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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은 왜 이렇게 요구사항을 바꿀까?

by 브릭섬

개발사로서 고객과 일을 하다 보면 그들은 자주 요구사항을 바꾼다. 요구사항을 바뀐다는 것은 개발사에게 매우 큰 스트레스다. 개발하려고 하는 것이 계속 바뀌니 진도가 나가지도 않고 또 고객에 끌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려고 사전에 고객들과 수많은 미팅으로 기능정의를 하고 같이 RFP를 짜고 해 봐도 결국에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고객들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내가 개발사에 있을 때 만나본 고객들의 ‘의욕’ 정도에 따라 요구사항이 바뀔만한 이유들이 있었다.



의욕이 가득 찬 고객 실무 담당자

실무자가 의욕이 가득 찬 경우이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꼭 성공시키고 싶다. 어떻게든 이 프로젝트로 임원에게 인정받고 승진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이 꼭 넣어야 한다는 기능들은 모두 프로젝트 기간 내에 완성되어 있어야 한다. 매우 피곤한 스타일이다. 개발사에서는 꼭 이런 기능까지 넣어야겠냐고 돌려서 말해보기도 하지만 담당자의 고집은 강하다. 또한 담당자는 요구사항을 중간에 많이 바꾸기도 하지만 실제로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도 추가개발 계약까지 이어나갈 의지를 보이며, 나중에 대금을 지급하겠으니 일단 이것저것 기능을 추가해 달라고 한다. 대게 이런 실무자랑 일하는 경우 개발 산출물은 산으로 갈 확률이 매우 높다. 덕지덕지 온갖 좋은 건 다 가져다 붙인 ‘예쁜 쓰레기’가 탄생한다.


적당히 의욕이 있는 고객 실무 담당자

이런 담당자가 요구사항을 바뀌는 경우는 굉장히 단순하다. 위에서 눈치 줬기 때문이다. 가장 직관적인 이유고 고객에게 요구사항이 바뀌었다고 핑계대기도 좋다. 실무 담당자도 개발사와 협의해서 흡족한 프로토타입을 가지고 상무님께 보고하러 갔는데, “아 다 좋은데… 이런 것도 좀 있었으면 좋겠단 말이야” 한마디 하신 거다. 이럴 때는 실무 담당자도 난감하지만, 그렇다고 아주 크게 미안함 없이 대충 난색을 표하며 개발사에게 요구사항이 변경됐다고 얘기한다. 본인 상무님보다는 그래도 개발사에게 요구사항을 바꿔달라고 하는 게 더 쉬우니 말이다.


의욕이 없기 고객 실무 담당자

담당자는 별 생각이 없다. 의욕이 없으니 생각이 없는 게 당연하다. 개발에 들어가기 전 기능정의를 할 때에도 그냥 얼핏 내 제안서와 프로토타입을 보니 나쁘진 않다. ‘이대로 가시죠’ 하면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쿨하게 오케이를 남발한다. 하지만 담당자도 진심으로 이렇게 개발하면 상사한테 혼날 것 같지도 않고 적당히 칭찬도 받을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다. 사실 이 경우가 개발사로서는 정말 최악의 케이스다. 개발은 개발대로 해주고 완성되면 나중에 욕먹는다. 개발이 완료되고 담당자는 임원들에게 보여줬더니 대차게 까이고 그제야 개발사를 갈구기 시작한다. 추가개발이 필요하다, 이런 기능은 왜 넣은 거냐 등등 이제야 갈구기 시작하는 거다.

보다시피 어떤 타입의 고객을 만나든 개발 프로젝트에서 요구사항이 바뀌지 않는 일은 매우 희박하다. 프로젝트 기간이 1개월 미만으로 극단적으로 짧지 않은 한 또는 정말 간단하고 명료한 아주 작은 C++프로그램이나 스크립트가 아닌 이상 말이다.



결국 개발사도 고객도 함께 노력해야 성공한다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고객의 요구사항은 바뀔 수밖에 없다. 반대로 고객 입장에서 이해해 보자면, 고객이 온전히 요구사항을 완벽히 정의해서 바꾸지 않겠다고 해도, 본인의 사내 입지와 상사의 눈치 때문에 그러기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개발사는 담당자를 잘 설득시켜 핵심 기능이 무엇인지를 잘 추려낼 수 있도록 옆에서 내 일처럼 도와주고 때로는 담당자를 이끌어 줄 필요가 있다. 대신 스펙정의를 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스펙정의는 이 개발이 필요한 담당자 또는 그 고객사가 제일 잘 안다. 다만 개발사가 옆에서 지켜만 보는 게 아니라 고객이 진정 핵심 기능이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도록 옆에서 잘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개발사도 고객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 고객도 개발사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이런 마인드를 가진 짝꿍이 만났을 때의 프로젝트는 대부분 잘 됐다. 개발사는 고객 실무 담당자를 승진을 시켜주고 인센티브를 받게 해주어야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고, 고객 실무 담당자는 이 개발사를 더 많은 일로 ‘돈쭐’을 내줄 수 있어야 한다. 개발사는 그런 상성이 맞는 고객을 만났으면 좋겠고, 고객은 그런 개발사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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