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여행

by 쑥쑥맘

2045년 7월 22일


3살, 5살이던 아이들이 어느새 훌쩍 자라 23살, 25살이 되었다. 둘 다 무슨 공부가 그리 좋은지 미국서 공부를 한다고 유학을 떠났다. 비행기로 몇 시간이면 금방 간다지만 미국에 가는 건 아직도 큰맘 먹고 해야 하는 일이기에, 아이들을 보는 건 일 년에 몇 번뿐이다. 이따금 아이들이 어렸을 때가 생각난다. 엄마가 좋다고 엄마한테만 매달려 있던 엄마 껌딱지들. 어렸을 땐 손이 많이 갔었는데... 지금은 손이 가지 않는다. 필요한 건 경제적 보살핌(?) 뿐.

어릴 적 아이들이 그리워 20년 전으로 가보기로 했다.

나는 어디로 왔을까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니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주차장이다. 2025년 7월 22일(왜 하필이면 가장 더울 때로 왔을까?). 핸드폰 메모장에는 내가 해야 할 일이 적혀 있다.


1. 아이들 하원시키기

2. 둘찌 병원 진료 보기

3. 저녁 먹이고, 정리하고 재우기


‘그리 어렵지 않군.’이라고 생각하며 차에서 내려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뵙는 선생님들은 참 반갑다. 오늘 아이들이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이야기해 주신다. 왼손에 둘찌, 오른손에 첫찌의 손을 잡고 차로 향했다. 차에 타서는 언제나 그렇듯 첫찌 둘찌가 좋아하는 뽀로로 영상을 틀었다. (예나 지금이나 뽀로로와 친구들은 참 사랑스럽다.)


핸드폰에서 똑닥 알람이 울렸다. ‘대기번호가 몇 번 남지 않았네. 서둘러야겠군' 차를 운전해 병원으로 향했다. 이제 좌회전만 하면 병원이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데 “삐링” 알림음이 울렸다.

'접수 패널티 1회 누적. **병원 미방문으로 접수 패널티가 누적되었어요. 하루에 3번 페널티를 받으면, 당일 똑닥 접수 예약을 이용할 수 없어요.'

앗. 예약이 취소되었다. 대기 10번이라 한 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 예약했었는데, 대기가 금방 빠졌나 보다.


'병원 주차장에서 다시 예약하고 기다려야겠군. '

신호가 바뀌어서 주차장으로 향했다. 들어가려고 입구를 보니 만차다. 아... 10분 거리에 있는 집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가야 한다. 걸. 어. 서. 말이다.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똑닥으로 예약하고 병원으로 향하려는데… 첫찌가 지금 보는 뽀로로 영상까지만 다 보고 가자고 한다. 사실 나도 뒷이야기가 궁금하긴 하다. 영상을 다 보고 병원으로 가려는데 첫찌가 이번엔 피곤해서 못 걷겠단다. 아… 유모차를 타고 가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왼팔로 둘찌를 안고, 오른팔로는 첫찌를 태운 유모차를 밀고 병원으로 향했다. 더웠다.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은 왜 안 빠지는지 그건 참 의문이다.

둘찌의 감기는 많이 좋아져서 이번 약만 먹고 괜찮으면 병원에 안 와도 된단다. 건물 1층에 있는 약국에서 약을 사고, 집으로 향하려는데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급 땡긴다. 첫찌에게 카페에 들렀다 가자고 하니 다행히(!) 알겠단다. (전에 카페 들렀다 가려고 했는데 커피는 집에서 먹는 거라며 집에 바로 가자고 해서 못 사 먹은 적이 몇 번있다. 내 돈 내산인데 왜 못 먹게 하는 거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직 5살이니까 )

병원 진료를 마치고 집에 오니 벌써 저녁 시간이다. 오전에 만들어뒀던 걸 꺼내 저녁을 차렸다. 훈제오리 볶음밥, 수박, 자두, 삶은 계란. 첫찌와 둘찌 모두 배가 고팠는지 차려준 걸 잘 먹는다. 밥을 먹는 동안 첫찌가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브리핑을 한다. 오늘 누가 결석을 했고, 누가 말썽을 피웠으며, 민주 선생님과는 모음ㅡ까지 배웠으며, 간식으로는 뭘 먹었는지 등의 내용이었다. 첫찌의 이야기가 끝나자 둘찌가 갑자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삐약삐약 병아리, 음메음메 송아지~” 여기에 깜찍한 율동도 곁들여진다. 첫찌도 같이 부르고, 나도 같이 부르고 어쩌다 보니 합창이 되었다.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정리를 했다. 그릇을 대충 헹궈 식기세척기에 넣고 어린이집에 가져갔던 수저랑 물통을 씻었다. 거실 쪽을 보니 아이 둘이서 잘 놀고 있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주방에만 가도 따라와서 매달렸는데 둘이서 잘 노는 걸 보니 신기하기도 하고 언제 저렇게 컸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자는 시간. 드디어 쉴 수 있는 건가? 휴~ 잠자리에 누웠는데, 첫찌가 계속 쫑알쫑알 이야기를 한다. 첫찌가 말문이 처음 트였을 때, 아빠를 닮아서 과묵한 아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키우면서 보니 날 더 많이 닮았다. 말이 많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방귀는 여기에서 뀌어야 해”

“여기 강아지가 물에 빠졌어요, 누가 좀 도와주세요.”

여러 가지 상황극과 구연동화를 오가며 이야기를 한다. 나도 같이 맞장구를 치며 열연을 한다. 한참을 그러다 조용해서 보니 잠이 들었다. 이제 진짜 쉴 수 있는 건가? 아빠 옆에 누워있던 둘찌가 갑자기 벌떡 일어난다. 아빠 이불 덮어주고, 오빠 이불 덮어주고, 오빠 잘 자라고 토닥토닥해 준다.

'이 친구는 대체 언제 자는 거지?'

“애기야 자자.”라고 눕히니 눈을 말똥이며 뒹굴거린다. 그러다 "엄마 타랑해. 아빠 타랑해, 오빠 타랑해"라고 외친다. 둘찌의 느닷없는, 갑작스러운 사랑 고백에 마음이 몽글몽글해진다.


TMI: 육아가 힘겹게 느껴질 때면 가끔 상상하곤 한다. 나는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고. 이제는 다 커버린 아이들이 그리워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거라고. 그러면 안 힘든 건 아니고... (힘든 건 힘든 거니까) 조금 애틋해진다. 금방 지나가 버릴 이 시간이, 내 품에 파고드는 아이들이.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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