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감독들에게 배우는 인생을 경영하는 법
히딩크를 기억한다.
그러나 갑자기 국가대표 감독으로 등장해서 프랑스와 친선경기를 하며 5:0의 쓰라린 패배를 맛볼 때까지만 해도, 한국인들은 그의 실력을 의심했고, 당시 최고의 골키퍼로 이름을 날렸던 김병지 선수 대신 신인을 수문장으로 세운다는 소식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의심도 잠시. 16강 전에서 연장전 끝에 단비와 같은 역전 골로 승리했을 때, 박지성 선수가 포르투갈전에서 그의 품에 달려가 안겼을 때, 그 모든 의심은 지워졌고 그의 놀라운 코칭과 감독에 대한 칭찬이 넘치다 못해 명예 한국인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그의 지휘 방식을 소개하고 분석하는 수도 없는 많은 기사가 쏟아졌지만, 결론은 “그가 특별하다’는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 이후로 한국은 월드컵에서 4강은커녕 16강에도 진출하지 못했고, 그때마다 히딩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주를 이루었다. 경기에서 주인공은 선수들이지만, 때때로 히딩크 같은 위대한 감독들은 (같은 선수 풀을 가지고도) 압도적인 기량차를 보여주며 이 모든 것이 감독의 역량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한 발자국 뒤에 서서, 경기를 만들어내는 감독들은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지도하는 걸까. 그들의 원칙을 배운다면, 스포츠 경기와 같다는 이 인생에도 그 깨달음을 적용해볼 수 있지 않을까. 위대한 감독들의 삶의 원칙, 지도의 규칙을 함께 배울 수 있는 (재밌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NBA의 놀라운 감독 닥 리버스, 미국 여자축구 월드컵 우승에 빛나는 질 엘리스, 유럽 축구계의 놀라운 승리 메이커 조제 모리뉴, 테니스의 여제 세레나의 감독인 파트리크, 마지막으로 여자 농구의 판도를 바꾼 돈 스테일리까지, 기라성과 같은 감독들의 놀라운 지혜를 함께 배워보자.
아사다 마오와 김연아를 분석하는 여러 글에서 동시에 발견하는 건 멘털이다. 실수를 하거나, 대진표가 좋지 않을 때 일희일비하는 아사다와 달리 늘 평정심을 잃지 않는 김연아의 모습은 여러 비디오와 글을 통해 그려졌다. 사실 김연아에게도 실패가 없진 않았다. 그녀도 엄청난 부상에 시달렸고, 슬럼프 아닌 슬럼프를 겪기도, 은퇴 번복 및 재기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둘의 가장 큰 차이는 그 실패를 어떻게 이겨냈는지에 있었다. 여자 농구를 이끈 돈 스테일로도, 그 유명한 세레나의 코치인 파트리크도 그 비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실패를 실패로 끝내지 않도록 하는 것. 한 번의 실패가 내 인생을 결정짓도록 않도록 해야 한다고.
실망하게 될까 봐 두렵다
기대주로 자란 이들은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한다. 가능성의 영역에 남아있는 것이 안전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시험 당일 아침에 엄마에게, 친구들에게, “공부 하나도 못했어.”라고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대감을 낮추고, “안 한 것”이지 “못한 것”은 아니라고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 감정은 우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만 하는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실패할까 봐 두려운 감정이 들 때는 행동으로 그 두려움을 격파하라고 파트리크는 가르친다. 실제로 열심을 다할 때는 현재에 대한 감각과 인식으로 가득 차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몰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열심을 다했음에도 슬럼프가 찾아오거나 천운이 닿지 못해서 실패를 경험했을 때, 돈 스테일리의 말처럼 단 하루만을 그 실패에 할애하면 된다. 한 번의 실패가 자신의 삶을 다 잡아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과도한 자기 연민에 휩싸여 실패가 나를 삼키도록 내버려 둘 때가 있다. 물론 낙심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조절하는 것 역시 중요한 성공의 열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닥 역시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며, 스스로를 실패자로 낙인찍기보다 앞으로 나아가는데 집중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실패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은 모두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다루고 또 극복해내는가가, 우리 삶의 중요한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좋은 팀만이 줄 수 있는 최고의 효과. 시너지
We are not competitors, this is team-work.
경쟁이 치열한 경기, 무한 경쟁 시대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가끔 주변의 모든 사람을 라이벌로 여기는 잘못을 범하기도 한다. 그러나 냉정히 현실을 들여다보면, 사실 우리가 출전한 인생이라는 게임은 개인전이 아니라 팀 대항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포츠를 보아도 11명이 뛰는 축구에서도, 1명이 출전하는 테니스 개인전에서도, 각 선수는 감독, 코치 등과 팀을 이뤄 경기를 준비하고 치러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팀을 만들어내느냐에 따라 성적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다.
