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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Sep 23. 2022

<토이 스토리> - 하는 사랑


토이 스토리의 장르에는 많은 키워드가 있다. 애니메이션, 모험, 코미디, 가족, 판타지, 드라마, 키즈.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없다. 그건 바로 사랑. 토이 스토리는 사랑을 완벽하게 담은 영화다.


1편의 첫 사건은 장난감들의 주인인 앤디의 생일이다. 장난감들은 바짝 긴장한다. 그리고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닌 듯(아마도 매년 생일마다 해온 일인 듯) 능수능란하게 분담하여 앤디의 생일 파티 상황을 엿본다. 그 이유는 바로앤디가 자신의 상위 호환인 장난감을 선물 받아 자신이 대체될까 봐. 그래서 앤디와 헤어질까 봐.


다행히 기존 장난감의 상위 호환 버전을 선물 받지는 않았지만, 최신 장난감인 우주 전사 ‘버즈’를 선물 받는다. 따라서 앤디의 최애 장난감인 우디는 앤디의 사랑을 버즈가 독차지할까 봐 질투한다. 질투 어린 행동에 버즈를 앤디에게서 떼어놓으려다 우디는 본인마저 앤디와 멀어질 위기에 처한다. 그러다 앤디의 버즈의 멋짐을 인정하고, 자신이 제일가는 장난감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며 버즈와의 오해를 푼다. 따라서 버즈와 힘을 합쳐 이사를 가던 앤디네의 자동차 속에 멋지게 추락하며 토이스토리 1편이 끝난다.


2편의 사건은 창고 세일이다. 또 한 번 장난감들은 긴장한다. 자신들은 이제 한물 간 장난감이고, 오래돼서 낡기도 했으니까. 장난감들은 앤디와 앤디 엄마가 자신들을 창고 세일에 내놓을까 두려워한다. 그러다 위지라는 오래된 장난감이 창고 세일 상품으로 담겨 나가게 되고, 우디는 위지를 구하러 간다. 그 과정에서 우디가 토이 수집광 알에게 유괴를 당한다.


알은 ‘우의 가축 몰이’라는 옛날 TV프로에 나온 토이들을 수집하던 중이었고, 제시와 불스 아이 스팅키를 가지고 있던 알은, 우디까지 손에 넣어 완벽한 세트를 구성하게 됐다. 알의 집에 도착한 우디는 당연히 앤디에게로 돌아가려 하는데, 그런 우디를 보며 카우걸 제시는 말한다. “아직도 주인 타령이네. 앤디는 정말 특별한 아이라고? 앤디가 너랑 놀아줄 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 거고 널 그렇게 대해 주니까? 에밀리도 똑같았어. 그 앤 내 전부였어.”라고. 이어서는 한때 에밀리라는 주인에게 사랑을 받았던, 제시의 마음을 담은 애처로운 음악이 나온다. 노래 가사는 이렇다.


/ 사랑을 받을 땐 모든 게 아름다워. 함께했던 모든 시간 너무 소중해. 그 애가 슬플 땐 눈물을 닦아주고 기쁠 때는 함께 웃었지. 사랑받을 땐. 그 해 여름과 가을 둘만의 시간 가질 땐 즐겁고 행복했어. 꿈같은 시간들. 그 애가 외로울 땐 내가 위로해줬지. 정말 나를 사랑했어… 나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 앤 점점 멀어졌어. 나 혼자 남아 종일 기다렸어. 사랑해, 하며 올 것 같아. 사랑을 받을 땐 모든 게 아름다워. 함께했던 모든 시간 너무 소중해. 사랑받을 땐… /


스팅키도 말한다. “얼마나 오래갈까, 우디? 앤디가 대학이나 신혼여행 갈 때도 자넬 데려갈까? 앤디는 자랄 거고 자넨 그걸 막을 수 없어. 선택하게, 우디. 돌아가서 버림받겠나, 아니면 우리와 함께 영원히 아이들의 사랑을 받겠나?” 우디는 그 말을 듣고 고민하다 결국 앤디가 아니라, 가축 몰이 팀에 남아 박물관에 전시되기를 선택한다. 심지어 우디를 구하러 온 장난감 친구들에게도, 우디는 앤디에게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에 가고 싶다고 한다. 버즈는 우디에게 소리친다.


버즈 : 넌 전시용이 아냐, 장난감이야!

우디 : 언제까지? 또 망가지면 앤디가 날 버릴 거야. 그땐 어떡하지?

버즈 : 옛날에 어떤 장난감이 가르쳐줬어. 중요한 건 어린이의 사랑을 받는 거라고.

우디 : 나도 어쩔 수 없어, 버즈. 내겐 마지막 기회야.


여기서 우디가 말하는 ‘기회'는 뭘까. 버림받지 않는 것? 버림받지 않고 헤어지는 것? 아무튼 우디는 가까스로 돌아가지 않기를 선택한다. 허나 TV 속에 흘러나오는 노래와 영상을 보며 잠깐 상념에 빠진다. 그러다 신발에 오래전부터 쓰여있던 ‘ANDY’라는 글자를 보고 마음을 바꾼다. 그리고, 또 한 번 극적으로 무사히 앤디에게 돌아간다. 가족이 있길 바랐던 제시와 불스아이까지 함께.


