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신입사원 04
일본으로의 취직길은 확보되었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이 많았다. 부모님은 어떻게 설득하지? 진지하게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한 고민 없이 정말 가는 게 맞는가? 일본어는 한마디도 못하는데?
일단 부모님부터 설득시켜야 했다. 당시 아버지는 내가 대학교 입학한 이후부터 대학교 4년, 군대에 있는 2년 총 6년 동안 끊임없이 행정고시를 보라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하셨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공대생인 내가 사기업에 들어가는 것보다 고위 공무원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셨나 보다. 하지만 아버지와 물리적으로 거리가 떨어져서 살았던 대학생 기간 동안 나의 멘탈은 강해져 있었고,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이러한 말씀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보냈다.
대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사기업'에 가는 게 그렇게 만족스럽지 않던 아버지였기에, 국내 대기업 취업이 결정된 이후에도 '아직도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행정고시를 봐보거라'라는 말씀과 함께 희망을 놓지 않으셨다. 국내 대기업도 못마땅한데 듣지도 보지도 못한 일본 기업이라고? 벌써부터 어떻게 허락받아야 할까 막막하기만 했다. 그래도 어쩌겠나. 기왕 여기까지 마음을 정했으니 부딪혀봐야 한다. 하루 날 잡고 고향집에 내려갔고, 아버지, 어머니에게 조심스레 드릴 말씀이 있다고 입을 열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런 아들의 안절부절못한 모습에 위화감을 느끼셨는지 부모님도 얼떨결에 되려 내게 조심스러워지셨다.
"아버지. 첫 직장을 일본으로 가려고 합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고 역시나 예상대로 아버지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혔다. 역시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길로 왜 굳이 가려고 하는 거냐', '일본이라는 나라에 관심도 없지 않았느냐', '사회생활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외국에서 어떻게 살려고' 등 내가 들어도 충분히 수긍이 가는 근거들을 들어가며 반대를 하신다. 어머니는 내 결정을 별말씀 없이 믿어주실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역시 일본이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곤 하지만 그래도 외국이라는 무게감이 부모님한테는 크게 다가오나 보다.
일단 부모님도 어떤 회사로 가려고 하는지, 가서 언어나 생활은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등등 차분하게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회사는 대기업 자회사인 IT계열에 일본어를 1년가량 충분히 회사비용으로 연수를 받게 되고, 또한 회사 기숙사가 주어지기 때문에 삶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고 안심시켜 드렸다. 30분 정도 이야기가 오고 가니 어머니는 어느 정도 일본에 가려고 하는 내 마음이 이해가 되시는 모양이지만, 아버지는 아직도 표정이 굳어계셨다.
나는 특히 부모님에게 내 주장을 하고 설득하려 할 때에는 나는 솔직함이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한다. '일본에 가면 돈을 더 잘 번대요', '아무리 그래도 일본은 경제대국이에요. 큰 물에서 놀아야 하지 않겠습니까'라는 어쭙잖은 이유와 솔직하지 못한 말들로 설득은 씨알도 안 먹힌다. 그냥 온전히 나다운 말로 솔직하게 이유를 털어놓는 게 좋다. 나 못지않게 나를, 아니 누구보다 아들을 잘 아는 사람도 우리 부모님이다.
"가려고 하는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는 충분히 설명드렸고 또 일본 내에서는 대기업인만큼 안정성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기숙사도 준다고 하고요. 솔직히 제가 일본에 가려고 하는 이유는 다른 거 없어요. 그냥 기왕 같은 한국 회사에서도 일해볼 수 있겠지만, 외국 회사에서도 내가 먹히는지 보고 싶은 거예요. 일본이라는 나라가 끌려서 가는 것도 아니고, 저 일본어 한마디도 못하는 거 아시잖아요. 다만 외국어 한마디 못하는 상태로 큰돈 들이지 않고 해외에서 일해볼 수 있다는데 이게 저한테는 큰 기회이고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26살이고 지금 여자친구도 없고 처자식도 없습니다. 지금 딱 눈 딱 감고 20대의 마지막을 채워보고 싶어요. 뭐 2~3년 굴러보고 실패해도 언제든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비장의 무기로 준비해 왔던 마지막 대사를 날려드렸다.
"만약 제가 2년 내로 적응 못하고 귀국하면 아버지가 원하시는 행정고시 준비하러 신림 들어가겠습니다."
아버지의 표정이 누그러지시는 게 보인다. 된 거 같다.
그렇게 1시간가량 부모님과의 담판은 마무리되었고, 거실에 조촐한 술상 하나가 차려진다. '네가 한 선택이니 후회 없는 선택으로 만들어봐라'라고 하시며 술잔을 채워주셨다. 부모님 허락까지 받았으니 이제 남은 건 오롯이 내 선택과 결정뿐이다. 이제 졸업준비와 함께 일본에 갈 준비를 본격적으로 서둘러야 한다. 무엇보다 일본어를 공부해야 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 아버지가 따라주시는 소주를 목에 넘기면서도 조급함이 몰려온다. 아 정말 행정고시는 보기 싫다. 생존을 위해 일본어를 배워야 한다.
일단 오늘은 다 잊고, 허락해 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즐겁게 마시고 서울 올라가서 생각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