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이상>을 읽고
아래 글은 중학교 3학년이었던 필자가 여름방학과제로 제출하고 교내 최우수작으로 선정되어, 주요 독후감 경선대회에 출품되었던 글이다. 부족한 점이 많은 중학생의 글이지만 오랜만에 어린 시절의 나를 마주하는 즐거움과 순진한 애늙은이(?)를 보는 듯한 신기함에, 부끄럼을 이겨내고 타이핑해서 올려본다. 에세이와 비슷한 주제여서 내용을 몰라도 쉬이 읽어 내려갈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책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맨 아래 내용 요약부터 보실 것을 추천한다.
목차
책을 읽고 나서 생각해본 '나'에 관하여 : 자기 자신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책을 읽고 난 후의 깨달음과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내용 요약
조그맣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가능성'은 존재하고, 우리는 그 가능성이 매우 적어도 그것에 희망을 거는 것을 '용기'라고 부른다.
-본문 중에서
이 책을 읽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윤이상'이라는 사람이 굉장히 용감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 그런 면에서의 나는 형편없기 그지없다. 어렸을 때는 잘 생각이 안 나서 모르겠지만 최근 몇 년 간의 나를 보면 무조건 편하게만 살고 싶어 한 것 같다. 지금까지도.. 안이한 세상 속에서 내가 나도 모르게 물들어 버렸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걸 깨달은 순간 나는 나 자신이 그렇게 부끄럽고 비참할 수가 없었다.
또 윤이상이 조국을 사랑한 만큼, 나도 사랑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니요..' 그는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조국을 사랑했다. 나는 그가 그렇게도 기리던 조국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행복은 가까이 있으면 찾을 수 없다고 했던가?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대한민국에 대해서 거의 포기 상태에 이르렀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외국에 나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코리안인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이런 걸 보고 '누워서 침 뱉기'라고 하는 건가?
내가 윤이상을 읽고서 나에 대해 느낀 것은 이렇게 부정적인 것뿐만은 아니었다. 윤이상은 언제나 당당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한 일은 곧바로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었다. 이런 면은 어떻게 보면 정말로 용기 있는 것이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경솔하기도 하다. 나는 그렇게 행동으로 곧장 옮기지 못한다. 하지만 그 일을 하기 전까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여 정말로 잘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까지 신중을 기하는 편이다. 그 덕분에 용기 없단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신중한 사람이 되기도 했다. 물론 무조건 생각을 많이 한다고 그 선택이 올바른 것일 수만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위험은 적어지기에, 안전주의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런 나의 성격이 나의 인생에 있어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어떤 일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은 좋은 일일 테니까.
윤이상은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또는 그것만 생각하면서. 언제나 그는 그의 길인 음악만을 생각했다. 나는 솔직히 말하면 아직 나의 길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진로에 대해서 생각하고 직업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아보는 모습을 보면, 제일 먼저 보는 것이 보수와 전망이었다. 윤이상은 단지 자신이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도 선택하지 않았던 음악을 선택했다. 물론 그가 음악적 재능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거의 모든 위대한 예술가가 그렇듯 그 또한 재능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그 시대에서 음악을 선택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반의 사고를 갖고 계시는 아버지의 반대, 그리고 그 길을 선택했을 때 실패할 가능성, 확실히 거의 모든 게 불확실했다. 그러나 그는 그 조그만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했고, 그 선택은 그가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나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과연 나는 나의 길을 그렇게 선택할 수 있을까? 지금 나에게는 내가 어떤 선택을 하든 끝까지 밀어주실 부모님이 계신다. 윤이상이 부모님의 아낌없는 지원은 거의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 비하면 나는 행운아이다. 그렇지만 내가 이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모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이어야 하는 꽃다운 나이 16살에 나는 벌써 '세상 다 산 늙은이'마냥 편안함만을 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건, 아직 늦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그맣다고 하더라도 언제나 '가능성'은 존재하고, 우리는 그 가능성이 매우 적어도 그것에 희망을 거는 것을 '용기'라고 부른다. 나는 아직 용기를 갖추고 있진 못하지만 적어도 그 용기를 갖출 수 있다는 '가능성'은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가능성에 희망을 걸 것이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생각해 본 나는 '용기 없고, 안이하고, 애늙었고, 조국을 사랑하지도 않는' 정말 거의 윤이상과 반대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윤이상과 같이 조그만 가능성에도 희망을 걸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가능성들에 희망을 걸며 나의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갈 것이다.
