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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편하다

친구들이.

by 박작가

24년 작







많은 인간관계 중 친구 관계가 제일 어렵다. 가족은 편하고 애인은 만만하며 사회에서 만나는 인연은 거리가 있는 만큼 답이 정해져 있으니 대하기 쉽다. 하지만 친구는 어렵다. 반말을 쓰고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지만 편한만큼 조심스럽고 선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난 매사에 친구 눈치를 보곤 했지. 가끔은 대체 문제가 뭘까 생각하곤 했다. 우리는 동등한 사이 아니었던가? 이 정도로 불편해하는 걸 보면 마냥 그런 것 같지도 않을 때가 많다.


10대는 친구를 사귀기 가장 좋은 나이다. 어떤 나이든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다곤 하지만 그래도 동갑내기들을 한데 묶어서 같은 상황에 두는 것에 비할 바는 아니다. 시험이면 시험, 진학이면 진학, 나의 이슈가 곧 저들의 이슈고 친구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가 되는 그 시기는 친구를 사귀는 게 참 자연스럽다. 이건 여러 방면에서 옳은 방법일 지도 모른다. 괜히 수많은 나라에서 오래 전부터 학교를 만든 건 아닐 테니까. 하지만 우리 모두 안다. 그건 영원할 수 없다는 걸. 비슷했던 상황이 달라지면 사람이 바뀌거나 몰랐던 모습이 드러나기도 한다. 활발했던 친구가 사실은 우울해서 혼자 땅굴파는 친구였다던가, 얌전했던 친구가 사실은 열정이 있는 친구였다던가 뭐 그런.


나는 학창시절 제법 얌전하면서도 재밌게 말하는 사람이었지만 보이는 것보다 혼자있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그렇다고 10대 때 모습이 가짜라는 건 아니지만, 10대 만큼의 20대를 보내고 나니 이제는 이 모습이 더 진짜 나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밖에 나가기는 귀찮고, 사람을 만나는 건 더 귀찮고. 내 행복은 휴대폰과 노트북 안에 있으며 생각을 남과 나누면 좋겠지만 꼭 그래야한다는 생각은 안 드는. 중학생 때도 그랬지. 방과 후나 방학 때 굳이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혼자 집에서 책, 만화책을 보며 일기 쓰는 게 훨씬 재미있던 걸. 휴대폰은 게임을 하거나 소설을 읽기 위해 사용하는 기기나 다름 없었다. 저장된 전화번호보다 다운 받은 텍스트 파일이 더 많았고 말이다.


그렇다고 영 친구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학교에 가면 쉬는 시간에 이야기 할 친구, 함께 급식 먹는 친구는 늘 있었다. 집에 같이 갈 친구도 있었고 집에 놀러간 친구도 있었고 짧지만 같이 학원을 다닌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종전에 친하다고 생각했던 아이들과는 결국…… 다 멀어졌다. 몸이 멀어지고 상황이 달라지면서 우리는 교집합을 잃었고 만났을 때 나눌 대화는 동창이나 근황 이야기가 전부다. 집안 사정이든, 고민이든, 사상이든, 가치관이든, 사회 뉴스나 정치든. 친구와 나눌 이야기가 있고 못 나눌 이야기가 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걸 구분하기도 전에 무난한 주제만 골랐다. 괜한 갈등을 만들기도 언성을 높이기도 싫었고, 내가 하는 말로 친구 기분이 나빠지는 것도 싫었다. 그러다보니 만날 때마다 조심하고 사리다 결국은 죄다 숨겼다. 친구 중에서는 여전히 내 동생이 셋이라는 걸 모르는 친구가 많다.


