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언제쯤 어른이 될 수 있나요?

by 낫투비


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 되는 거야.

해야 할 공부는 많고 하기는 싫은 시험기간만 되면 나는 자유를 꿈꾸는 빠삐용마냥 어른이 되는 상상을 했다. 어른이 되면 무한한 자유를 가지고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걸 다 하며 멋진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술도 담배도 화장도 모든 것이 허락되는 그 나이, 스무 살. 교복을 입은 여드름투성이 학생에게 하이힐을 신고 예쁘게 화장을 한 어른은 너무나 멋져 보였다.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걸까. 철없는 나에게 어른이라는 건 엄청난 변화를 겪을 것만 같은 착각을 주는 단어였다.

스무 살이 되면 난 아마 멋진 어른이 되겠지?

그리고 십 대의 마지막 12월 31일. 12시가 땡 되자마자 친구들과 함께 모여 앳된 얼굴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진이 붙은 민증을 들고 술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직원이 '민증 좀 보여주세요.'라는 말을 하기를 두 눈 반짝이며 기다렸다. 우리의 기대에 부응하듯 시작된 신분증 검사에 내적비명을 지르면서 나는 인생 첫 소주를 친구들과 마셨다. 주도는 어른들에게서 배우는 거랬는데 이미 아빠의 주사로 고통받았던 나는 술 취하고 해서는 안 될 행동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인지 술자리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는 친구로 소문이 났고 매일을 친구들과 부어라 마셔라 값싼 술집을 찾아다니며 아르바이트비를 탕진하곤 했다. 성적장학금까지 받고 들어간 대학교인데 1학년 2학기에 나는 재이수를 해야 할 과목이 넘쳐났고 매일 술에 덜 깬 상태로 수업에 들어가 멍하니 강의실에 앉아만 있다가 나오는 학생이 되고 말았다. 분명 나는 스무 살이 된 어른이었는데, 술을 마셔도 화장을 해도 혼나지 않는 어른이 되었는데 내가 생각하는 멋진 어른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인간이 되어 있었다.

스무 살이 되어도 스물한 살이 되어도 스물다섯 살이 되어보아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나는 여전히 나였고 '어른'으로 바뀌는 드라마틱한 인생의 변화는 없었다. 그때 나는 어른이 되려면 나이를 더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 서른다섯 살이야. 그 쯤 되면 나도 어른이 되겠지?

스물아홉 살이 되던 해에 내 친구들은 모두 세상이 끝난 것처럼 말했다. 이제 계란 한 판이야 라는 말을 하면서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틀어댔고 이제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엔 늦은 것만 같아서 목표를 낮추고 현실에 순응해 가기 시작했다. 더러는 급한 결혼을 하기도 했다. 그 혼란 속에서 나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만 같아서 유럽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벌어진 에피소드들로 삼십 대를 즐겁게 맞이했다. 서른이 되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난 여전히 새로운 것들을 꿈꾸고 있었고 결혼은커녕 미혼인 친구가 별로 없어서 매일 엄마를 친구 삼아 함께 놀러 다녔다. 괜찮아. 아직 나는 어른이 아니니까. 서른다섯이 되면 외제차를 사는 거야. 어른이 되는 기념으로! 아우디 R8을 사야지! 그럼 서른다섯이 되기 전까지는 더 신나게 놀아야지.

그렇게 나는 서른다섯이 되었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차를 바꾸긴 했지. 하지만 아우디는 아니었다. 어른이 되지 못해서였달까. 조금은 실망스러웠다. 숫자는 커졌는데 왜 나는 어른이 되지 않는 거지? 뭔가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하는데 나는 여전히 하기 싫은 게 있으면 뒤로 미뤄놓는 사람이었고 갑자기 충동적으로 빗 속에 우산도 없이 뛰어들어 와하하 웃으며 노는 사람이었고 술을 진탕 먹고 숙취에 시달리며 다시 술을 마시면 내가 개다! 를 몇 번이나 반복하는 어리석은 사람이었다. 분명 어른이라면 이런 삶을 살진 않을 텐데 나는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한 게 분명해.

그럼 몇 살이 되어야 어른이 되는 걸까? 마흔이면 어때? 혼자 얼토당토않은 협상이나 하고 앉았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서른아홉이 되었다. 몇 개월 후면 맞이하게 될 마흔이지만 글쎄, 고작 그 사이에 내가 어른이 될 것 같진 않다. 멋진 어른이 되고 싶어서 나름 운동도 열심히 하고 이것저것 배우기도 해보고 다양한 경험도 쌓아봤는데, 아직도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고 심술을 부리기도 하며 철딱서니 없는 행동을 한다. 어른이라면 이러지 않을 텐데...

갑작스러운 나이 계산법이 유행을 했지만 나는 숫자에 약한 사람이라 여러 가지의 나이를 가지는 게 복잡해서 싫었다. 누군가는 고작 숫자가 바뀌는 걸로 젊어지는 기분을 내보지만 난 해가 바뀔 때마다 내 나이를 세는 것조차도 버거운 사람이었다. 그래, 나는 서른 아홉이야. 스물아홉에 떠났던 유럽여행의 추억으로 삼십 대를 행복하게 살아냈으니 사십 대를 행복하게 살아낼 무언가의 이벤트를 해야 할 것만 같은 강박에 시달린다. 히말라야 트래킹을 가볼까 이집트를 가야 할까 아니면 마추픽추라도 다녀올까. 산티아고 순례길?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무덤덤하게 12월 31일 밤을 보낼 것이고 1월 1일을 맞이할 것이다. 어차피 마흔이 된다고 해서 내가 어른이 되는 건 아닐 테니. 마흔다섯 살 쯤이면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또 한 번 어리석은 기대를 해본다.

어른이 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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