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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은 Apr 15. 2024

버스 안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옆엔 아마도 여든 살을 넘겼을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쥐고 앉아 계셨다. 버스가 왔고, 여성 기사님이었다. 가뿐히 오른 나와는 달리 할아버지는 지팡이 한 번, 걸음 한 번. 다시 지팡이 한 번, 걸음 한 번. 한 걸음마다 몇 초씩은 걸렸고, 다들 버스를 타봐서 알겠지만 몇 초라는 시간은 짧아 보이지만 보통 버스에서는 허용되지 않는 시간이다.


보통의 버스라면 이미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기사님은 기다리시면서 할아버지에게 소리 지르듯 말했다. 천천히 올라오세요! 천천히! 그 소리지름은 빠르게 오르려는 할아버지에게 다그치는 것도 있었겠지만, 잘 안 들리실 것 같아 크게 말씀하시는 것도 있었다. 아무튼 기사님은 할아버지가 교통 카드를 찍고 안전봉을 잡고 계실 때에도 출발하지 않고 말했다. 앉으세요! 어르신 앉으세요! 할아버지가 차분차분 노약자석에 앉았다. 기사님은 할아버지가 완벽하게 착석했음을 확인한 뒤에 출발했다. 직진만 하는데도 버스가 들썩들썩거렸다.


지하철 역에 다다를 때쯤 할아버지가 벨을 누르시려고 손을 뻗으려고 하셨다. 나 또한 지하철 역에서 내리기에 벨을 눌렀는데, 할아버지의 손에 천 원이 들려있었다. 천 원? 천 원을 왜 들고 계신 거지? 버스비? 아까 교통카드 찍지 않으셨나? 내가 별 걸 다 의아해하고 있는 와중에 할아버지는 달리고 있는 버스 안에서 일어나려고 안전봉을 힘껏 잡으셨다. 기사님은 할아버지가 일어나려고 엉거주춤하는 자세를 보고 또 소리 지르셨다. 앉으세요! 어르신 앉으세요!


기사님의 다그침에도 할아버지는 힘을 내 일어나셨다. 그리곤 기사님에게 가셨다. 그리곤 그 천 원을 주셨다. 자세히 듣진 못했지만 배려해 줘서 고맙다는 성의의 표시였다. 기사님은 연신 아유 아니에요! 안 받아요! 못 받아요!라고 하셨지만 할아버지는 무적의 말씀을 하셨다. 어른이 주는 돈은 받는 거야. 기사님은 그 말에 항복하고 천 원을 받았다. 음료 하나 뽑아 먹어. 할아버지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때 나는 왠지 모를 좋은 미소가 지어져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려 미소를 활짝 지었다. 기사님은 또 소리쳐 말씀하셨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할아버지는 다시 자리에 앉으셨다. 어르신 감사해요! 앉으신 할아버지를 향해 기사님이 한 번 더 말씀하셨다. 응 괜찮아. 뭐가 괜찮은 건지 대상은 없었지만 내 마음대로 더 해석해 보면 나는 할아버지가 기사님에 너의 상냥함은 이렇게 보상받아도 당연한 거니 너무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천천히 우회전을 하는 동안 기사님은 혼잣말로 말씀하셨다. 아유 이거로 음료수를 어떻게 뽑아 먹어. 우리 아빠 생각나네…라고. 버스가 멈추고 할아버지가 천천히 내렸다. 기사님은 여전히 할아버지가 안전하게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기사님이 한 번 더 외치셨다. 그간 이 버스가 배차가 너무 길어 가끔은 야속하기도 했는데 오늘 그 시간들이 괜찮아졌다. 정말이지 할아버지 말씀대로였다. 모든 게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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