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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미석 Sep 29. 2015

돈 쓰는 법.

 푸거라이(Fuggerei).

0 황제의 도시


 아우크스부르크(Augsburg)는 기품이 넘치는 도시이다. 끝 모를 부를 추구했던 옛사람이 남긴 것은 독일에선 보기 드문,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는 우아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들이다. 도시의 역사는 2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 전 15년, 로마 군단의 주둔지로서 도시의 역사가 시작됐다. 도시의 이름은 당시 로마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Augustus, BC 63 ~ AD 14)에서 유래한다. 도시의 중심인 시청사 앞에는 아우구스투스 동상이 정중앙에 놓인 ‘아우구스투스 분수’가 있다. 시청 광장에서부터 일자로 곧게 뻗은 막시밀리안 거리(Maximilian straße)는 아우크스부르크 구시가의 중심 거리이다.

 며칠 동안 흐리고 비 내리는 날씨에 우울했기에 맑은 날 산책이 그 어느 때보다 즐거웠다. 오늘 같은 날은 가능하면 미술관, 박물관은 둘러보지 않으려 했건만... 역시나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나보다. 간단하게 뮤지엄숍만 둘러보고 나오려던 다짐은 우연히 보게 된 엽서 한 장 때문에 완벽하게 무너져 내렸다. 막시밀리안 거리에 위치한 새츨러 궁전(Schaezlerpalais)은 궁전이라고는 하지만 귀족의 저택이었던 곳이다. 입구가 있는 정면만 보면 그리 넓어 보이지 않는데 그 뒤편으로 100미터가 넘는 긴 건물이 있다니 궁전이란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궁전의 방들을 빠르게 지나 다다른 곳은 옛 거장의 갤러리(Staatsgalerie Alte Meister)라는 이름의 회화관이다. 전시실의 가장 좋은 자리에 방금 전 보았던 엽서의 실물이 걸려있다.


뒤러, 야코프 푸거의 초상, 1518/19


 바로 알브레히트 뒤러가 그린 ‘야코프 푸거의 초상’(1518/19)이다. 독일뿐만 아니라 전 유럽을 쥐고 흔들던 대부호 푸거 가문의 수장이라기엔 차림새가 수수하기만 하다. 검은색 망토 위에 자줏빛 숄을 걸쳤고 불필요한 장신구라고는 하나 없다. 아마도 이 그림은 뒤러가 자신의 고향 뉘른베르크의 대표단에 소속되어 아우크스부르크 제국 회의에 갔을 때 그린 것이리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손에 넣었던 냉철한 상인을 화가는 담백하게 표현해냈다.     


1 월세 88센트



 이 그림이 그려지고 나서 3년 후, 야코프 푸거(Jakob Fugger, 1459 ~ 1525)는 아우크스부르크에 세계 최초의 빈민 구제시설인 푸거라이를 만들었다. 푸거 가문의 이미 당대 최고의 부자였지만 야코프 푸거의 대(代)에서 그 부는 절정에 다다랐다. 그의 개인 재산과 기업 가치는 당시 신성 로마제국 국민소득의 10%에 달했다고 했을 정도이니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부자이자 거상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냉철한 사업가였다.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들에게 막대한 정치 자금을 대주며 은 광산, 구리 광산 등을 독점했고 가톨릭교회 주교들의 자금을 운용해 수익을 내주기도 했다. 주교들의 자금에는 면죄부 판매와 관계된 금액도 포함되어 있었다. 루터는 야코프 푸거를 ‘도둑이나 강도보다 더 지독하다.’고 혹평했지만 뒤러는 ‘냉정하고 과묵한 사업가’로 칭송했다. 그런 그가 만든 푸거라이는 500년 전의 부의 사회 환원이자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잘 쓰기’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푸거라이의 입주 조건은 까다롭지 않다. 아우크스부르크에 사는 가톨릭 신자 중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 일 것. 매일 주기도문을 외우고 푸거 가문과 재단을 위해 하루에 세 번 기도를 할 것. 단 두 가지뿐이다. 월세는 당시 화폐로 1라인 굴덴(Rheinische Gulden)이고 500년간 변함없어 현재는 0.88유로이다. 이 정도 월세라면 단칸방 한 칸도 고마울 지경인데 입주자들은 방 3개의 아파트를 제공받는다. 67개의 건물에 총 140개의 아파트가 있고 지금도 약 150여 명의 사람이 푸거라이에서 생활하고 있다.



 현재 푸거라이는 일반인에게도 개방되어 있는데 입장료 수입은 전액 단지 관리에 사용된다고 한다. 건물들 중 일반인에게 개방된 공간은 푸거라이의 역사를 보여주는 박물관, 현재 생활상을 보여주는 쇼룸, 2차 세계대전 당시 푸거라이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방공호 박물관 등이다.

 요새야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재산을 기부하고 소외된 이들을 돕는 것이 당연시되고 있지만 사회 복지라는 단어조차 없었을 500년 전에 만들어진 푸거라이는 가히 획기적인 시설이라고 할 만하다. 평생 돈벌이에 매진해온, 면죄부를 판매해 벌어들인 돈도 아랑곳 않았던 사업가였지만 늘 마음이 무거웠는지도 모른다. 야코프 푸거에게는 푸거라이가 일종의 면죄부였다. 개인적 속죄의 방편이든 아니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그 면죄부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니 야코프 푸거의 투자는 성공한 셈이다.




푸거라이     


개장 시간 : 8:00 ~ 20:00(4월 ~ 9월), 9:00 ~ 18:00(10월 ~ 3월)  

입장료 : 4유로     


새츨러 궁전     


개관 시간 : 화 ~ 일 10:00 ~ 17:00, 월요일 휴관

입장료 : 7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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