내가 알고자 하는 인생이란 단순히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이겨'내고 '성취'하는 의미에서의 인생이다
-본문 중에서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책이었지만 이 책이 나의 인생에 미치게 될 영향은 결코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어린 시절에 나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무언가 모험을 바라고 있었다. 모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어디든지 내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누군가 '앞으로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물으면, 장래희망(직업)을 얘기하기보다 '저는 힘든 일이 있어도 꿋꿋하게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예요'라고 대답했었다. 그리고 직업을 가질 때 경제적인 면이나 남들의 이목보다는 '보람'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내 모습에서 그 패기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나약한 모습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진로를 생각할 때도, 안전성, 보수를 먼저 고려했다. 이렇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던 내가 이 책에서 깨달은 진리가 있다면 그것은 인생을 향한 도전과 용기다. 실패는 나약한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도전하는 자만이 실패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두려워서 피해 가려고 했던 것이 실패만은 아니더라도, 그게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패기를 가지고 극복해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그렇게 충격과도 같은 느낌의 커다란 감동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어쩌면 이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삶이란 이런 '굴곡'의 변화가 있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밋밋하고 도전이 없는 삶은 '삶'이라 칭할 수 없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또 그에 따라오는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것. 당당하면서 아름다운 삶만이 진정한 '인생'일 것이며, 그 가운데에서 참 맛을 느끼고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까지 안이하게 생각해왔던 모든 것을 버리는 것'. 그것이 지금 16살의 내가 가장 처음 하는 도전이 될 것이다.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역경과 어려움이 있을 테지만, 이젠 더 이상 피하기만은 하지 않겠다. 피하는 것보다 맞서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역경에는 맞서면서 인생을 즐기는 것. 그것이 앞으로 내가 살아가면서 이뤄나갈 내 인생 최대의 목표가 되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은 무엇일까? 단순히 생각하면 사람이 살아온 발자취 정도로 해둘 수 있겠다. 그러나 내가 알고자 하는 인생이란 단순히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이겨'내고 '성취'하는 의미에서의 인생이다. 윤이상의 삶이 그러했듯이 나 또한 무언가 모험을 할 수 있는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어려움이 없는 삶이란 없다. 그러나 그 어려움을 극복하느냐, 굴복당하느냐에 따라서 '살아온'인생인가 '이겨낸'인생인가가 판가름 난다. 삶 자체를 하나의 도전으로 보는 것. 나 혼자서 세상을 상대할 수 있다는 패기. 이것이 젊은, 아니 오히려 어린 나에게 가장 적합한 '인생에 대한' 자세가 아닐까?
'무난한 삶을 살았다' '평범한 삶을 살았다' 사실 평범한 게 가장 힘든 것이라고는 하지만, 이러한 문구들은 삶을 '대충' 살았다는 느낌밖에 주지 않는다. 그냥 좀 잘 사는 집에서 태어나서 대충 공부하고 대충 취직하고 대충 결혼해서 대충 살다가 대충 죽어가는 것. 어찌 보면 가장 편안한 삶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따분한 삶이다. 무언가 내가 이 세상에 살았었고 그로 인해 어떤 일이 있었고, 나의 빈자리는 어떻고... '살아도 그만, 죽어도 그만'인 사람이 되기보다는 죽어서, 없어져서, 그 자리가 명백히 드러날 만큼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자리는 아무에게나 오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노력해야겠지만, 적어도 투쟁하는 노동자의 삶이 안이한 부자의 삶보다 낫다는 것, 나약하고 해이해진 권력자보다는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시민이 더욱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 이런 사실을 알게 해 준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지불할 수 없을 만큼의 가치를 주었다.
