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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미석 Sep 29. 2015

시선.

알테 피나코테크(Alte Pinakothek).

0 따뜻한 시선_1


 남루한 차림의 아이들이 길에서 과일을 팔고, 공기놀이를 하며, 딱딱한 빵을 먹는다. 전혀 그림이 될 것 같지 않은 장면들이 무리요(Bartolomé Esteban Murillo, 1617 ~ 1682)의 손에서는 예술이 된다. 무리요의 시선은 따뜻하다. 스페인 세비야에서 태어난 화가는 아홉 살에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되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일까. 무리요는 유독 거리의 아이들을 많이 그렸다. 무리요의 아이들은 남루한 차림새를 하고 있지만 지저분하지 않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다. 보통은 친구들, 때로는 할머니, 반려견과 함께이기에 외롭지 않다. 화폭 속 그들은 참 행복해 보인다.


공사 중인 알테 피나코테크.


 드디어 뮌헨(München)이다. 독일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이자 옥토버페스트와 FC 바이에른 뮌헨, BMW의 고향! 잘 사는 대도시 인만큼 뮌헨에는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몇몇 미술관은 매주 일요일에 단 돈 1유로면 들어갈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구 회화관’이라는 뜻을 가진 알테 피나코테크. 뮌헨에 도착하자마자 짐은 던져 놓다시피 하고 서둘러 미술관들이 모여 있는 지구로 발길을 옮겼다. 그런데 아뿔싸. 또 다시 ‘가는 날이 장날’인 상황이 발생했다. 2014년에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전시실이 폐쇄됐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리하여 알테 피나코테크 역시 함부르크 미술관처럼 폐쇄중인 전시실에 있는 대표 작품들을 따로 모아 전시하고 있었다.(아직 공사에 들어가지 않은 전시실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관람할 수 있다.)


무리요, 포도와 멜론을 먹는 아이들, 1645/46
무리요, 과일 파는 아이들, 1670/75


 속상한 마음으로 기획전이 열리는 전시실에 들어섰고 어두운 조명 아래서 반짝반짝 빛나는 무리요의 아이들을 본 순간 마음이 완벽하게 풀어졌다. 무리요는 생전에 이미 재능을 인정받은 성공한 화가였지만 가정사의 질곡이 참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고아로 어린 시절을 외롭게 보냈기 때문인지 자녀를 9명이나 두었는데 그 중 6명을 앞세웠고 부인 역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화가는 개인적인 슬픔을 종교로 극복하고 예술로 승화시켰다. 무리요는 세속화뿐만 아니라 종교화도 참 많이 그렸는데 그의 종교화는 경건하고 엄숙하기 보다는 소박하고 다정하다. 바로 그것이 종교 본연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듯이... 무리요는 그림을 그리면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특히나 어른들의 상황에 휩쓸려 원치 않는 곤경에 빠진 어린이들이 그걸 이겨내고 행복해지기를. 하지만 무리요의 시대부터 300년이 넘게 지난 오늘날에도 많은 아이들이 질병, 굶주림, 전쟁으로 인한 공포 등으로 고통 받고 있다. 과연 우리는 그때보다 발전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일까. 그림 속 따뜻한 세상과는 너무도 다른 현실에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1 따뜻한 시선_2     


 무리요만큼 피사체를 따뜻하게 바라보는 화가가 또 한 명 있다. 로비의 특별전을 지나 1층(우리나라 건물의 2층)의 상설전시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탈리아 화가들의 작품을 모아놓은 방에선 그야말로 눈이 휘둥그레 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미술관 중 라인업이 가장 화려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필리포 리피 등 이탈리아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대가들의 작품이 한데 모여 있다. 그들의 작품은 모두 성모자(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그린 그림이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것은 역시나 라파엘로(Raffaello Sanzio, 1483 ~ 1520)의 성모자상이다.