3편에서는 스팅키의 말대로 앤디가 대학을 가는 게 주요 사건이다. 집을 떠나는 앤디는 장난감들을 다락에 올려놓을지, 쓰레기와 같이 버릴지, 탁아소에 기증할지 선택한다. 앤디는 다락에 올려놓으려고 했으나, 앤디 엄마의 실수로 밖에 내놓으며 일이 꼬여 탁아소에 기증된다. 탁아소에 온 건 처음엔 좋지 않은 일 같았지만 생각해보면 어차피 앤디는 대학교에 가고, 현실적으로 앤디와는 헤어질 일만 남았으니 우디와 장난감들은 탁아소에 있어보기로 한다.


행복할 줄 알았던 탁아소의 생활은 그렇지 않다. 탁아소의 아이들은 앤디처럼 소중하게 대해주지 않는다.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로 험하게 다룬다. 그러던 중 장난감들은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된다. 하나는 탁아소에는 나이대로 반이 나뉘어 앤디네 장난감들을 다룬 반 아이들은 너무 어렸다는 것, 또 하나는 앤디가 자신들을 찾는다는 것. 장난감들은 여러모로 앤디에게 다시 돌아가기를 다짐한다.


이번에도 고난을 이겨내고 집에 돌아온 우디와 장난감들은 앤디의 망설임을 본다. 우디는 잠깐이었지만 자신을 다정하게 대해줬던 ‘보니’에게 앤디가 장난감을 물려주는 내용을 포스트잇에 적는다. 앤디는 보니를 찾아가고, 장난감을 전달해준다. 그렇게 앤디는 대학에 가고, 장난감들은 앤디와 헤어진다.


1편에서 3편까지 연달아 본 내 감상은 장난감들이 사랑받는 데 중독된 것만 같았다. 어떤 순간엔 너무 좋아해서 항상 헤어질까 두려워하며 눈치를 보던 애처로운 나의 옛 연애가 생각나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이런 두려움으로 이야기가 계속되는 게 맞는 걸까? 보는 사람들이 그저 옛날에 가지고 놀았지만 더 이상 가지고 놀지 않는 장난감을 아련하게 추억하는 게 이 영화가 하는 이야기일까?


그런 내 걱정은 4편에서 완전히 기우가 된다. 4편은 보니에게서 시작된다. 앤디의 최애 장난감이었던 우디는 보니에게선 먼지 구덩이 신세가 된다. 그럼에도 우디는 보니의 곁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 우디는 어린이집 첫날을 긴장하는 보니를 도와주기 위해 보니의 가방에 몰래 잠입한다.  보니는 어린이집에서 일회용 포크로 장난감 ‘포키’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포키는 계속해서 본인이 장난감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며 도망간다. 보니는 계속해서 포키를 찾는다. 우디는 포키를 찾으러 떠난다. 보니를 위해서.


그 길에서 우디는 오래전에 앤디의 집에서 앤디의 여동생 몰리에게 버려졌던 ‘보핍’을 만난다. 보핍은 그간 주인이 없는 바깥 생활에 완벽히 적응한 상태였다. 드레스 따윈 집어던지고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 그런 보핍은 꽤나 멋있어 보인다. 우디는 보핍에게 설렘을 느낀다. 아무튼, 우디는 그간 바깥 생활을 마스터한 보핍의 조언을 따르며 포키를 찾아낸다. 찾아낸 포키를 보니의 곁으로 보낸다. 그리고 항상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인에게 돌아가던 우디는, 이번만큼은 보니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바깥 생활을 선택한다. 보핍과 함께하기를 선택한다. 그렇게 토이 스토리의 시리즈가 막을 내린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선 이런 구절이 있다.


/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
 

토이 스토리는 1편부터 3편까지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과 헤어짐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장난감들이 고난을 이겨내며 주인에게 관성처럼 돌아가는 이야기다. 하지만 4편에서만큼은 우디는 보니에게 돌아가지 않고, 보핍의 곁에 남는다. 이는 바로 우디가 더 이상 ‘받는 사랑’이 아니라 ‘하는 사랑’을 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디를 포함해 장난감들은 사랑을 받지 못하면 자신의 쓸모가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 의미를 더 확대해보면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곧 존재의 의미를, 나아가 삶의 목적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여긴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받지 못한다고 해서 장난감들이 쓸모없는 쓰레기가 아니고, 앤디의 곁도 보니의 곁도 아닌 곳에서도 우디의 삶은이어진다.


토이 스토리 4편은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허나 4를 보면 왠지 ‘마지막’이라는 느낌보다는 ‘또 다른 시작’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건 우디가 정말로 새로운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우디의 삶엔 더 이상 주인이 필요 없다. 그건 사랑받는 삶이 아닌 사랑하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이며, 이건 비단 장난감들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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