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2021)
<러브레터>부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거쳐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까지, 인생 영화를 다수 양산한 일본 로맨스 계보를 잇는 작품이 나타났다. 20대의 사랑을 가장 현실적이고 현대적으로 그린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고 나면 과거의 기억 속 누군가가 떠오르게 되는 깊은 여운을 선사한다.
막차가 끊긴 지하철 역에서 운명처럼 만났다. 좋아하는 책과 작가, 노래 가사와 영화까지. 어떤 주제의 대화를 나눠도 모든 면이 닮았던 서로이기에 금세 꽃처럼 향기로운 사랑을 피웠다. 그리고 영원할 것 같았던 연애는 5년이라는 시간의 변화를 이기지 못해 시들시들 져버리고 말았다.
무기와 키누는 21살 대학생으로 서로를 처음 만나 직장인이 되기까지의 5년을 함께 보낸다. 그들의 신분이 바뀌는 과정은 결코 순탄치 못했다. 생기발랄하던 대학생의 꿈을 포기하고 현실에 타협해 버리는 과정도 굉장히 현실적으로 묘사된다. 우여곡절 끝에 사회로 뛰어들었지만 적응과 인내의 시간은 더욱 험난했다.
모든 것을 함께 하던 무기와 키누는 각자의 환경이 달라짐에 따라 자연스레 그들 사이의 교집합도 사라졌다. 그치만 서로에게 소원해진 건 결코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한쪽을 탓할 수도 없다. 단지 여러 결정에 대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같은 곳에서 예기치 못하게 다른 방향을 바라보게 되었을 뿐이다. 관계의 간극은 점점 더 깊어졌고, 지하철 역부터 집까지 같이 걷던 30분이 사라지게 된 순간 둘의 꽃은 져버렸다.
영화는 유효기간이 정해진 사랑을 담는다. 그렇다고 슬픈 사랑은 아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사랑했던 연인이었기에 깔끔히 헤어질 수 있었던 것처럼 그들이 함께 하던 그 순간의 꽃다발은 향기 짙었다. 사랑 자체에서 나오는 아름다움으로 과거를 행복한 기억으로만 채울 수 있을 만큼 말이다.
카페에서 우연히 재회한 무기와 키누는 서로의 뒷모습을 향해 인사를 건넨다. 마침표 같은 손짓에 그들이 다시 함께할 시간은 없을 거라는 괜한 서운함이 몰려오지만 둘은 앞으로 나아간다.
모두 각자의 향기 가득한 꽃다발을 피웠던 사랑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보며 그 시절을 추억할 테고, 다른 누군가는 그때의 기억을 이젠 털어버릴지도 모른다.
여운이 길다.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두고 문득 누군가가 생각날 때마다 꺼내보고 싶은 그런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