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결과를 알 수 없는 생존 게임

<10대 사건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감상평

by 오늘도맑음
칼레 옥쇄 : 영국으로의 구출(철수) 작전이 취소되었다.


칼레에서의 퇴각 계획은 취소되었다.


들어가며 : 그저 그런 전쟁 이야기가 아닌 "진짜" 전쟁 이야기


영국 정부는 30만에 달하는 육군을 본토로 퇴각시키기 위해, 칼레 부근에 주둔한 병력으로 독일군의 시선을 끌어 시간을 벌기로 했다. 칼레 퇴각 계획을 믿고 적은 병력으로 봉쇄된 성에서 끝까지 싸우던 니콜슨 준장은, 영국 정부가 칼레를 포기하기로 했다는 전보를 받는다. 얼마 뒤 칼레는 함락당했고, 병사 대부분이 사망하거나 포로로 끌려갔다. 영화 <다키스트아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던 포기"당한" 부대의 이야기는 군대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전해준다. 전쟁 승리를 위해서 사용되는 전투력으로서 - 때때로 배수진을 치고 죽을 때까지 싸우라는 등- 전략을 실행하는 도구로 다뤄지는 매체가 대부분이었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그 구성원은 사람이고 하나하나의 인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승리를 위해 쉬이 희생시킬 수 있는 체스의 말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배울 때 우리는 단편적인 사실들을 가지고 승패를 재단한다. "철기 무기", "조총"과 같은 신기술로 인해 전쟁에서 질 수밖에 없었다던지, 마치 체스에서 어떤 말을 가지고 어떤 전략을 구사하는지에 따라 승패가 쉽게 갈렸던 것처럼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여기, 실제 발생했던 세계대전의 주요 장면을 가지고 이에 대해 대답해주는 다큐멘터리가 있다. <10대 사건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 시리즈에서는 사실 현실에의 전쟁에서는 아무리 대단한 무기를 가지고 온다고 해도 쉽게 승리를 쟁취할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수도 없이 많은 전투와 치열한 희생 끝에 지휘부의 결단이 있어야만 끝나게 된다는 걸 당시의 화면을 재현하며 담담하게 전달한다. 이 글에서는 세 가지의 어록을 토대로, <10대 사건으로 보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비친 "통념과는 다른" 전쟁의 모습을 다뤄보려고 한다.


정유소에서 나오는 연기와 구름으로 가득 찼던 덩케르크
날씨가 맑다는 데 1개 대대를 걸도록 하지


by luck : 날씨와 타이밍

전쟁은 실제 상황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 실제 상황에는 지리적 요인이나 병력 수와 같은 주어진 조건 given condition 이 있는 반면에, 아무도 예측하기도 통제하기도 어렵지만 중요한 변수가 있으니, 바로 날씨다. 물론 훈련은 여러 날씨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받지만, 실제 전투에서 날씨가 미치는 영향은 전략이 성공적인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덩케르크 작전에서, 연기와 구름이 가득한 하늘과 폭풍은 악명 높던 슈투카 폭격기의 조준을 무력화시켰다. 우중충한 하늘로 인해 공중 우세권을 저지당한 까닭에 독일군은 30만의 영국군이 본국으로 퇴각하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공중전이 부각되기 시작한 제2차 세계대전부터는 시야 확보가 중요한 변수였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 외에도 아르덴 공세, 스탈린그라드와 같은 내륙전투와 미드웨이 해전에서도 날씨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그러나 구라청이라 욕먹는 기상청의 어려움에서 보이는 것처럼 날씨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때문에 날씨가 맑아야만 또는 흐려야만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을 짜는 것은, 사실상 도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링은 날씨가 맑다는 데에 공군을 걸었고, 히틀러는 흐릴 것이라는데 육군(벌지 전투)을, 처칠은 폭풍우에 해군을 걸기도 하면서 전쟁의 명암이 계속해서 엇갈린다. 이처럼 날씨가 작전의 성공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사실 전쟁의 승패가 (미리 정해져 있다기보다는) 하늘에 달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옳은 명분"을 가지고 있는 쪽이 아니라 비교적 정확하게 날씨를 예측한 쪽에 승률이 올라간다는 점은, 승패를 가리기 어려운 전쟁의 특성을 더욱 부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자결할 수 없소

