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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랑쓰 Oct 27. 2023

05. 생존을 위한 일본어 공부

05. 도쿄신입사원

2014년 2월, 나는 대학교 학사 졸업장을 받았고, 아래 2가지 조건을 만족한다면 2014년 10월에 일본으로 넘어가게 되어 6개월간 회사 인턴과 도쿄 일본어 스쿨생활을 병행하며 지내다가 2015년 4월에는 정식입사를 하게 된다.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4월이 신입사원 입사하는 달이다)


첫 번째, 2014년 8월까지 JLPT 2급에 합격할 것

두 번째, 2014년 8월까지 일본어 말하기 시험에서 특정 점수이상 받을 것 (중급 정도)


사실 한국사람들이 일본어를 공부하기는 영어보다 상대적으로 쉽다. 영어와 다르게 어순도 똑같고 비슷한 발음들도 많다. 보통 초반에 공부하면 이래서 재미를 느끼게 되는데, 중반부터는 '한자'라는 벽을 만나면서 대부분 좌절하게 된다. 그래서 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공부했던 분들은 보면 정말 듣기나 말하기는 잘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어 읽기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나는 어렸을 때 어머니의 등살에 떠밀려 아주 어렸을 때부터 한자를 배웠었다. 동네 아파트에서 한자를 가르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하시는 서당에도 다닌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정말 다니기 싫었지만 어떻게든 중학교 때까지 한자능력시험 2급까지 따게 되었다. (3급 정도면 모를까 2급 정도면 정말 실생활에서 잘 쓰이지도 않는 한자들이 대부분이라 어린 나이에 여기까지 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나는 오히려 한자의 영역이 더 쉬웠고, 일본어 학습에 있어서 크게 장애물은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중국식 한자로 배웠고, 그 한자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일본어식으로 표기하는 한자나 발음이 잘 되지 않아서 (예를 들어 '기록'이라는 단어라면 '키로쿠'라고 발음해야 하는데, '기로쿠'라고 한다든지 일본어 한자공부 초반에는 좀 미세하게 거의 모든 발음들이 틀렸다)

당시에 회사에서는 강남에 있는 한 일본어 학원과 계약해 주었고, 하루에 4시간 정도 학원을 다녔다. 매일매일 쪽지시험 같은 게 있었고 숙제도 있었으니 자습까지 합하면 하루에 8시간 정도는 일본어 공부만 했던 것 같다. 다행히 졸업을 한 이후이고 일본어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어서 나에게 큰 부담은 아니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4개월 정도 이렇게 공부를 했고, 어찌어찌 회사에서 요구하는 JLPT 2급과 일본어 말하기 시험에 대한 조건을 갖췄고 일본으로 넘어가는 게 최종 결정되었다.

일본 생활 초중반에는 대부분 내가 일본에 오기 전까지 일본어를 단 한마디도 못했다는 것에 굉장히 많은 일본사람들이 놀라곤 했다. 어떻게 이렇게 단기간에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할 수 있게 되었냐면서. 지금 생각해 보면 일본어가 다른 언어보다 상대적으로 장벽이 낮았고, 나는 '한자'라는 장벽이 없었던 점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당장 일본에서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마음가짐'이 가장 크지 않았나 싶다.

사실 JLPT 2급, 일본어 말하기 시험에 통과하기란 4개월 정도 누구나 저 정도로 학원을 다니면서 4시간씩 성실하게 공부하면 어렵지 않게 통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정해진 문항에 대한 답을 하는 거고, 말하기 시험도 어느 정도 시나리오들이 정해져 있지만) 하지만 나는 여기에 안주하면 안 됐다. 나는 일본에 넘어가면 일본인들만 가득한 회사에서 리얼한 일본인들과 함께 회의도 하고 메일도 보내고 보고서도 쓰고, 회사 밖에서는 회식에서 농담도 주고받을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했던 일본어 공부는 주로 내가 많이 쓸법한 문장들을 많이 모아서 달달 읽어보자라는 거였다. 이런 문장들의 소스는 주로 나는 드라마에서 구했다. 뭐 회사가 배경인 드라마도 있었지만 그냥 흥미가 있을만한 드라마들을 거의 30편 이상을 모아서 봤던 것 같은데, 드라마를 보면서 '어? 이건 내가 회사나 일상에서 쓸법한 문장인데?' (보편적으로 많이 쓰일 문장들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이 쓸법한 문장이어야 한다. 나는 내가 제일 잘 알지 않는가?)라는 문장들은 드라마를 보다가 일시정지 해놓고 메모해 놓고 다시 드라마를 보는 방식이었다. 하루에 이렇게 2시간 정도 드라마를 보고 문장들을 뽑으면 하루에 20~30개씩 문장들이 쌓인다. 그리고 그냥 매일매일 그동안 쌓인 누적 문장들을 매일매일 3번 정도는 계속 소리 내서 따라 읽어보는 거다. 이렇게 공부하면 기본적으로 내가 실제로 쓸법한 문장들만 모았으니 입에도 잘 붙고 생각보다 재밌다. 또 드라마의 장면들도 대충 문장마다 생각나서 더 실감 나게 기억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방법으로 공부했던 게 내가 일본에서 생활할 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특히 술자리에서 농담으로 쓸법한 문장들을 많이 익힐 수 있어서 농담할 때도 유용했다. (예를 들어, '책임전가'라는 한국어 표현을 일본어로 責任逃れ라고 하는데, 이런 말은 자주 입으로 내보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바로 나오지 않는다. 또한 한자표현만 생각해서 責任転嫁 라고 거의 일본인들이 회화에서는 쓰지 않는 표현을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은근히 이런 깨알 표현들을 기억해 두고 쓰면, 일본인들은 굉장히 자연스럽게 일본어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으로 취업을 하거나, 더 일본인들과 자연스러운 회화를 하고 싶은 분들께는 개인적으로 매우 추천하는 공부 방법이니 한번 따라 해보셔도 좋을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부푼 마음을 안고 2014년 10월 도쿄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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