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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 Sep 03. 2023

[배우입니다]내 세상의 뒷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듬어진 화면 속과 달리, 사실 내 세상의 뒷면은 이렇게 볼품없다. 초라하고 화려하지 못하다.


 노력 없이 내놓은 결과가 어디 있을까. 누군가는 연구실에서, 또 다른 누군가는 모니터 앞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하여 싹을 틔우고 열매를 일구어낼 것이다. 나 또한 그러하다. 나의 방식대로 나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러나 그 최선은 종종 결과물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분야가 그렇다.

 최근에 광고를 찍었다. 결과물을 받아봤는데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장면을 찍기 위해 사실은 수십 번 리허설을 하고 재촬영을 해서 기진맥진한 내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화면 속 나는 그저 방긋방긋 웃으며 가장 예쁘고 좋은 모습으로 보이고 있었다. 뒷면을 볼 수 없으니 오해를 받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화면 속 웃고 있는 그 모습대로 살고 있을 것만 같다는 그런 오해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명백한 오해다. 화려한 조명 뒤 내 세상의 뒷면은 사진 속 멍투성이의 무릎처럼 볼품없다.
 
 촬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밝은 조명이 아닌 불이 다 꺼져있는 적막한 자취방에 들어섰을 때, 그 앞에서 나는 무너져 내렸다. 수많은 카메라와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시선들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촬영장과 다른 적막한 공기만 나를 휘감을 뿐이었다. 나에게 남은 건 공허함과 촬영을 위해 새벽부터 나서서 한 진한 메이크업뿐이었다. 화장을 하나하나 지우는데 눈물이 났다. 큰 촬영이 끝났다는 것에 대한 허탈함, 왁자지껄한 촬영장과 너무 다른 소름 돋게 시린 공기, 이 촬영을 위해 한숨도 자지 못하고 애썼던 모든 순간들이 뭉쳐진 공허함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내 세상의 뒷면에는 이런 모습도 있었다. 을 받지 못한 채 어두컴컴한 순간들도, 공허함에 치를 떠는 순간도, 지하의 연습실에서 보내온 인고의 시간도, 사진 속 멍투성이의 무릎처럼 닳아 없어지도록 노력했던 그런 땀방울도 모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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