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에 혼저옵서예

by 낫투비

‘툭, 툭, 툭’

젖은 머리를 말리는 드라이기의 소음에 묻혀 있던 낯선 소리가, 따뜻한 바람이 멈춤과 동시에 귀에 들어왔다. 집 안에서 들리는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빼꼼 내밀고 방문 틈 사이로 거실을 내다봤다. 아빠는 출근해서 한창 일하고 있을 시간인데, 누군가 집에 들어왔을 리는 없었다. 고개를 휙 돌려 창밖을 내다보니 텃밭에서 쭈그리고 앉아 호미로 톡톡 무언가를 캐내고 있는 낯선 할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한 손에는 낫을, 다른 한 손에는 호미를 들고 익숙한 자세로 땅을 파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 참으로 다행인 건 창문에 붙여진 필름 덕분에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급히 휴대폰을 집어 들고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 혹시나 내 목소리가 들릴까 봐 조용히, 속삭이듯 말했다.

“아빠, 이상한 할머니가 들어와서 텃밭을 파고 있어.”

영화에서나 보던 스파이처럼 속삭이는 내 목소리와 달리, 아빠는 대수롭지 않게 “그러냐?”라는 짧은 말 한마디를 하고는 바쁘다며 전화를 끊었다. 믿을 수 없는 아빠의 태도에 황당해서 멍하니 핸드폰을 바라보다가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호미를 들고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였고, 다른 손에 들린 낫을 보니 차마 창문을 열고 누구냐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창문에 붙은 필름이 제 역할을 해주기만을 바라며 소리 죽여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는 한쪽 구석에 호미와 낫을 내려놓고 익숙한 듯 텃밭을 둘러보더니, 뒷짐을 지고 나가버렸다. 혼자 스릴러 영화라도 한 편 찍은 것처럼 심장이 쿵쿵거렸다. 다시 돌아오시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블라인드를 내리고,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기로 다짐했다.

하늘이 붉게 물들고 어둠이 내려앉을 즈음, 문밖에서 들리는 익숙한 아빠의 발걸음 소리에 후다닥 현관문을 열었다. 그리고 아빠의 모습을 보자마자 하고 싶었던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엄청난 공포 영화 한 편의 줄거리라도 늘어놓는 것처럼, 생생한 묘사와 약간의 과장까지 곁들인 내 이야기 속에서 그 할머니는 마치 공주를 위협하는 마귀할멈이라도 되는 듯했다.

무덤덤히 양말을 벗어 세탁기에 던져 넣은 아빠는, 그 할머니가 ‘건넛집 삼춘할머니’ 라며 본인 댁의 텃밭을 돌보는 일이 일찍 끝나 심심하실 때면 종종 우리 집 텃밭의 잡초를 캐주신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는 그런 할머니가 언제든 와서 시간을 보내실 수 있도록, 호미며 낫 같은 농기구들을 창고에 넣지 않고 마당 한켠에 꺼내 두었던 것이었다. 할머니를 못 알아봤냐는 아빠의 질문에 나는 너무도 당황스럽고 무서워서 얼굴을 제대로 볼 수도 없었다며 얼버무렸다.

그제야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늘 고향에 가서 살고 싶어 했던 아빠에게, 버스도 자주 오지 않고 가로등 하나 없이 캄캄해서 불편한 시골이 뭐가 좋으냐고 물었었는데,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10년 전쯤 할머니 귤 밭에서 본격적으로 귤 판매를 시작했던 아빠는, 택배 주문이 들어오면 입금이 되기도 전에 귤을 다 보내 버리곤 했다. 그 사실을 알고 놀란 나는 아빠를 다그치며 세상에 어떤 판매자가 입금도 되기 전에 물건부터 보내느냐고, 만약 구매자가 돈을 보내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다. 그러자 아빠는 “에이~ 다 아는 사람들이야. 절대 안 그래.”라며 웃어버렸다. 그때부터 나는 엄마와 함께 아빠를 두고 절대 사업은 못 할 사람이라며 놀리곤 했다.

우리 기준에서 아빠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런 아빠는 본인이 태어난 고향에 돌아가 사는 것이 한평생의 소원이었고, 다 함께 시골로 이사 가서 살자는 말에 우리는 질색을 했다. 시골에 가서 고생스럽게 살고 싶으면 혼자 가서 살지, 왜 우리에게까지 강요하느냐며 감정적으로 대하기도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혼자가 된 아빠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결국 본인의 소원대로 고향에 돌아가 집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모든 편의 시설이 갖춰진 시끌벅적한 도시에서의 삶을 즐겼다. 하지만 여러 우여곡절 끝에 난 이 불편한 시골에서 아빠와 불편한 동거를, 그것도 두 번이나 하게 되었다. 그리고 직접 이곳에서 살아보니, 아빠가 태어난 이 마을은 아빠와 정말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애월의 한 구석 작은 시골 마을, 이곳은 분명 이상한 나라다. 한여름 땡볕에서 밭일을 도와주고 돈 대신 수확한 농작물을 받는다. 그러면 그걸 한가득 차에 싣고 와서는 또 주변 이웃들과 나눠 먹는다. 그 뿐만이 아니다. 겨울에는 김장하는 집에 가 일을 도와주고 김치를 한가득 얻어 와 일 년 내내 먹는다. 또 자기 소유의 밭도 아닌데 누가 드나드는지를 살피며 든든하게 지켜 주기도 한다. 그리고 심심하면 옆집 텃밭의 잡초를 뽑기도 하고 그 텃밭의 주인은 거기서 기른 작물을 다시 가져다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이곳에서는 한 번 ‘괸당’이 되면 이유를 묻지 않아도 믿음이 먼저 온다.

니 거 내 거, 니 집 내 집. 경계를 나눠 버린 세상에서 살다 온 나에게 이 작은 시골 마을은 고요함 속에서 다정한 오지랖이 끊임없이 자라나는 이상한 나라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저는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