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회사 동기 모임 일정이 잡혔다.
사람 만나는 일이 손에 꼽히는 나에게는 엄청난 이벤트나 마찬가지다. 사람을 이렇게까지 안 만나도 괜찮은 건가 싶을 정도로 한동안 내겐 가족과 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나도 처음부터 원래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
젊은 날의 나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고 시끌벅적한 연말 분위기를 최대한 느끼고 싶어 했다. 인기 있다는 맛집은 꼭 찾아가려고 했고 사람들과의 인증샷을 남기고 당시 유행하던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에 기록을 남겨두곤 했다. 잘 마시지 못하는 술을 곧잘 따라 마셨고 잘 꾸미지는 못해도 가지고 있던 가장 예쁜 옷과 가방을 꺼내 그럴듯하게 꾸미고 나가 요즘 당신들과 나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더 재미있는 일은 없을까 판을 크게 만들어 본 적도 있다.
지금의 나는 어떤 자리에 서 있는가.
치열한 하루를 무탈하게 보내는 것이 유일한 목표일 뿐, 내 하루를 근사하게 내세울만한 사진이나 영상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한때는 그럴싸해 보이는 사진을 보정해서 인스타그램에도 올려보았지만 그마저도 식상하고 재미가 없어졌다. 가끔 사람을 만나도 세월의 흐름이 짐작 가는 듯한 내 외모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먼저 사진을 찍자고 제안하는 일은 없다.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묻는 말은 거의 이런 식이다. "요즘 별 일은 없고? 부모님은 건강하시지?" 그리고 그저 상대방과 나의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지곤 한다.
젊은 날의 나는 음악을 듣는 것에 있어서도 꽤 까다로웠다.
대중적인 노랠 듣는 것은 물론, 사람들이 잘 모르는 노래를 찾아듣는게 재미있었고, 나와 취향이 비슷한 친구에게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는 것은 엄청난 즐거움이었다. 당시 재미로 쓰던 블로그에도 나만 아는 노래들을 소소하게 소개하곤 했고, 친구들은 잘 모를 수 있는 라이브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려두며 나와 같이 소름 돋아줄래? 하는 느낌으로 멘트를 적어두곤 했다. 사랑을 시작할 때에도 그리고 사랑이 마무리되었을 때에도 나는 항상 어떤 노래들을 줄지어 세워놓고 내 감정을 노래 속에 살포시 얹어두곤 했었다.
지금의 나는 어떤 노랠 듣는가.
예전부터 항상 듣던 플레이리스트에서 업데이트가 되질 않는다. 여전히 장르는 가리지 않지만 아티스트가 한정적이다. 스펙트럼이 줄어들었고 새로운 노래를 찾는다는 것은 조금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다 보니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신곡을 발표하지 않으면 늘상 같은 노래만 늘 듣게 된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음악을 듣는 행위도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상하게 서글퍼졌다.
그저 지금 내 상황에 맞게 바뀐 것뿐인데 무언가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서 서글프다는 감정이 올라왔나 보다 싶었다.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그리워하는 걸까.
정답은 어제 우연히 보게 된 내 사진첩에서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을 적게 만나고,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지 않는 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10년 전의 나는 사진마다 환하게 웃고 있었다.
혼자 찍은 사진이든, 여럿이 찍은 사진이든 사진 속의 나는 뭔가 밝아보였다.
그렇다면 지금은 불행한가? 그렇지도 않다. 예전보다 더 안정감이 생겼고 경제적으로도 좀 더 탄탄해졌다. 그럼에도 지금의 내 사진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다. 아니 그보다 쓸쓸함을 느낄만한 내 사진조차 몇 장 없었다.
경험은 많이 해보지 않았지만, 그래서 좀 불안하긴 했지만
그 불안함도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음악을 들으면서 웃음으로 커버할 수 있었던 그때의 맑고 가벼운 내 마음가짐이 그리웠던 게 분명하다. 이별 후에 울고,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아 울었지만 다음번엔 더 나아질 거라는 기대도 있었던 그때의 그 마음가짐.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예전 그 시절의 보물이었나 보다.
하지만 컴백한 지드래곤이 이렇게 말했지.
Golden days are still alive.
그래. 지금 이 순간도 10년 후엔 그리워할만한 보물 같은 순간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