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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따가 Apr 22. 2024

집이 좋은 사람 (4)

처음 임장을 간 사람이 무엇을 알 수 있었을까. 내 경우는 이랬다. 누구나 처음은 있다는 점. 집 볼 줄 모르는 사람도 집을 살 마음 정도는 먹어볼 수 있다는 점. 집 볼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집을 볼 줄 모른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위험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점. 그런데 시간이 한참 지나고 이제야 이런 것들을 알게 되었다는 게 더 무서운 점이다. 


그때는 창밖에 보이는 초록빛 풍경이 나에게 주는 평안함을 몰랐고, 집 주변의 유흥시설이 내 삶의 질을 어떻게 떨어뜨릴지 몰랐고, 인테리어를 하지 않으면 살 엄두가 나지 않는 구축이 어떤 의미인지, 방 2개와 방 3개의 차이, 신축과 구축의 구조 차이를 몰랐다. 지하철이 가까우면 되었고, 버스가 자주 오니 좋았고, 앞으로 호재가 있다고 하니 미리 사서 살면 부자가 되려나 싶었다. 어찌 알겠는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일들이 있고, 난 30년 동안 부모님 집에 얹혀살기만 했는데…


그럼에도 어쩌면 다행이게도 집값은 너무 비쌌고 난 욕망의 막차를 타고 영끌할 말 큼 간이 큰 사람이 아니었다. 간이 큰 사람이었다면 몸 고생 마음고생 많이 했을 텐데 후회하는 일만큼이나 내 간이 작아서 다행이지. 그날 이후로 부동산에서 귀찮게 연락이 많이 왔다. 급한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아, 연락이 올 때마다 다행이다 싶었다. 


첫 임장으로 인덕원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익숙한 곳이라서. 형이 결혼하고 부모님도 귀촌하시면서 부모님 집에 얹혀살던 나도 자연스레 나도 독립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직장에 조금 더 가깝다는 이유로 내가 고른 곳이 인덕원 포일동이었다. 내 첫 집은 방 2개에 부엌만 딸린 10년도 안 된 깔끔한 빌라였다. 집 주변은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고, 천이 흘러서 산책하기가 좋았다. 지하철 타러 갈 때 음침한 유흥가를 지나야 한다는 점이 꺼림칙했지만, 그 길에 맛있는 비빔국숫집이 있어 다행이었다. 그 집 육수가 참 괜찮았지.


인덕원 살면서는 집의 중요성을 잘 몰랐다. 그때는 야근도 많이 했고, 연애하느라 바빠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기도 했다. 집에서 살림을 한다는 개념도 없었는데, 집은 대충 어떻게 끼니를 때우고 잠을 잘 수 있으면 되는 곳이었다. 옆 건물에 술집이 있어서 밤늦게까지 불을 환하게 밝히고 소음이 들릴 때가 있어서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겐 충분히 만족스러운 집이었다. 산책하기 좋은 한적한 동네에 집에 많은 신경 안 쓰고 살 수 있게 해 준 그 동네가 익숙했고, 나름대로 살기 괜찮은 곳이라는, 앞으로 계속 좋아질 거라는 확신도 있었다.


GTX 호재로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다는 뉴스로 떠들썩했던 인덕원은, 첫 임장 후 1년쯤 지나서 다시 뉴스에 오르내렸다. 이번엔 15억을 호가하던 아파트가 5억, 6억씩 폭락했다는 이야기에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고 혹시나 잘못된 선택을 했을 다른 멀티버스의 나에게 애도를 표한다. 그때 다시금 슬금슬금 드는 생각. 그럼 이제 나도 집 살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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