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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May 15. 2023

사랑! 해보셨습니까?

영화 <오아시스> 2002, 이창동

    중학교 때 놀랐던 적이 있다. 우리 반에 있는 장애인 친구가 큰 목소리로 ‘남자 집에 가고 싶어!’라고 외친 것이다. 몇몇은 나처럼 놀랐고, 몇몇은 흥미로운듯 웃으며 더 캐물었다. ‘남자 집에 가서 뭐하게?’ 그 친구가 발랄하게 말했다. ‘밥도 먹고, 장난도 치고, 같이 자고 싶어!' 몇몇은 웃었고 몇몇은 벙찐 표정이었다. 벙찐 표정의 뜻은 우리가 그 친구에게도 그런 성애적 욕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고, 웃는 표정은 그 친구의 욕구를 비웃는 듯했다.


    대부분의 영화나 드라마에선 예쁘고 잘생긴 주인공들이 사랑을 한다. 로맨틱하고 사랑스러운 대사로 사랑을 말한다. <오아시스>는 그렇지 않은 영화다. 누가봐도 형편없는 남자 종두(설경구 역)와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중증뇌성마비장애인 공주(문소리 역)가 사랑한다. 주변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을 멸시한다. 종두와 공주의 사랑이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보편의 경로를 밟는데도. 그들의 섹스는 강간으로 치환된다. 종두는 덜 떨어진 인간이라 장애인을 좋아하고 장애인에게 발기하며, 공주는 누구에게도 성욕을 자극할 수 없는 여성이므로 공주에게도 성욕이 없을 거라는 판단으로. 그러나 이건 영화적 과장이 아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을 그들이 가진 외부적 조건으로 판단하여 어떤 사랑은 멸시하고, 어떤 사랑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며, 어떤 사랑은 우습게 바라보는 걸 삶에서 쉽게 경험한다. 


    영화에서는 몇 차례 공주가 자신에게 만약 장애가 없었다면 지금 어떤 순간일 수 있을지를 상상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러나 그 장면은 어쩐지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우리가 그동안 관람해온 여느 사랑 장면과 표면적으로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단언컨대 이 영화는 여느 사랑 영화를 볼 때처럼 주인공들의 감정에 이입하고, 주인공들이 이어지길 바라면서 보기가 어렵다. 걱정되고, 의심되고, 눈살이 찌푸려진다. 세상엔 아름다운 사랑 영화가 널렸는데, 나와 사람들은 왜 이런 불편한 영화에 열광할까. 


    이창동 감독은 <오아시스>를 통해 가장 본질에 가까운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또한 사랑의 판타지를 결혼, 내집 마련, 육아, 태교 등등 제도와 문명이 마련해 놓은 방법을 통해 실현할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게 사랑의 실현일까. 정말 사랑을 실현하는 건 뭐지. 그건 종두처럼 나무를 자르는 것이 아닐까, 라고. 감독은 처절함 속에서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고 <오아시스>를 ‘그냥 사랑 이야기’라고 말한다. 


    <오아시스>는 알려준다. 우리가 여지껏 사랑을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의 얼굴과 아름다운 풍경, 어울리는 노래가 겹겹이 쌓인 장면만을 통해 봤음을. 그리고 사랑이 있어야 할 곳 또한 안락하고, 포근한 곳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무의식을. 동시에 <오아시스>는 질문한다. 사랑은 아름다운 사람들의 것인가? 어떤 사랑이 당연하고, 어떤 사랑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런 질문들은 꽤나 의미있게 다가오지만, 실제로 입에 올렸을 때 여전히 혀 끝에 씁쓸함이 느껴지는 건, 왠지 이것조차 영화라는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공주와 종두에겐 서로가 있지만 그때 그 장애인 친구 옆엔 누가 있을까. 만약 그 친구가 사랑을 하고 있다면 과연 응원받고 있을까. 


    영화 포스터에는 이런 카피가 있다. ‘사랑! 해보셨습니까?’ 나는 아직도 그 문장에 오랫동안 멈춰있다. 허나 나뿐만 아니라 누가 이 질문에 멈추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종두와 공주만큼은 이 문장에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지 않을까. 종두와 공주. 20년이 지나도 이들의 이름을 들으면 여전히 가슴이 저릿하다. 나는 이 영화를 끊임없이 다시 본다. 그렇게 봤어도 볼 때마다 눈물이 난다. 다 보고 나면 발가벗겨진 기분이 드는데도 본다. 영화를 볼 때마다 사랑을 배운다. 모두가 싫어하고, 세상에서 소외당한 종두와 공주에게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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