그렇게 난 심리적으로 혼자였다. 일기에는 수백 번도 더 쓴 진솔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 나눌 대화 상대 하나 만들지 못했다. 민감한 소재로 대화하다 쟤랑 좀 싸우고 멀어진다고 해서 내 세상이 무너지고 신변에 이상이 가는 것도 아닌데 마치 그럴 것처럼. 가벼운 안부라도 나누는 지인이 하나라도 떠나가면 그러다 진짜 혼자가 될까 걱정되기도 했다. 그런 자잘한 걱정과 고민이 모이고 모여 이제 내게 전화를 걸어주는 건 가족밖에 없다. 하지만 그걸 그렇게 걱정할 수 밖에 없는 게, 세상은 늘 우정을 강조하는 걸. 장수하는 노인들을 조사하니 친구가 평균적으로 열 명이 넘었다던가 뭐 그런 것들이 인터넷에 수두룩하단 말이다. 그리고 즐겨 봤던 십대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은 어른의 가르침보다는 또래와의 갈등과 화해를 겪으며 성장한다. 어떤 식으로 디테일이 바뀌든 여전히 내 청춘에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페이지였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고 한다. 우리 종이 다른 종을 뒤로한 채 생존할 수 있었던 건 종족 간의 협력과 친화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그러니 우리가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부족을 이루고 마을을 이루다 국가까지 세운 건, 분명 우연은 아닐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해야했던 필연적인 과정이었을테지. 하지만 호포 사피엔스가 다 나같은 사람이었다면 우리 종은 멸종했을지도 모르겠다. 남들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스쳐 지나가면서 인사만 하고 혼자 살았을 거 아니야. 결혼하고 가정은 꾸렸을 거다. 외로운 건 싫으니까, 죽을 때까지 혼자 살기에 그 시대는 너무 가혹했을테니까. 만약 배우자 호모 사피엔스에게 양질의 친화력이 있었다면 이웃과 무난한 농담을 나누며 공동 육아 정도는 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면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었을 거고, 자식이 죽는 게 아닌 이상 교집합은 십 년 이상 여전했겠지. 하지만 그런 시대는 이미 다 지났다.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나를 걱정했다. 내가 친구가 없는 것 같다고. 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던 동생들과는 다르게 집에만 틀어박혀있어서 그랬다. 친구를 만나러 간다 하더라도 늘 똑같은 사람만 만났고 늦게까지 밖에 있는 걸 싫어해 굳이 통금 시간을 정할 필요도 없었던 십대 시절의 나, 그리고 친구 집에 초대 받았지만 놀러 가기 싫으니 제발 안된다고 말해달라 했던 11살의 나. 그때 엄마의 걱정이 20대 후반이 된 지금도 가슴에 여전히 남아있다. 내가 너무 혼자 틀어박힌 삶을 살고 있나 싶어서. 친구와 여행을 가거나 워터파크를 가거나 축제에 가거나 하는, 그렇게 남들 다 하는 경험 한 번 없이 이대로 삼십 대가 되고 사십 대가 되어도 괜찮을까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나마 남들이 다 하는 것 중 해본 거라고는 연애 한 번이 전부다. 그래서 엄마가 유난히 남자친구를 마음에 들어했던 걸지도 모른다. 늘 혼자만 있고 불안해 하던 내가 안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 좋다고. 딸인 내가 옆에서 듣기에는 상당히 오글거리는 말이지만 대학교니 대학원이니 여러 일로 바빠서 우리 사 남매를 제대로 돌아보지도 못했던 엄마가 저런 생각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을 정도면 내가 우리 집에서 좀 유난스럽게 튀는 존재였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아마 우리 부모님 장례식장에는 동생들 손님이 훨씬 많을 거다. 내 손님 한 명일 때, 두 당 세 명씩은 데려올 것 같거든. 내 손님 한 명도 아마… 남자친구겠지. “영주야, 나 왔어.”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면 의기소침해진다. 스스로가 사회성이 결여된 소위 ‘찐따’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나한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성격이 멀쩡하면 제대로 된 친구 하나 없을 리가 없지 않나, 싶어서. 진짜 편한 친구는 지금까지 사실상 남자친구 한 명밖에 없었는데, 이 사실만 두고 보면 또 내가 남미새처럼 느껴진다. 그나마 다행인 건 스쳐지나가는 여섯 번째 남자친구가 아니라 첫 번째 남자친구라는 점, 얘랑 사귄 지 7년이 넘었다는 점이다. 그래도 왜 나는 가까운 ‘동성 친구’가 없는 건지 스스로에게 질문할 때면 이 사실이 그렇게 썩 위로가 되진 않는다. 얘는 뭐, 헤어지면 끝인 걸. 친구도 절교하면 끝이라고 하긴 하지만 그래도 남자친구와의 관계보다는 유연하니 엄연히 다르다. 우리는 멀어져도 언제든 다시 가까워질 수 있으니까.


가끔 그렇게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새삼 슬퍼져도, 내가 남미새 같아도, 찐따같아도, 부끄러워도. 그래도 아직까진 혼자 노는 게 편하고 좋다. 집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드라마를 보는 게 지금의 내겐 제일 재미있다. 대화 상대가 필요하면 혼잣말을 하듯 일기를 써도 되고 남자친구에게 전화해도 된다. 게임을 해도 되고 산책을 해도 되고 또 노래를 들어도 된다. 거기에 세상이 마냥 닫혀있는 건 아니고 또 내가 그렇게 나쁜 인간은 아니기 때문에 원한다면 얼마든지 새 친구를 사귈 수 있으리라는 것도 위안이 된다. 지금은 집이랑 회사밖에 안 다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기회가 정말 없지만, 기회만 잡는다면 나도 예전보다는 덜 소심하고 낯도 덜 가리니까 어딜 가든 인사말 정도는 쉽게 주고받을 수 있을 거다. 그러니까 정말 언젠간. 혼자 있는 게 너무 우울하고 슬프고 사무치게 외롭게 느껴질 때, 혼자라서 받는 스트레스가 누군가와 함께 있어서 받는 스트레스보다 더 클 때. 그럴 때 그럴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아직까지 그 정도는 아닌 모양이다. 귀여운 인형 하나 끌어안고 글을 쓰고, 남들에겐 차마 말하지 못할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비명을 지르고, 혼자 카페에 가서 노트북으로 유튜브나 보다가 누워서 잠자는 생활이 아직까진 너무 좋나봐. 그러니까 친한 친구 없다는 사실에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조금은 덜 괴로워하는 게 맞겠다. 숨 한 번 내쉬고 지난 날로 넘기고, 웹소설이나 하나 더 보면서 깔깔거려야지. 그래, 그게 나을 거다. 지금의 나한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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