NBA의 유능한 팀 리더 닥 리버스는 이야기한다. 각자 자신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생활양식을 가질 때, 그것이 낫다는 신념을 가질 때, 각자의 능력과 팀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발휘할 수 있다고. 그리고 승리 자체가 아니라 우리를 우선으로 둘 때, 승리는 찾아온다고 말이다. 이러한 팀워크 아래서는 스타플레이어도, 신인선수도 자신보다 팀을 앞세우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적재적소에서 각 개인이 활용될 수 있고, 각자가 100점인 개인들의 집합보다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
테니스는 개인전이라 혼자의 싸움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세레나 역시도 감독과 코치와의 팀워크를 이루면서 슬럼프를 극복할 수 있었다. 스타플레이어들은 주변에 이익을 위해서 몰려드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벽을 치거나 선을 긋는 데 익숙했다. 그러나 이런 태도로는 팀을 세울 수 없고, 팀이 없이는 넘어지는 선수를 구해줄 방법이 없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걱정과 약점도 나눌 수 있는데, 각자도생 한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약점을 알 수도, 그래서 고칠 수도 없기 때문이다. 파트리크 감독 역시, 자신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함께 할 수 없다는 강수를 보여줌으로써 세레나에게 인정과 신임을 동시에 얻고, 그녀를 지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또 한 번의 그랜드슬램으로 나타났다.
팀빌딩은 어렵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태도도 본능으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번 결성된 끈끈한 팀워크는 결국엔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더라도 팀을 위해 몸을 던지는 방식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팀워크가 좋은 팀의 성과는 잘난 개인의 단순 합산보다 훨씬 큰 성과를 보여준다. 우리의 삶에서도, 스스로 좋은 팀을 꾸리고 있는지, (단순히 조직도 상에서의 팀이 아니라) 인생에서 함께 갈 팀메이트를 구성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는 지점이다.
어떻게 하면 마음을 움직여서 헌신을,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스스로의 잠재력을 100% 이상 발휘할 수 있을까. 열심히 하고 싶은데 동력이 없어서인지 작심삼일로 그치고 마는 스스로를 보면서, 또 추진력을 잃어가는 팀을 보면서, 머릿속은 동기부여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 찬다. 경영학에서는 측정되는 성과를 목표로 세우고, 이를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고, 수많은 자기 계발 서적에서도 성과목표나 몰입은 가장 기본적인 지표로 제시된다.
그러나 우리가 원하는 열심, 헌신(commitment)은 측정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주일에 100시간 이상 앉아있다고 해서 그 시간 내내 공부의 효율이 오르지 않는 경우도 있고, 판매량이나 이익으로 성과지표를 세운다고 해도, (그건 최소한의 필요조건일 뿐) 더 나은 성적을 보였을 수 있는 가능성이나 잠재력은 언제나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조건이 우리를 완전히 몰입하게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낼 수 있는 가능성을 100% 발휘하게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굴지의 선수를 이끌어냈던 감독들은 이렇게 대답한다. 신념을 가지는 것이라고. 그 신념은 우분투라고 하는 생활양식일 수도 있고, 동등한 보수라는 외침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신념이 옳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 신념을 생활 속으로 내보이려고 할 때, 사람은 최소한의 자기 이익도 내버리고 신념을 따라 움직일 수 있다. 미국 여자 축구 선수들은 할리우드를 비롯한 미국 전역을 휩쓸었던 동등한 보수라는 어젠다에 자신들의 경기와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그 말이 반응을 얻게 하기 위해 연습했고, 경기를 했다. 월드컵에서 우승하면서, 팀을 응원하는 모든 사람들이 “동등한 보수”를 응원 구호로 외쳤고, 그만큼 파급력 있게 퍼질 수 있었다.
아래 글에서 변화는 희망찬 희생정신에서 비롯된다고 이야기했었다.(원글 링크 : 끝내 돌아오지 못할 길)
올바른 곳으로 가고 있다는 믿음, 그리고 그렇게 올 영광을 조금 더 당겨보려는 소망과 희생 덕분에, 자유와 평등을 실제로 이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기장에서의 승리를 통해서 세상에 메시지를 전달할 수도 있다. 김연경 선수는 광복절에 일본 브랜드를 가리고 출전했고, 먼 옛날 동아일보는 일장기를 지웠으며, 미국의 여자축구 선수들은 평등한 보수를 외치며 출전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메시지의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실제 효과적으로 전해지려면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선수로서의 몫을 다 해낼 때만 그 메시지가 전달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좋은 말과 구호를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경기력으로 주목받지 못한다면 그 메시지에 오히려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감독 질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만일 자신의 신념이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기본적으로 실력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실력 없이 외치는 구호는, 자신의 실력 부족에 대한 핑계이자 불평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념에 대한 열정으로 여자축구 선수들은 그 해 월드컵 우승과 구호 확산을 동시에 얻을 수 있었다.
운동 경기를 보면, 가슴이 뛴다. 잘 모르는 경기 운영방식이어도, 선수들의 표정에서 관중들의 함성에서 경기를 이끌어가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고, 파도에 휩싸일 수도 있다. 각본 없는 드라마라는 표현이 보여주듯,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선수들의 경기. 그 선수들을 조명하는 스포츠를 보다 보면 어느새 그 경기에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가장 다이내믹한 인생의 축소판인 스포츠. 경기 하나하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가는 감독들의 이야기에서, 내게 (진짜) 필요한, (살아있는) 삶의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원칙을 배울 수 있었다. 이제 실제 이 원칙이 어떤 놀라운 승리를 가지고 올지 지켜봐야겠다.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배경그림 출처 : http://m.khan.co.kr/view.html?art_id=201205310001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