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운명론 <올드> (2021)
<식스 센스> <싸인> <23 아이덴티티> 등 꾸준히 자신만의 독창적인 스릴러 장르를 확립한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이 타임 호러 스릴러 <올드>로 돌아왔다. 사실 할리우드에서는 워낙 호불호가 갈리는 감독으로 유명한데 (로튼토마토 지수만 봐도 알 것이다) 개인적으로 전작들을 다 괜찮게 봤던 터라 신작도 기대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스릴러 반 스푼, 감동 한 스푼, 클리셰 콸콸콸이었다. 관람하는 내내 제목대로 따라간다는 '제목 운명론'이 떠올랐다. 연출부터 스토리까지, 심지어 배우들의 연기도 문자 그대로 OLD 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아쉬움 가득했던 작품이다.
아름다운 프라이빗 해변에 도착한 사람들.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가족, 나이 차이가 엄청난 부부, 간질을 앓고 있는 아내와 그의 남편, 하루 전 도착했던 래퍼까지. 평화롭게 휴가를 즐기던 그들은 물속에서 알 수 없는 시체를 발견하고 곧이어 30분에 1년이 늙는 기이한 곳에 갇히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타임 호러 스릴러라는 기발한 컨셉에 걸맞게 심어놓은 서스펜스는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M. 나이트 샤말란 표 반전이 쉴 틈 없이 몰아치지만 영화 중반부 이후부터는 급격한 피로감을 유발하고 예측 가능한 지루함의 수준까지 떨어진다. 스릴러=반전이라는 공식을 굳건히 지켜온 샤말란 감독은 이번 신작에서도 작은 변주 하나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좋게 보면 스릴러의 정석이지만 사실 몇 편째 비슷한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오히려 이번 영화에서 귀를 막는 장면과 같은 맥거핀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을 정도.
<올드>는 스릴러를 빙자한 가족 영화로 느껴질 정도로 가족 간의 유대감이 꽤 강조된다. 이곳에서는 30분에 1년의 시간이 흐르고 인간의 삶은 단 하루로 단축된다. 미친 듯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도 10대와 40대의 속도는 같지 않다. 누군가에게는 성장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노화가 찾아온다.
단 몇 시간 만에 청소년기를 건너뛰고 청년이 된 아이들과 무기력하게 늙어버린 부모. 비현실적인 시간의 흐름 가운데 급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가족들의 감정선은 뜬금없이 섬세하다. 벗어날 수 없는 곳에 갇힌 현실보다 부모의 죽음을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식들의 공포와 해탈한 채 죽음을 차분히 받아들이는 부모의 담담함은 대조된다. 이처럼 인물의 심리를 디테일하게 묘사한 장면들은 지루한 스릴러를 잠시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수행했다.
아 시작한 지 5분 만에 결말이 예측 가능한 영화를 만났을 때의 절망감이란.
첫 번째, 공포에 질린 인물들의 표정을 클로즈업하는 숏에서 히치콕이 떠오른다. 비교하기 싫지만 서스팬스 영화는 그의 이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것 같다. 히치콕은 주로 관객들에게 이질감을 느끼게 하거나 강조하고 싶은 장면에서만 클로즈업을 사용했다. 하지만 샤말란 감독처럼 단순히 긴장감을 주기 위해 쓸데없이 남발하는 숏은 오히려 중요성을 떨어트렸다. 감독의 의도적인 오마주였다면 실패였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어떤 스릴러 영화를 가져와도 붙일 수 있을 듯한 스토리이다. 평화로운 곳, 어딘가 불안한 아이의 표정과 쪽지, 갑자기 마주한 기이한 사건과 죽음, 가까운 곳에서 찾은 실마리, 우여곡절 끝에 탈출까지. <올드>가 아니어도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내용이지 않는가. 스릴러의 정석을 따르지만 반짝이는 반전이 부족했다. 심지어 영화 초반의 모든 소품과 상황이 결말을 대놓고 알려주기까지 한다.
색다른 컨셉이 아까울 정도로 부족했던 개연성, 지루한 서스펜스와 결말이었던 샤말란 감독의 신작 <올드>
다음 작품에서는 약 20년 전의 <식스 센스>의 감성은 버리고 조금 더 과감한 반전으로 가득 채웠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