지휘관의 성격이 미치는 나비효과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소련군에 완전히 포위된 독일군은 끊임없는 국지전에 지쳐있었다. 보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혹한을 몸으로 견디고만 있는 가운데, 지휘관인 파울루스는 상부의 "버티라"는 명령에 충성하기로 결정한다. 전장에 있기엔 융통성이 부족하고 예민한 지휘관을 둔 덕분에, 30만 명의 독일군은 "주머니쥐"가 되어 퇴각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게 된다. 히틀러는 자결하라는 의미로 그에게 원수 직위를 내렸으나, 그는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자살을 할 수 없다고 하며 항복하는 길을 택하게 된다. 그 외에도 나치 내부의 정치적인 입지 때문에 공군의 보급력을 과대 포장하던 괴링, 자신의 건재함- 군 통수권-을 보여주기 위해 승리를 눈앞에 두고 전진을 정지시킨 히틀러, 루스벨트의 오른 팔로 일본 본토 침공을 반대하던 리히 등 지휘관들의 성향과 성격에 따라 그들의 입맛에 맞는 작전들이 선택적으로 시행되었고, 이는 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굵직한 사건이 되었다.

전쟁이라는 위기 상황에서 군대의 의사결정은 절대적인 상명하복을 따르게 된다. 따라서 지휘관의 선택은 작게는 소대부터 크게는 대대, 연대에 이르기까지 전체 부하 군인의 운명을 좌우한다. 위에 서술한 날씨가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라면, 지휘관의 성격 character은 지휘관을 바꿀 수 있다는 전제하에 통제 가능하지만 날씨에 비할바 없이 중요한 조건이다. 물론 히틀러라는 최강 빌런의 행보에 비춰보면, 모두가 그저 그런 부하로 보일 수 있겠지만, 실제 각 전투의 승패에는 각 지휘관이 얼마나 적합한 역할을 맡고 있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 같은 파울루스여도 후방을 맡았을 때는 능수능란한 행정가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전방에서 특별히 패색이 짙어가는 가운데에서는 그에게 지혜로운 선택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기에 급변하는 전쟁의 맥락을 더하여 보면, 특정한 상황이 특정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 통수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예측불가능에 가까울 수 있다. 결국 지휘자의 캐릭터 역시 또하나의 불확실성을 더하는 중요한 변수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해변에서, 육지에서, 거리에서 싸울 것입니다!


평범한 민간인들의 전쟁수행

위 인용 영상은 윈스턴 처칠이 전의를 다지기 위해 발표한 유명한 연설이다. 전쟁 등 위기상황에 카리스마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예시로 쓰이기도 하지만, 사실 그에게는 전쟁에 승리하는 것만큼이나 국내 여론을 우호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민의 지지는 전쟁 승리의 필수적인 요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풍전등화 같은 상황이라고 해도 국민의 대다수가 (전쟁에 참여하여) 국가가 승리하길 바란다면 그 애국심에 기대어 새로운 전략을 짤 수 있다. 스탈린그라드의 평범한 민간인과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인들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군인만큼은 아니더라도 총알받이가 되어 적어도 시간을 벌어줄 수 있는 자원이기도 하고, 전쟁으로 허덕이는 국고를 채워줄 수 있는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국내 정치에서 지지기반이 없으면 전쟁수행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 미국 역시 진주만 공습으로 여론이 반등하고 나서야 참전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적국에 이 땅과 나라를 넘겨줄 수 없다는 의지의 영역을 넘어, 민간인들이 겪어야 했던 전쟁은 간접 경험에 그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군인으로 파병된 남편과 아들을 잃었을 뿐 아니라, 본토 침공으로 인해 집과 일터를 잃고 본인의 목숨이 위협당하기도 했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으로 민간인 2,900만 명이 사망하여 군인 사망자 1,800만 명에 비해 1.58배나 더 많다. 한편으로는 나치의 만행을 목도하고도 묵인하거나 동조하여 인간에겐 악한 면이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철학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이제 더 이상 전쟁은 군인만 겪는 문제가 아니었다. 민간인도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론 소극적으로 자국을 지지하며 전쟁을 수행했고, 한편으론 표적이 되어 엄청난 피해를 입기도 했기 때문이다. 체스판 위의 말뿐 아니라 그 옆에 놓아둔 장기말까지도 게임에 참여하게 되는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1,400만개의 경우의 수 중 이기는 1가지 뿐이라는 닥터스트레인지


