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연극영화과에서 인문학 수업을 배우는 이유

세상에 딴지 걸기

by 이 지음

“연극영화과에 어떤 수업 있어요?”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연기부터 연출, 발성, 무용, 뮤지컬… 이름만 들어도 신기한 수업들이 줄줄이 따라온다.
하지만 내가 가장 흥미롭게 듣는 건 의외로 인문학 수업이다.


처음엔 인문학을 왜 배워야 하나 고개를 갸웃했다. 심지어 ‘전공기초’다. 듣지 않으면 졸업도 못 한다는 뜻. 연기·무용·발성 같은 직접적인 실기 과목이 넘쳐나는 연극영화과에서, 철학을 배우는 건 어딘가 비효율적으로 느껴졌기도 한다. 대체 인문학은 예술학도에게 과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인문학 수업 중 발표 장면

나는 예술학도로서 인문학을 꼭 배워야 한다고 찬성하는 파임에도 불구하고, 이 질문에 늘 막연하고 추상적인 답을 떠올렸다. 그런데 오늘 수업에서 교수님이 단 한 문장으로 정리해 주셨다.
“인문학은 세상에 딴지를 걸 수 있게 만들어준다.”

교수님은 예전에 한 뇌과학자와 식사를 하며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 뇌과학자는, “정상적인 뇌세포는 모두 같은 모양을 하고 있지만 비정상적인 뇌세포는 각기 다른 모양을 한다”는 말을 했다다고 하셨다.
교수님은 이 문장에 뒤에 한 문장을 덧붙였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문장과 유사하지 않나요?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불행하다는 말.”

이 말을 통해 교수님은 인문학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주셨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모양만 좇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르게 삐뚤어진 것들, 어디에도 맞지 않는 모양들,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품은 존재들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것. 똑같은 방식의 행복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결로 흘러가는 불행을 이해하는 법을 익히는 것. 그렇게 세상의 ‘정답’처럼 제시된 기준에 순응하는 대신, “정말 그래야만 해?”라고 조용히 딴지를 걸 수 있게 되는 것. 인문학은 그 질문을 가능하게 만드는 토대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질문 위에서 세계를 다시 그려내는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 예술은 늘 딴지를 건다. 눈에 보이는 현실 뒤에 숨어 있는 감정과 모두가 참이라고 말하는 질서, 당연하다고 믿는 규칙들에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인문학은 그 질문을 이끌어낸다. 철학과 인문학을 배우면서, 우리는 미처 보지 못한 관점을 들춰내고 이미 굳어진 생각에 금을 낸다. 그 질문 앞에서 멈칫하고, 흔들리고, 다시 고민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시선을 만드는 것이다. 딴지를 걸 줄 아는 능력. 이게 바로 우리의 예술을 살아 있게 만들어준다.

나는 수업을 통해 그런 ‘질문’을 던지는 법을 배웠다.
비트겐슈타인의 요소명제는 무엇인지. 그리고‘세상을 이루는 최소 단위를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그 요소 명제는 과연 예술에서 적용 가능한지, 우리 예술가들은 요소명제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이렇게 끊임없이 질문을 품는 것은 예술의 시작이 된다. 인문학 수업은 그래서 고마운 수업이다. 배우에게, 연출에게, 그리고 예술학도에게 필요한 건 기술만이 아니니까. 역할을 연기하고 연출하는 사람이기 전에 세상을 바라보는 ‘예술가’로서 “왜?”라는 질문을 놓지 않는 힘이 되어준다.

우리는 오늘도 이렇게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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