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 되면 지상파 3사에서 시상식을 한다. 시상식이 끝나면 누가 무슨 상을 받았는지, 코디가 어땠는지, 시상식의 이모저모를 다루는 기사들이 쏟아진다. 나는 그 시상식들을 참 좋아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 시상식의 뒷 이야기들'을 좋아했다. 시상식이 끝나면 방송 프로그램들은 일제히 시상식 비하인드를 다음 회 방송분으로 내보낸다. 나는 그 이야기들을 참 좋아했다. 포토존에 선 그들의 모습 말고, 상을 받으며 수상소감을 하는 그들의 모습 말고. 포토존에 서기 전 긴장하고 수상자를 부르기 전 함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들 말이다. 그런 그들의 모습들을 보며 '나도 저곳에서 함께 있고 싶다'라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었다.
드라마를 봐도 드라마 내용보다는 저 장면을 찍을 땐 어떻게 찍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유튜브에 올라오는 메이킹 필름 영상을 찾아보며 현장에서 울고 웃고 하는 배우와 감독, 스태프들의 모습을 수십 번 돌려보며 그들이 일하는 결과물 말고, 그들이 일하는 진짜 현장의 모습을 궁금해했다. 그땐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유난히 현장의 모습을 궁금해하고 찾아보는 이유를 말이다. 진짜 이유를 알게 된 건 몇 년 전 겨울이었다.
몇 년 전 겨울, 명동예술극장에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을 관람하러 간 적이 있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는 펑펑 울었다. 다들 알다시피 셰익스피어의 한여름밤의 꿈은 손에 꼽히는 희극이라 눈물을 자아 낼 요소가 하나도 없다. 내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다름 아닌 커튼콜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자신들이 연기하는 캐릭터에서 벗어나 한 명의 배우가 되어 관객들에게 손을 흔들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너무 벅차올랐다. 나도 모르게 펑펑 눈물이 났다. 그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이 닿았을지, 이미 수십 개의 공연을 위해 무대 위에 올라서 본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였다. 나는 공연이 끝나고 혼자 눈이 내리는 명동을 걸으며 내 눈물의 이유를 깨달았다.
내 부캐들 중에 ‘배우’는 내가 가장 아끼는 캐릭터다. 사실 ‘배우’라는 이름으로 현장에 있었던 수많은 순간들을 글로 또박또박 담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다는 이유를 꼽으라면 딱 하나다. 용기가 없었다.
‘배우’라고 하면 우리는 흔히 초록창에 검색하면 뜨는 그런 스타들을 떠올리지만 사실 그들은 배우 중에서도 아주 성공한 극히 드문 케이스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 경력이 몇십 년이 되었어도, 사람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우’ 취급을 받지 못하는 배우들이 훨씬 더 많다. 그렇게 스스로를 배우라고 소개했을 때,
‘응…? 처음 들어보는데?’라는 말이 두려워 자신의 직업을 감추는 배우들이 허다한 게 현실이다.
나 또한 부끄럽게도 그런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배우’로서의 이야기를 쓸 땐, 조금 더 인지도를 올리고 필모그래피를 쌓았을 때 써야 하지 않겠나, 라는 생각에 글을 쓰지 못했다.
그러나, 현장을 다니면 다닐수록 배우로서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차고 넘치면서 ‘배우’으로서, ‘배우이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점점 차고 넘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