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병적인 집착 같은 것이 하나 있었다.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땐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내가 마음먹으면 할 수 있는 난이도 최하의 목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 때에는 남아서 청소하는 친구들 옆에 남아 절반의 시간은 함께 청소를 하고 나머지 시간은 청소를 하는 둥 마는 둥 같이 뛰어놀았다. 너의 힘든 시간을 함께 하는 친구의 이미지를 주고 싶었던 것일까. 그저 신나게 놀고 싶던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이었을 거라 믿고 싶지만, 의도와 관계없이 굳이 하지 않아도 될 행동을 하고 나서 내가 꽤 뿌듯해했다는 건 확실하다.
중학생 때의 나는 유난히도 소심했고 조용했다. 말 수도 많지 않고 공부만 적당히 하다가 학원에 가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내 짝꿍은 학교에서 좀 논다는 어느 예쁜 친구였다. 나랑 키는 비슷했지만 얼굴이 훨씬 예뻤고 어깨에 닿지 않는 단발머리는 촌스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고 오히려 산뜻하게만 보였다. 그 친구는 나에겐 매우 친절했지만, 점심시간이면 늘 학교 뒤편 어디선가 담배를 피우다가 나타나고, 또 어느 날은 수업을 통째로 빠지고 그녀와 가까운 친구 혹은 선후배들과 시간을 보내다 오곤 했다. 빳빳한 교복과 어울리지 않던 담배 냄새도, 수업 시간 내내 휑하던 빈자리도 모두 마음에 걸려 나는 그녀에게 어쭙잖은 충고를 했다. 뭐 아마도 담배는 몸에 좋지 않고, 혹시나 주변 친구들이 좋지 않은 행동을 하면 네가 그걸 제어해주면 어떻겠냐 정도의, 정말 임팩트 없는 충고였던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때마다 내게 초코우유와 달달한 빵을 매점에서 사다주며 "너 왜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니. 쉬엄쉬엄해"라며 딴소리를 하기에 바빴다. 어쭙잖은 충고는 그녀의 행동에 변화를 가져올 리가 만무했지만 그때 나는 그녀에게 필요한 얘기를 해주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평소 웃으며 대화하고 시험기간이 되면 내게 궁금한 것들을 질문하는 그녀를 보면서 이 친구와 이런 대화를 나누면 청소년 드라마 같은 훈훈한 상황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녀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는 어찌하다 보니 반장이 되어 있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반 친구들의 의견 취합을 해야 했고, 선생님과 반 친구들을 연결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이 잦았던 터라 중학생 때의 소심한 성격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자연스럽게 주변의 친구들은 많아졌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은 심심할 틈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점심시간, 속이 좋지 않아 점심을 포기하고 학교 도서관 근처를 배회하고 있었는데 같은 반 친구를 마주쳤다. 그러고 보니 나는 그 친구와 한 번도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래서 곧장 달려가 말을 걸었다.
"넌 점심 안 먹고 여기서 뭐해?" 나의 질문에 그녀는 적잖이 당황하더니 대답하지 않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무슨 일인지 싶어 그녀를 쫓아가 다시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래?"
그러자 그녀는 주변을 살펴보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너 왜 나한테 말 걸어? 그럼 너도 나처럼 왕따 당할 거야. 그러니까 나한테 오지 마"
그 날의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왕따라니. 그 당시 나는 반 분위기가 너무 좋고 반 친구들도 하나같이 모난 성격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왕따가 있었다니. 어쩌면 그런 비도덕적인 상황 속에서 내가 방관자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다시 불러 함께 운동장으로 가며 대화를 이어갔다.