누군가 그랬던가? 책은 또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이라고. 그 얘기는 정말 사실인 것 같다.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조금 더 편안한 삶을 찾으려고 했던, 현실에 물들어 버렸던 내가, 윤이상이라는 사람의 삶을 통해서 그런 삶이 더욱 아름답다는 걸 깨닫고 진정한 삶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돈이 많은 사람, 지식이 뛰어난 사람, 권력이 있는 사람들보다 아름다운 사람이 더욱 훌륭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참맛이라는 것을 나는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가만히 있어서 흐르는 세월이 아니라, 그저 좇아가는 시간이 아니라, 시간이 나의 움직임에 따라오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시련을 굴복시키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그렇게 인생이라는 하나의 큰 산에 도전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윤이상은 일제 식민지 시절에 태어 났다. 뭐하나 특출 난 것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태몽이 독특했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 꿈까지도 고난을 뜻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양반이라는 점에 대단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는, 그가 음악을 시작했을 때 무척 반대했다. 그러나 윤이상은 그런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서 음악을 공부한다. 그러다가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는 욕심에 아버지에게 '상업학교에 진학하겠다'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하고 일본으로 간다. 하지만 조선인에 대한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돌아온다. 그 이후 교편을 잡았지만, 그 생활도 얼마 견디지 못하고 일본 유학길에 오른다. 얼마 후 광복의 움직임이 보이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독립운동을 한다. 그러다 일본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받게 되고, 풀려난 이후에도 감시를 받게 된다. 하지만 나중에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는 감시인을 설득해 오히려 더 안전하게 첼로를 들고 탈출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독립을 하고 그는 조금이라도 조국에 도움이 되기 위해 전쟁고아들을 맡는 일을 한다. 그렇지만 '자리'에 대한 욕심에 휘말리기 싫어서 그만두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교직생활을 한다. 그리고 거기에서 지금의 부인과 만나 결혼을 한다. 그 이후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났고, 힘든 시절을 이겨내도 딸아이 '정'을 얻었다. 56년에는 서울시 문화상을 받고 프랑스 유학을 가게 되었다. 가톨릭의 날 행사에서 그의 '현악 4중주 제1번'이 연주된다. 그리고 다름슈타트에서 열리는 현대음악제에 <일곱 악기를 위한 음악>을 출품해 인정을 받게 된다. 아내를 독일로 불러온 이후 <로양>을 작곡했다.
이후 그는 친구 최상한을 찾기 위해, 그리고 강서고분 벽화 사신도를 보기 위해 북한으로 짧은 여행을 갔다가 돌아왔다. 그로부터 3주 후, 그는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으로 납치된다. 이 사건은 국내의 뒤숭숭한 여론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일종의 연출이었다. 그가 납치되어있는 동안에 온 독일이 일어났고 결국 한국 정부는 굴복하게 되었다. 그는 2년 동안의 고통에서 해방되었지만 불안감에 싸여 독일 국적을 신청하게 된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그는 축전 오페라 공연의 제작을 맡았고, 여기서 한국적 영상을 그대로 살린 심청이 울려 퍼지게 된다. 그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굳게 닫힌 남한의 문은 열지 못한 탓에 북한과의 교류만이 가능했다. 그로 인해 그가 남한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그럼에도 그는 남한에 대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였다.)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 그는 그 참상을 담은 '<광주여 영원히>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1988년 바이츠제커 대통령의 대공로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 무렵 그는 몸이 점점 허약해져 갔고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더욱 많아졌다. 그럼에도 그는 통일 음악회를 준비했으나 실패했다. 남한에서 열리는 '윤이상 음악제'에 가려고 하였으나 사과를 하라는 정부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어 포기했다. 다시 돌아갈 때는 반드시 명예회복을 하리라고 다짐한 후였기 때문이었다.
마지막까지 조국을 사랑했던 윤이상. 온 세계가 그의 업적을 칭송했으나, 오직 조국만이 그를 외면했다. 고향 땅 (통영)이 아니면 이국 땅에 묻히겠다던 이상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남북한의 관계를 걱정했다. 한국이 낳은 위대한 영웅 윤이상은 1995년 11월 3일 16시 20분 한 많은 인생을 마쳤다.
*이미지 출처 :
http://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170326000156
https://blog.naver.com/fydwjddbrwja/2203828176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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