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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내게 매몰되어 쓴 글

by 박작가


아무래도 난 멋진 작가가 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냥 서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이는 먹을 대로 먹어버렸고 시간은 시간 대로 지나버렸다. 이제 어쩌면 나는 모든 기회를 잃은 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나를 자랑스럽게 만들었던 재능도 이젠 재능이라고 할 수 없다. 나이가 들면 다들 이 정도는 쓸 테니까. 남은 건 한줌밖에 되지 않는 벌거벗은 나뿐이란 생각이 든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제 몫의 희망이 적힌 풍선을 들고서 빛나게 하늘을 날고 있는데, 나 혼자서 바닥에 딱 엉덩이를 눌러 붙여 앉아서는 하늘을 멍청하게 바라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고....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여겨진다. 왜냐하면 나는 늘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그것도 끝내주게 멋있고 미친듯이 잘 쓰는 그런 작가가.



작가는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꿈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이 꿈을 껴안고 너무 오랜 시간 살았다. 이걸 갈고 닦으면서 어떻게 해서든 멋진 풍선으로 만들어 진작 하늘로 띄웠어야 했는데 시기를 놓친 것만 같다. 그래서 괴롭다. 내가 직접 내 꿈을 스스로 망친 것만 같아서.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남들 앞에서 기죽은 채로 "난 이제 아무 것도 못 해"라고 말하진 않는다. 난 여전히 멋진 작가라고, 난 여전히 글을 쓰고 있고 글을 잘 쓴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 켠으로는 이제 다 끝났으며 개소리나 마찬가지라고 자조한다. 제대로 된 문장 하나 쓰질 못하고 글 공부 한 번 하질 않으며 소설 한 권 끝까지 완결내지 못하는 게 무슨 작가란 말인가. 내가 못 쓴 글이라고 비웃은 그 모든 글을 쓴 사람들이 차라리 나보다 더 대단한 작가다. 한 권이라도 완결을 냈잖아. 나는 입만 산 사람이다. 그래 놓고는 완벽주의자처럼 행동했지. 나는 완결작이 없을 뿐, 한 번 시작해서 끝을 보면 아주 끝내줄 거라고. 사실 시작도 못 하는 거면서.



내가 범인(凡人)이라는 걸 인정하려니 목이 맨다. 아까 물을 잔뜩 마셨는데도 바싹 바싹 입안이 마른다. 그리고 그 물은 어디로 갔나 했더니 다 눈물샘으로 갔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눈물이 날 리가 없으니까. 인정하기 싫고 인정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인정을 해야 할 것만 같아서 괜시리 두렵고... 속상하고... 막막하고... 내 전부를 잃어버린 것만 같다. 왜냐하면.



내겐 너무 오랜 꿈이었으니까. 난 정말 오랫동안 작가가 되고 싶었다. 얼마나 되고 싶었냐면, 그냥 그거밖엔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글을 지독하게도 사랑했고 글이 주는 모든 감정을 껴안고 살았다. 에세이도 아니고 교양도서도 아니고 자기계발서도 아니다. 나는 오로지 소설, 소설을 너무나도 쓰고 싶었던 아이였다. 내가 그동안 끄적인 글이 얼마인가, 그거만 모아도 수 십만 자에 수 백만 자까지 나올지도 모르는 걸. 내가 던졌다가 회수하지 못한 소재는 또 얼마야. 언제나 에너지가 넘치고 글감이 넘쳐 쓸 게 없다는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던 나잖아. 그랬던 나인데. 이제는 정말 꿈이 빛을 바라고 저 밑에 잔해처럼 깔려있단 걸 걸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닐까. 이젠 인정을 해야 하는 거겠지. 왜냐하면…… 남들이 보면 얼마나 우습겠어. 이런 내가, 얼마나 미련해 보이겠냐고. 그리고 이젠 나조차도 그런 사람들 틈에 껴있다.



내가 이렇게 사는 건 결국 환상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실을 살고 싶지 않다고 외쳤던 19살 고등학생은 10년이 지난 29살의 내 안에 여전히 죽지 않은 채 살아서 자꾸 달콤한 말을 속살거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너무 너무 괴롭고 마음이 싱숭생숭해도 여전히 내 곁에 붙어서 자꾸면 현실을 외면하게 했다. 하지만 그렇게 너는 현실을 보기 싫어했지만... 이젠 봐야 한다, 그때와는 다른 얼굴을 하고서, 마주한 채 이젠 내가 말해주어야 한다. 19살의 나에게.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높이 치켜들고 빛나게 웃는 모습을 보면서 박수만 치는 것도 이젠 지겹다. 나는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걸 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렇게 내려놓으려고 하니 도무지 손이 떨어지질 않는다. 사실 마무리하려고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게 맞다. 이젠 그만 하려고, 이제는 그만 집착하려고. 하지만 글을 쓰면 쓸수록 더욱 갈망하게 되어 놓을 수 없는데 어떡하면 좋을까? 맞춤법도 엉망이다. 띄어쓰기도 잘 하지 못하고, 문장력도 그저 그렇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멋진 작가가 되고 싶다. 방구석에서 혼자 대충 쓰고는 멋있다고 말하며 혼자 만족하는 그런 작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도 하고 감탄을 받기도 하는 그런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아니, 그래, 이런 저런 이유로 나는 어쩌면 정말 멋진 작가가 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그냥 작가는 될 수도 있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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