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 '옥주'에게 보내는 편지
옥주야, 넌 이번 여름은 어떻게 보내고 있니. 2층 양옥집에서 새로운 곳으로 이사 갔는지, 동주와는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지, 아빠와 고모도 잘 지내는지, 그리고 할아버지가 그립지는 않은지 궁금하구나.
장마가 끝나가고, 뜨거운 여름이 찾아왔다. 작년 여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주말 아침 혼영 하기 위해 찾은 영화관에서 옥주와 만났다. 그리고 <남매의 여름밤>을 본 이래로 매해 여름이 찾아오면 옥주가 생각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매의 여름밤'이지만 옥주가 가장 조명되는 이 영화는 괜히 있지도 않으면서 어디에선가 떠오른 듯한 나의 사춘기 시절을 환기시킨다. 어느 날 영문도 모르게 이사 간 할아버지의 2층 양옥집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할아버지의 표정은 보기 시릴 정도로 낯설다. 좋아하는 남자아이에게 먼저 연락이 오지 않을 때 느끼는 조바심, 아빠가 파는 신발이 짝퉁인 것을 알았을 때의 부끄러움, 보고 싶은 엄마를 만나지 않는 괜한 자존심, 옥주의 여름밤은 그렇게 흐른다.
정적인 움직임의 카메라는 일정 거리를 두고 가족의 여름밤을 따라가지만, 이러한 카메라의 앵글은 장례식장 옥주의 꿈에서 독특하게 변주된다. 카메라는 할아버지 영정 사진 앞에서 아빠부터 동주까지 모든 가족 한 사람씩 밥을 씩씩하게 먹는 모습을 뚫어지게 담아낸다. 렌즈 너머 나와 당신, 우리를 똑바로 마주하는 듯한 그들의 시선이 왠지 모르게 서글퍼 피하게 된다. 옥주의 환상이 마치 진짜 기억처럼 내재되는 모습을 재치 있게 담은 이 장면은 눈물 섞인 웃음, 그 아이러니함이 담겨있다.
새벽 3시 반 청춘이 담긴 맥주 한 잔을 들고 있던, 자신이 선물해준 모자를 쓰고 함빡 미소 지었던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 그것은 장례식이 끝나고 돌아온 미처 다 식지 않은 온기 가득한 집에서 억누를 수 없는 슬픔이 되어 파도처럼 밀려온다. 끝내 벅찬 울음을 터트리는 옥주, 마치 국물이 짠 것 같아 마지막에 괜히 물을 부어 싱거워진 아빠의 국처럼 마음처럼 쉬운 관계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지 않았을까.
옥주와 동주 그리고 아빠와 고모, 두 남매 모두가 훗날 푸른 꿈으로 기억할 여름밤이었길 바란다. 그리고 앞으로 맞이할 수많은 여름밤은 행복으로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