하면 경력을 쌓으려는 젊은 세대들에게 큰 동기부여가 된다. 또한 문서화가 업무를 편하게 만든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상황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후임에게 인수인계 시에는 구두나 회의가 아닌 문서를 전달하는 것으로만 하는 것이다. 후임자는 문서를 읽고 추가로 궁금한 점만 물어보면 된다. 문서화를 하지 않았다면 1~2달을 붙어서 사수처럼 교육을 해주어야 하는데, 문서화를 해두면 인수인계가 자동화가 된다는 이점을 주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작성자가 마지못해 문서를 쓰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의 업무를 편하게 하기 위해 문서를 쓴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문서화는 IT 회사나 스타트업에게 기술부채와 같은 존재다. 하지만 정말 중요하다. 어느 특정사원의 특정 경험과 실력에 의존하지 않고 회사가 시스템을 갖추어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문서화는 필수적이다. 지금도 많은 회사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문서화 방법론과 정책을 수립하고 있으며, 분명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도 계속 더 좋은 방법들을 배워나가려 하며, 이 글을 읽는 분들도 문서화를 잘하는 회사를 만들기 위한 방법이 있다면 많이 공유해 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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