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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딜레마

가끔은 재미없지만.

by 박작가


글을 쓸 때는 어떤 걸 써야 할지,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이라면 글을 다 쓰고 난 다음에는 이걸 G에게 보여줘야 할지가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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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자. 그는 30대의 평범한 남성으로, 키는 평균이다. 몸무게는 평균보다 조금 더 나가지만 그렇다고 겉으로 봤을 때 살이 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면 모를까. 한 달 전에 머리를 짧게 잘랐는데 어울리지 않다는 평가를 여러 명으로부터 들어서 현재 기르는 중이다. 치장에 욕심이 적어 가진 옷이 몇 벌 없는데 그 중에서도 청바지와 셔츠를 자주 입는다. 식욕이 별로 없고 배고픔을 잘 느끼지 못하지만 배가 커서 한 번 먹을 때 많이 먹는다. 가리는 거 없이 다 잘 먹는데 특히 라면을 좋아한다. 카페에 가면 아이스 아메리카노만 시켜고, 단 건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간식은 잘 먹지 않는다. 먹는다 하더라도 단 것 보다는 짠 것을 주로 먹는다. 휴대폰으로 유튜브 보는 걸 즐기는데 특히 침착맨 채널을 좋아한다. 게임도 좋아하는데 아직 자신의 취향을 제대로 발굴하지 못해서 이것저것 자주 시도해 본다. 모바일 게임이나 PC게임보다는 콘솔 게임을 더 즐긴다. 그리고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유일하게, 글을 쓰는 사람이자 배운 사람이고 또 문장을 공부한 사람이다.


그는 글을 누구보다도 고심해서 쓴다. 문장을 깔끔하고 간단하게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기 때문에 단어 하나를 쓸 때도 그렇게나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고민을 너무 많이 해서, 들이는 시간에 비해 나온 글은 많이 짧다. 그래서 그는 내가 어떻게 그렇게 글을 길게 쓰는 건지 신기해 한다. 다행스럽게도 길이가 짧다고 해서 생각까지 짧은 건 아니다. 그의 글은 단순해 보여도 나름의 서사가 있고 깊이가 있다. 난 그걸 참 좋아한다. 그는 글을 한 번 쓸 때 신중하게 쓰기 때문에 한 번 완성하고 나면 거의 고치지 않는다. 다시 봐도 완벽하고 온전해 보인다.


나는 글을 쓸 때 그리 고민하지 않는다. 머리가 받아 적으라고 말하는 걸 그대로 타이핑해 옮기기만 하는 것 같다. 구어체에 가까운 문장을 구사하기도 하고 날 것의 표현도 많이 적으며 늘 쓰는 어휘만 사용한다. 그렇다 보니 G가 봤을 때 내 글은, 뭐랄까, 사탕수수 그 자체다. 설탕이 되려면 많이 손보고 고쳐야 하는. 그는 입버릇처럼 내게 “J야, 너는 문장을 좀 배워야 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다. 나도 필요성을 느낀다.

하지만 가끔은 내 글을 교정하려는 그의 행위가 마치 내 개성을 죽이고 그의 스타일로 바꾸려는 일련의 시도처럼 느껴져서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나는 가끔 통통 튀는 쓸데 없는 표현이나 조사를 넣고 싶어 진다. 하지만 그는 그런 걸 가만 두지 않는다. 꼭 지적을 한단 말이지. 글을 봐달라고 하는 건, 잠시 맡기는 거다. 모난 점을 잡아서 바르게 고쳐 달라고 부탁하는 거다. 그렇다 보니 그에게 글을 보여주면 돌아오는 피드백을 모두 수용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곤 한다. 기껏 부탁했으니 성의를 보여야 하는 거다. 하지만 그의 스타일과 나의 스타일은 다르다. 그가 삭제하고 싶어하는 부분이 내게는 마음에 드는 부분일 수가 있다. 반대로 내 마음에 든다 하더라도 그의 말대로 삭제하는 게 정말 옳은, 바른 문장을 만드는 길일 수가 있다.


