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나서면 집 앞의 버스 정류장으로 간다. 거기엔 사람들이 모여있다. 나와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도 있고, 다른 버스를 타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 중 누군가는 손풍기를 들고, 누군가는 카디건을 걸치고 있다. 그중 누군가는 집으로 향하고 누군가는 집을 떠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부터는 이동수단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 시간은 꽤 길었다. 따라서 그 시간 동안 할 것을 생각했다. 처음엔 음악이었다. 이어폰부터 어떤 플랫폼으로 음악을 들을지를 정해 이용권을 결제하고, 내가 좋아할 음악을 리스트업 했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재생하니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은 좋았다. 볼륨을 살짝 올리면서 그 기분을 만끽했다.
그다음은 책이었다. 영상은 데이터를 다 쓰면 뚝뚝 끊기는 탓에 충전하지 않고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했다. 그래서 서점에 갔다. 베스트셀러부터, 어디선가 스치듯 이름을 들어본 작가, 제목이나 표지가 끌리는 책까지. 여러 책을 열었다 닫았다 해보며 1만 원 언저리의 돈을 지불한다. 물론 들고 다니기 무거운 부분은 있지만 어쩐지 대중교통에서 책을 읽는 모습은 썩 괜찮아 보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책은 재밌는데 충전도 안 해도 되니까. 어떤 땐 책을 읽느라 목적지에 내리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
음악이나 책을 다 제쳐놓고 사랑하는 사람과 통화를 할 때도 있었다. 돌아가는 길, 그냥 심심하다는 이유로. 사실 그건 그날이 유난히 힘든 날이어서 목소리가 듣고 싶었던 거일 텐데 그런 마음까지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목소리로 일상을 듣거나 얘기하다 보면 기분이 곧잘 나아졌다. 그러다 환승이나 우산을 펴야 되거나 하는 등의 상황이 되면 전화를 끊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이따 연락할게.
친구들과 만나게 될 때도 있었다. ‘지금 어디서 어디 가는 지하철인데….’ 같은 말을 하다 보면 ‘어 나도 그쪽 가는데!’하며 갑자기 보게 될 때도 있었다. 환승 지점에서 내가 탄 칸의 숫자를 이야기해서 앞에 서있기도 했고, 반대로 내가 서있기도 했다. 그러면 또 시시콜콜 수다를 떨다 지하철 역 안에서 파는 싸구려 빈티지 옷을 같이 쇼핑을 하기도 했고, 빵 냄새에 홀려 갑자기 군것질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는 대중교통에서 운 적이 많다. 지하철에서 울고, 버스에서 울고, 환승하면서 울고, 출구 나가면서 울고. 이유는 그때마다 달랐는데, 크게 말하면 애인 때문에 울고, 편지 읽으면서 울고, 가족 때문에 속상해서 울고, 인생이 답답해서 울었다. 대중교통 안에서는 다들 모르는 사람이니까 울기가 편했다. 우는 이유도 물어보지 않고, 달래주지도 않으니까.
또 내가 쓴 글들은 거의 대중교통 안에서 쓴 글이다. 가끔 글 쓰는 장소가 있냐고 질문받을 때가 있는데 이국적인 분위기를 가진 최근에 가 오픈한 카페 아니고, 대중교통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핸드폰을 붙잡고 글을 썼다. 대중교통에서 기뻐 보이지도, 슬퍼 보이지도 않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이상하게 글이 쓰고 싶어졌다. 저 사람들도 속상할 때 있고, 힘들기도 하고, 어떤 땐 주체할 수 없게 기쁘기도 하면서 살아가겠지. 어떤 사람은 아프고, 어떤 사람은 건강하겠지 싶으면서.
우리 엄마한텐 내가 중요한 사람이겠지만 대중교통 안에선 많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나도 그냥 사람 1에 불과하다. 예전엔 그 속에서 스트레스만 받았지만 가끔은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게 좋기도 하다. 피곤할 땐 피곤해 할 수도 있고, 울고 싶으면 편하게 울 수도 있으니까. 어쩐지 그 안에서 솔직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오래간만에 지하철에서 울었다. 울고 나니 익숙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지긋지긋한 그 공간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눈물 뚝뚝 흘리다 보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아무도 나에게 우는 이유를 묻지 않았고, 달래주지도 않았다. 나와 같은 칸에 탔지만 나와 같이 내리는 사람도 있고, 내리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나는 나의 목적지에 내린다. 이건 어쩐지 삶과도 꽤 많이 비슷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