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에 돈은 쌓여가는데 인생은 더욱이 살기 싫어진다. 맛집이라고 하는 곳 여기저기 가봐도 입맛에 맞는 곳 찾기가 어렵고, 입맛에 맞는 곳 찾으면 웨이팅이 대박이고, 웨이팅 대박인 거 기다리면 바쁜 직원들 눈치 보느라 맛만 좋고 경험이 후져져서 가기가 싫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왠지 모르게 맘에 들어서 대화 좀 해보면 왠지 모르게 맘에 안 든다. 그러다 보니 마음에 들어도 가까워지려고 발악하기보다는 그냥저냥 적당히 대화하고 선 지키면서 지낸다.
예쁜 옷은 빚내서라도 사고 싶었는데 이제는 예쁜 옷 걸쳐 입고 끝내주는 사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리고 좋아요 좀 많이 받는 걸로 충분했던 지난날들이 그리울 지경이다. 이제는 그런 것도 오래가지 않는 기쁨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오래가는 기쁨만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건 내가 나이가 든 건지 재미가 없어진 건지 영 섹시하지 못한 것 같지만, 어쨌건 더는 오래가지 않는 기쁨에 쓰는 시간이랑 돈이 아깝다. 그러니 무엇을 먹어도 어디를 가도 어떤 것을 해도 까다롭게 구는 어르신들이 슬슬 이해가 되기도 한다. 가벼움과 쾌락을 위해 어디든지 부르면 달려가고 내키면 누구라도 상관없이 밤새 함께하던 게 쿨함이라면 쿨함이고, 젊음이라면 젊음일 것인데 그 두 가지는 나에게 분명히 사라져 간다. 그것이 아쉽거나 두렵냐 내게 물어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면 이런 글을 왜 쓰냐 또 물으면 할 말이 없으니 아마 아쉬움과 두려움이 있기는 있는 것 같다.
책임질 것들을 생각하며 일찍 침대에 누워선 괜히 자기 싫어 이것저것 틀어보고 눌러본다. 그래도 아프면 안 되니까 잘 자고 잘 먹고 잘 절제해야 한다고 나를 달랜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데, 아프면 안 된다고 말하니 아마 청춘은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나에게도 빨리 지나가는 이 시간이 부모님에겐 얼마나 빠를까. 벌써 한 해의 끝 달이다. 아직도 첫눈을 보지 못했는데, 보면 봐서 아쉽다. 음미해 버린 인생은 매력이 없다는데 이미 내 인생은 매력이 빠진 걸까. 거울 앞에 서서 내 매력이 다했는지 살펴본다. 나르시시즘도 다 했다. 이젠 그냥 나 같다. 다들 이렇게 사는 건가. 다들 이렇게 늙는 건가. 도통 알 도리가 없어 어두운 방에서 천장 보고 꿈뻑꿈뻑 물어본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