어떻게 하면 그의 말을 받아들이면서 적당히 처낼 수 있을까? 중간을 찾는 건 어렵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고 나면 이걸 G에게 보여줘야 할지 말지 고민한다. 문장이 조금 엉망진창이라 하더라도 내 스타일을 뽐내며 온전히 보전하는 게 좋을지, 아니면 내 스타일이 조금 죽더라도 약간의 가공을 거치는 게 좋을지. G가 문장을 기가막히게 쓴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사람을 주변에 둘 수 있다는 건 아주 큰 행운이다. 그러니 내게 주어진 인적자원을 아주 유용하고 알차게 사용하고 싶다. 그래서 늘 딜레마다.


그런 G는 내 글을 좋아한다. 그는 내 글에 통통 튀는 매력이 있고 나만의 감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울한 이야기만 쓰는 그와 달리 나는 우울하지 않은 이야기도 쓰기 때문에 그는 내 글을 읽으며 곧잘 웃곤 했다. 가끔 본인이 글의 대상이 될 때면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랬던 G는 어느 날 함께 책을 내자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말고 누가 G랑 책을 낸단 말이야?. 그러다가 그가 나를 높이 사서 그런 제안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그리고 살짝 불안해졌다. “어? 얘 분명 책 낸다고 하면 나한테 엄청 뭐라고 할 텐데.”


책을 내려면 말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문장을 고심해서 골라야만 한다. 그게 읽어주는 이들에 대한 예의다. 하지만 늘 G가 이야기하듯 나는 문장을 배워야만 하는 사람이다. 내 문장은 완전하지 않다. 가끔은 이해하기 힘든 비문을 쓰기도 한다. 그런 내가 그와 함께 책을 내려면, 우리는 서로의 글을 보고 평가를 해줘야 한다. 함께 묶이게 되는 거니까! 그 말은 그가 나의 온갖 지저분한 흔적을 본다는 거고, 나는 그가 내 글의 흠을 지적하는 걸 듣고 있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나는 당연히 함께 책을 내겠노라 대답했다. 다른 건 다 제치고 G와 함께 한다면 멋진 책이 나오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내 글을 보고 너무 뭐라고 하면 안 된다고 조건을 걸었다. 내가 아닌 글에 대한 평가인 걸 알지만 가끔은 글이 나 자신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문장을 지적받으면 너무 마음이 아플 것 같았다. 내 나름대로 그와 함께할 준비를 한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G가 글을 안 쓴다. 왜냐하면 그는 글 쓰기를 아주 어려워 하니까. 단어 하나도 신중하게 고르며 글을 쓰는 데 아주 고심하니까. 그래서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출판 할 만한 양이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도 쌓이지 않았다. 아예 안 쓴 건 아니지만… 안 썼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그 사이 G는 내 글을 여럿 봐 줬다. 그중에는 소설도 있었고 에세이도 있었다. 그가 지적하지 않고 지나간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가 봤을 때 내 글은 쓸데없는 조사와 부사 투성이고 비문도 가득하니까. 처음에는 세상이 두 갈래로 찢어질 듯 슬프기도 하고 수치스럽기도 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나도 어느 정도는 그에게 내 글을 맡기게 됐다. 알아서 수정해 달라고 할 때도 있다. 물론 오타나 띄어쓰기 같은 것만(그는 문장뿐 아니라 국어 공부도 했는지, 정말 짜증나게도 맞춤법을 잘 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그에게 글을 보여주는 건 고민되는 일이다. 그가 어디까지 지적할까? 내가 보기엔 충분히 잘 썼고 괜찮은 것 같은데, 어떤 부분이 어떻게 이상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극도로 다이어트한 문장을 좋아하는 그가 어떻게 지적할까? 나만의 감성, 나의 스타일이 들어간 문장은 또 어떻게 너덜너덜해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에게 보여주면 문장이 깔끔하게 정돈될 걸 아니까, 그의 스타일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그게 더 읽기 좋은 글을 만드는 방법이니까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한다.


이건 참 재미있고, 어이 없고, 끝이 없고, 한숨과 웃음이 동시에 터져 나오는 딜레마다. 그의 말대로 내가 문장을 배우면 끝이 나겠지만, 글쎄. 언제 완성될지 모르는 그의 출판 원고처럼 끝이 전혀 보이지 않는 걸. 아마 당분간은 계속 딜레마를 겪어야 할 것 같다.


이 글. 보여줄까, 말까? 한 번 고민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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