라파엘로, 텐다의 성모, 1512(출처 : http://www.wikiart.org/)
라파엘로, 템피의 성모, 1508(출처 : http://www.wikiart.org/)


 라파엘로의 재능은 이미 20대 때 만개하였고 대표작인 아테네 학당(1510/11, 바티칸 박물관 ‘서명의 방’)은 스물일곱에 완성한 작품이다. 서른일곱의 나이로 요절하기 전까지 라파엘로는 부지런하게 작품 활동을 했다. 유명한 작품은 하나하나 손에 꼽기도 힘들만큼 많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의 성모자상이다. 그는 유난히 성모자상을 많이 그린 화가이기도 하다. 교황의 후원을 받는 몸이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까 싶기도 하지만(라파엘로의 사생활을 보면 그는 그다지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 아니었을 것 같기에.) 그의 성모자상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는 참으로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떤 화가들은 아기 예수임에도 불구하고 어른의 몸(예를 들어 8등신)으로 그리고 표정도 근엄하게 표현하고 하는데 라파엘로의 아기 예수는 정말 아기다. 귀여운 얼굴에 통통한 몸으로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엄마 품에 폭 안겨 있는 아기는 천사같이 사랑스럽다. 그런 아기를 한없이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는 그녀가 성모라서가 아니라 그냥 젊은 엄마로서 아름답다.

 소박한 무리요와 화려한 라파엘로는 전혀 닮지 않았지만 한 가지 공통의 체험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어릴 때 부모님을 여의고 고아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라파엘로는 엄청난 여성 편력을 자랑하는데 그게 애정결핍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성모자상을 그리는 일은 그에게 있어 어머니를 추억하는 일이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상상해 본다.


2 나의 시선   


 독일에 있는 미술관에서 스페인, 이탈리아 화가의 작품에만 감동을 받는다는 것은 독일 화가들에게 미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여행 전까지만 해도 독일 회화를 접할 일이 거의 없었고 이번 여행을 통해 하나 하나 알아가는 중이라고 하면 조금의 면피는 될까.

 작년에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등신대 크기에 가까운 아담과 이브의 그림을 봤다. 올 누드에 가까운 그림을 등신대로 봤을 때의 충격은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화가는 북유럽 르네상스의 거장이라 일컬어지는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 1471 ~ 1528). 여행 전까지만 해도 내가 아는 유일한 독일 화가가 바로 그였다.


알브레히트 뒤러,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 1500


 뒤러는 자화상을 참 많이 남겼는데 최초로 ‘최연소 자화상’, ‘단독 자화상’을 남긴 화가이기도 하다. 그의 자화상 중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 바로 알테 피나코테크에 있다. 자기 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의 작품이면 좀 더 눈에 띄게 전시해 놓을 법도 한데 원칙에 철저한 독일답게 뒤러의 자화상도 수많은 독일 화가의 작품들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다만 그의 자화상 앞에는 이미 사람이 몰려 있었다. 뒤러가 28세에 그린 자화상은 한때 예수를 그린 것 아니냐는 오해를 살 정도로 예수의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했다. 또렷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눈,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모피의 앞섶에 놓인 긴 손가락은 우아하다. 새까만 배경은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관람객들 모두 뒤러와 정면에서 눈을 마주치고 싶어 했다. 한명, 한명 돌아가면서 그림 정면에 섰다가 뒤로 물러섰다. 모두들 다른 작품 앞에서보다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 서서 한참을 바라보다 작품 앞에 놓인 소파에 앉았다. 한창 잘 나가는 젊은 예술가는 본인을 ‘또 하나의 창조주’라고 여겼던 것만 같다. 참으로 불경하기 짝이 없다고? 아마 뒤러가 중세 시대 사람이었다면 이런 그림을 그리기도 전에 돌팔매질을 당했겠지만 정말 다행히도 그는 차가운 북유럽에 르네상스의 훈풍을 불게 한 화가였다. ‘모피 코트를 입은 자화상’(1500)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나, 뉘른베르크의 알브레히트 뒤러는 28세에 지울 수 없는 색으로 나를 그렸다.’

 이 말은 21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독일 미술의 아버지’이자 내가 가장 사랑하는 독일 화가 뒤러에게 경배를!      




알테 피나코테크     


개관 시간 : 화 ~ 일 10:00 ~ 18:00(화 ~20:00), 월요일 휴관

입장료 : 4유로, 일요일 1유로

비고 : 리모델링 공사 관계로 2017년까지 일부 전시실 폐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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