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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 Aug 06. 2022

[배우입니다]나 때문에 현장이 싸해져요

캐릭터와 노동자, 그 간극 사이에서

‘컷’이라는 사인은 배우에게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까지만 연기를 하면 충분하다, 라는 뜻과 동시에 네가 연기하고 있는 그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라는 뜻 말이다.
그러나 몰입하고 있는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컷!’이라는 단어만큼이나 짧고 강렬하게, 칼로 무를 댕강댕강 자르듯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가끔, 아니 종종 드라마나 영화의 메이킹 필름을 보다보면 ‘컷’소리가 나고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오열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느냐. 캐릭터에서 빠져나오는 건, 어쩌면 몰입하는 만큼이나 부단히 노력해야하는 영역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그런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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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작품에서 가장 감정이 격한 장면이 예정 되어있었던 날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감독님도 긴장하셔서 현장에 오자마자 내 컨디션을 체크하셨다.

촬영지였던 폐교



감정을 표현하는 것 또한 전원버튼을 켜고 끄는 것처럼 ‘레디, 액션!’이라는 말 한 마디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감정을 잡고 ‘레디 액션!’이라는 말과 동시에 폭발시킬 수 있게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촬영에 들어가기 전, 나는 감정을 잡기 위해 무릎을 꿇어앉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 참고로 감정을 잡기 위해 무릎을 꿇어앉는 건 나만의 비법 아닌 비법이다. 나는 연기를 할 때 그 분위기와 환경,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몸을 고생시키는 편이다. 이 때 촬영했던 씬은 내가 연기한 캐릭터가 철저하게 버려진, 아주 비참하고도 슬픈 상황이었기에 무릎을 꿇어앉으며 ‘비참’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온 몸으로 느끼려고 했다. 감정을 잡는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시 다루겠다.)

감독님과 스태프님들 모두 감정을 잡고 캐릭터에 몰입하는 나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입을 열지 않고 나를 배려해주셨다. 그렇게 배우인 나뿐이 아니라 모든 스태프들도 함께 긴장에 들어간 채로 촬영이 시작되었다.

테이크가 꽤 길었다. 뿐만 아니라 같은 장면을 여러 각도에서 찍어야 했기 때문에 온 몸을 비틀며 눈물을 흘리는 나의 연기는 꽤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나는 괴로워서 발버둥을 쳤다. 가짜라는 연기를 하는 것이 괴로운 게 아니라 그 캐릭터에 몰입되어 감정을 느끼는 게 괴로웠다. 그 발버둥이 곧 ‘연기’였고 나의 그 모습들이 오롯이 카메라에 담겼다.

‘컷’이라는 소리가 나자마자 나는 주저앉아 오열했다. 감정을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어서였다. 스태프들이 당황하며 휴지를 가져다주었지만 나는 그 휴지를 받아들곤 엉엉 울며 자리를 피했다.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서 또 다시 무릎을 꿇고 울었다. 같은 행동이지만 아까와는 조금 다른 눈물이었다. 아깐 몰입을 위해 무릎을 꿇으며 분위기를 느끼려고 했던 것이었다면 이제는 극도의 몰입에 나 자신을 감당하지 못해서 주저 앉아버린 것이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해졌다. ‘컷’소리와 함께 캐릭터가 아니라 감정을 쓰는 노동자, 그저 배우로 돌아간 나는 감정을 추스르고 웃어보려고 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았다. 나는 캐릭터와 감정을 쓰는 노동자, 그 사이에서 끝없이 방황했다.



사람들은, 어쩌면 몇몇 배우들마저 배우는 ‘특별한 직업이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배우가 카메라 앞에 등장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는 배우 말고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감독, 연출팀, 조명팀, 음향팀부터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매니저까지,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셀 수 없이 많은 손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그 현장에서 감히 특별함과 같은 우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결국 작품은 물론, 배우도 존재하지 못한다.
이런 현장의 구조를 잘 알기에 내가 현장에서 가장 취하려고 하는 태도는 ‘겸손’이며 ‘서로를 위한 배려’이다. 현장은 변수가 많기에 모든 사람들이 예민해지기 쉽다. 무엇보다 야외 촬영과 같이 현장이 힘들면 힘들수록 더욱더 그러하다.


나는 감정씬을 찍을 때마다 예민해지고 힘들어할수록 나로 인해 현장 전체가 얼음장처럼 굳어버린 분위기가 너무 싫었다. 정적의 순간이 올 때마다, 나는 내가 몰입하고 있는 감정에서 빠져나오지도 못했으면서 자꾸만 다시 ‘노동자’의 모습으로 돌아오기 위해 억지로 웃어보였고 ‘괜찮습니다’를 연신 반복했다. 사실 괜찮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그 날은 유난히 그런 죄책감이 심한 날이었다. 하루를 내내 눈물씬으로 가득 채웠으니 말이다. 촬영이 끝나고 나는 퉁퉁 부은 눈으로 감독님에게 가서 하소연을 했다.

“감독님…저 너무 죄책감 들어요…”
“응? 아니 왜요 왜?”
“아니 제가 감정을 잡는 순간부터 현장이 싸해지고 막 그런게 너무 싫어요”

감독님은 자책감에 괴로워하는 나를 보며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거 아세요? 저는 카메라를 드는 사람도 배우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카메라를 들어야 그 감정이 담긴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죄책감 가지지마요.”

그 말을 드는 나는 머리가 트이는 느낌이었다. 감정을 쏟아내는 씬을 연기할 때면 모두가 그 장면에 집중한다. 그게 배우만의 할 일이 아니라 모두가 해야 할 일이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이런 감독님의 가치관이 참 좋았다. 감독님은 이미 모든 테이크에서 카메라를 잡으며 나만큼이나 감정에 몰입하고 충실하셨던 것이었다.



현장이 아무리 힘들고 고되다고 하나, 결국 다시 현장을 찾는 이유는 하나다. 이렇게 진심이 가득한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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