"넌 왜 네가 왕따라고 생각해? 우리 반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직설적인 내 질문에 그녀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음흉하대. 그래서 같이 있고 싶지 않대"
아. 이 얘기는 그렇게 어색한 얘기는 아니었다. 중학교 때 나는 말 수가 매우 적은 학생이었고, 다행히 따돌림을 당하는 상황은 없었지만 몇몇 솔직한 친구들은 내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혹은 너 좀 음흉한 것 같다고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런 얘길 듣고도 나는 '나 이상한 사람 아니야'를 겉으로 보여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평소처럼 행동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면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싶어 조금은 괴로운 밤을 보낸 적이 몇 번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그 날 이후 나는 우리 반 왕따라고 여겨졌던 그 친구와 항상 같이 점심을 먹었다. 실망스럽게도 그런 나를 이상하게 보는 친구들도 분명 있었다. 그렇게 무더운 여름날이 지나고 춘추복을 꺼내 입을 시기가 되자 그녀와 나, 그리고 우리 반 친구들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정의감이라는 것이 불타오르기도 했고 과거의 내 모습을 하고 있던 친구에 대한 연민도 있었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나는 그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선후배 동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고,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주변 사람들의 업무적인 부탁을 대부분 거절하지 않았다. 처음엔 학교나 가정이 아닌, 회사였기 때문에 더더욱 이런 행동은 내게 더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고, 이런 행동 이후에는 그와 관련된 보상이 있거나 혹은 다음에 내가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할 때 상대방이 기억해 줄 거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생각해보니 주변에서 부탁하는 것들 중 몇몇 부탁은 도와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모호한 적이 많았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내일 당장 필요해서 그러는데 엑셀 데이터 자료 좀 지금 바로 도와줄 수 있어? 이거 제일 최우선이야"
"내가 PPT를 잘 못해서 그러는데 보고하기 좋게 수정해줄 수 있어?"
"우리 팀 대표로 봉사활동 가기로 했는데 내가 갑자기 몸이 좀 안 좋아서, 나 대신 내일 좀 가줄 수 있어?"
(오후 4시경) "내일 오전 대표님 보고가 있는데 자료가 부족해서, 내가 메일로 보낸 것들 좀 더 찾아서 추가해줄 수 있어?"
그리고 어느 날은 이런 부탁도 받았다.
"내가 엑셀을 잘 못하는데 업무 할 때 필요한 수식 정리해서 간단하게 알려줄래?"
"CAGR 구하는 수식은 도대체 왜 이런 거야? 원리가 뭐야?"
의외로 회사에서는 기브 앤 테이크라는 게 별로 없었다. (간혹 있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 없는 게 맞았다.) 그리고 내게 부탁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나보다 연차가 높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었는데 나의 서포트가 하나의 R&R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참고로 우리 팀은 사수-부사수 구조가 아니라 각자의 일을 팀장에게 보고하는 형태로 일을 하고 있다.) 내 도움을 받고 고맙다고 하던 사람들도 어느 날은 내가 바빠서 도와주기 쉽지 않다는 얘길 하자 버럭 화를 내며 회사 일은 다 같이 도와가며 해야지 본인 일만 챙기냐는 소리를 했다. (아니 그래서, 내 일을 도와준 사람은 도대체 누가 있었더라... )
그렇게 회사에서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포기했다. 몇 년 전부터는 내 일이 무조건 최우선이었고, 이런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일부 있지만, 그들은 내가 도와주기 어렵다고 딱 잘라 말하면 나보다 더 어린 친구들에게 가서 똑같은 부탁을 하고 똑같이 역정을 낸다. 좋은 사람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내가 시간을 쏟거나 진정성을 보일 필요가 없다는 걸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회사라는 곳이 모두 다 이런 것은 분명 아니지만, 극단적인 경우를 보자 하면 이렇다는 것이다. (내게 엑셀 수식을 하나하나 알려달라 하고, CAGR 수식의 원리를 묻던 사람에게는 엑셀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사이트 링크를 메일로 보내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었다.)
어린 시절에도 그랬고 연애를 하면서도 그랬고, (후회가 되긴 하지만) 회사에서조차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약간의 욕심과 집착 때문에 의도적으로 선의를 베푼 적이 많았다. 그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던 적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친구는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고, 좋은 행동들을 하고 싶거든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를 위해서 하라고 얘기해줬다. 그렇다. 꼭 누구에게나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걸 수 차례의 실망과 안타까움의 감정을 느낀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내가 가졌던 감정을 '좋은 사람 콤플렉스'라고 부르고 싶진 않다. 결과적으로 나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가치관과 행동을 자연스럽게 쌓아 올렸고, 그렇다 보니 (의도적이지 않고) 실제로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의 말처럼 나 자신이 조금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좀 더 가치 있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위한, 나를 위한 좋은 행동들을 하려 노력하고 있다.
오늘도 나는 나 스스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운동을 하고, 영화를 보고, 중장기 미래를 그려봤다. 내가 나를 변화시키고 성숙해진다면 나는 자연스럽게 이 세상과, 그리고 나와 연결된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겠지. 인간관계가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고 느껴지는 30대 중반, 어릴 때처럼 그냥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 쉬웠을 텐데... 유난히도 생각이 많아진다. 이러다 잠들고 일어나면 괜찮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