나가면서 : 운명적인 (정해진) 승리는 없다


가까스로 이기거나 혹은 지거나

우리는 전쟁에 대하여 배운다. 주로 몇 년도에 시작되어서 언제 끝이 났는지, 어떤 주요한 전투가 있었으며 어떤 신기술과 무기 덕분에 승전국이 승리할 수 있었는지를 학습한다. 한편으로 전쟁의 참상에 대해서 듣고 보기도 한다. 참전했던 군인의 이야기나, 전쟁터에서 민간인으로 살아남은 사람들, 그리고 전투 장면을 하나씩 클로즈업하여 그 비참함과 끔찍함에 대해서 배운다. 그러나 승전국이 승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결과론적 관점이나 가장 귀납적인 방식에서 경험담을 수집하는 것 이상의 큰 그림을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지휘관의 성격이 중요한 전투의 향방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Dday의 날씨가 나빠서 혹은 좋아서 다 세운 전략이 무용지물이 될 수 있었는지- 그 시점의 인물과 상황에 대입해볼 수 있는 콘텐츠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우리가 배우는 (승자의) 역사와 달리 승리가 정해져 있는 전쟁은 없다. 승리는 수도 없이 많은 경우의 수 중, 여러 조건이 다 들어맞는 단 하나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런 맥락에서 처칠이 끝까지 싸운다고 이야기했던 건, 결과에 대한 확신은 주기 어렵지만 과정에서 선택하는 것은 국가의 몫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승리해야 하는 명분과 책임은 분명하다 해도, 승리 자체는 어느 쪽도 예단하기 힘든 결과일 뿐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담담한 어조로, 10개의 중요 사건을 짚어서 승리 공식을 그려간다. 하늘의 도움이라는 날씨, 지형, 지휘자의 성격에 덧붙여 민간인의 원조까지, 거의 우연에 가까운 확률로 전쟁은 한쪽의 승리로 흘러간다. 그나마 각 전투를 들여다보면 양측 모두 엄청난 피해를 서로 입고 입힌 후에서야, 먼저 포기하는 쪽이 패배한다고 선언될 뿐, 뚜렷하고 완전한 승리는 없다. 그나마 승자인 연합국 역시도 엄청난 피해를 입었으며, 마지막 패자인 일본에서조차 끝까지 전의를 불태워 항복을 반대하던 세력이 있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어느 쪽도 (고통이나 희생 없는) 일방적인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누가 승리할지 깜깜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건 도박을 반복해야하는 게임 - 전쟁. 심지어 그 결과로 얻은 것조차 상처뿐인 영광일 수 있다는 것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였다.


*사진출처
-파울루스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1/Bundesarchiv_Bild_183-B24575%2C_Friedrich_Paulus.jpg

-덩케르크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ruceltk&logNo=221055598682&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닥터스트레인지 : https://moviesandchill.com/post/176471390484/strange-you-all-right-avengers-infinity-war

*영상출처 (처칠) :https://www.youtube.com/watch?v=7ztq8ey3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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