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온도

by 오냥


눈물이 날 것 같았던 건
내가 한 말이 진심이었기 때문이었고,
그 진심이 꿀밤 한 대에 무마될 게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삶이 아무리 위태롭더라도 최악의 선지는 결코 존재할 수 없을 거라 믿어왔다. 남은 이들에게 평생을 감내해야 할 고통의 족쇄를 채우고 갈 만큼 한 사람의 고통과 이를 덜고자 하는 행동이 정당화될 수 없을 거라는 믿음이었다. 그리고 그게 옳은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항상 그래 왔듯이 절대 깨질 수 없을 것처럼 굳건해 보이던 것도 그 믿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쉽게 깨지기 마련이다. 호기로운 시작과는 달리 그 끝이 혀에 대기도 힘들 만큼 씁쓸할 때였다. 침대 모서리에 걸쳐진 내 팔뚝을 보며 끝을 생각했다. 떨어지는 것이 비단 뜨거운 피뿐만은 아니기를 바랐다. 나만이 이 굴레라는 것이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니겠지만 모두가 그런 거라면 굳이 이 썩은 동아줄을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버티는 것이 이기는 거라는데, 굳이 버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퇴근길 버스 차창 건너로 보이는 그 한강이 유독 더 검고 깊어 보였다.



시간이 약이라던가. 내 옅은 회색의 베갯잇이 짙은 회색을 띠지 않게 되었다. 지긋하고도 길었던 그 순간의 터널을 드디어 건넜다거나 이겨냈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조금 더 무뎌졌을 뿐, 조금 더 무신경해졌을 뿐. 존재의 이유는 없고, 단지 그저 살아가고 있을 뿐이고, 거기에 끝이 가까이 있다면 나는 조금 더 행복할 것이고. 그런 상태가 한동안 지속되고 있을 때, 또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하고 친구와 함께 탄 지하철 안에서였다. 한강 위로 지나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한강의 온도를 측정하고 싶다고 했고, 내 친구는 요 녀석, 그런 말은 하지 말라며 나에게 꿀밤을 한 대 놔주었다. 나는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주책인 것 같아 헛헛한 웃음을 지으며 눈물을 감췄다. 눈물이 날 것 같았던 건 내가 한 말이 진심이었기 때문이었고, 그 진심이 꿀밤 한 대에 무마될 게 아니란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농담이지만 농담이 아니던 그 말과 내 친구의 나를 다그치는 행동은 서로의 의도와는 다르게 어딘가 엇나가 있었다.



그랬던 친구가 한날 나에게 죽고 싶다는 말의 의미를 물었다. 본인의 친구가 그런 말을 내뱉었고, 장난인지 진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예전에 내가 했던 말들이 생각나서 나에게 물어본다고 했다. 나는 내가 만약 그런 말을 타인에게서 듣는다면 그건 분명 텅 빈 말은 아닐 거라며 인생은 개 같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른다고 맞장구쳐 줄 거라고 대답했다. 그건 내가 그런 말을 친구에게서 듣고 대답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가 아니고 내가 그런 말을 하고 그런 대답을 들어본 경험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단지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 짧디 짧은 문장의 끝은 하나뿐일 진데 힘을 북돋아 주기 위한 그 어떤 긍정적인 말도 매가리 없이 울려 퍼질 수밖에 없을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내 대답을 들은 친구는 이내 조용해졌다.



한번 무심하게 내뱉어진 것 같은 그 말은 분명 발화되기 이전에 수없이 되뇌어졌을 것이다. 그렇게 입 안을 맴돌기만 하다 좀 더 가해진 삶의 무게가 견디기 힘들 정도가 되었을 때 힘겹게 입 밖으로 내뱉어지지만 그저 메아리처럼 허공에 옅은 진동만 만들어내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모든 경우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 말은 분명 순식간에 허공에 흩어질 만큼 그리 하잘 것 없는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뭔가를 바라고서 꺼내는 얘기도 아니고, 큰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런 이야기를 친구에게서 듣게 된다면 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조금만 더 귀 기울이고 관심을 가져 주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친구에게 많은 위로가 될 수도 있다. 그저 이 개 같은 세상에서 나를 생각해 주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실낱같은 존재의 이유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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