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미석 Sep 30. 2015

사람, 사람들.

노이에 피나코테크(Neue Pinakothek)_1

0 모두에게 그림을 허하라.


노이에 피나코테크.


 도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 우선 이런 호사를 누리게 해준 사람에게 감사부터 해야겠다. 알테 피나코테크를 둘러본 후 길 건너 노이에 피나코테크로 넘어왔다. 입장료가 1유로인 일요일을 충분히 활용하고자 무리하게 일정을 짰지만 하루에 이 두 곳을 둘러본다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특히나 뇌에서 메모리가 딸린다고 아우성이다. 관람을 끝내자마자 초콜릿과 커피를 섭취해야 겠다.

 알테 피나코테크와 노이에 피나코테크, 그리고 두 미술관 근처의 글륍토테크(Glyptothek, 조각품 위주)까지 이 방대한 컬렉션을 모으고 미술관을 만들어 모두에게 개방한 사람은 바로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1세(Ludwig I, 1786 ~ 1868)이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미술관, 박물관 역시 매우 훌륭했다. 하지만 상인, 은행가, 일개 귀족의 소장품의 수준과 왕가의 그것은 그 규모부터가 달랐다. 이 정도의 작품을 독점할 수 있다면 왕으로 한 번 태어나 볼일이지 않은가.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소수가 독점했던 예술작품을 만인에게 개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던 19세기 초반. 국민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 싶었던 루트비히 1세 역시 비텔스바하가(Wittelsbach家)의 소장품을 국민에게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1836년, 알테 피나코테크가 먼저 완성되었고 글륍토테크, 노이에 피나코테크 순으로 개방되었다. 알테 피나코테크는 14세기 ~ 18세기까지의 작품을 전시하고 노이에 피나코테크는 ‘신회화관’인 만큼 루트비히 1세 당시의 작품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알테 피나코테크 오른편에 피나코테크 데어 모데르네(Pinakothek der Moderne, 현대 미술관)가 2002년 개관했다. 세 개의 미술관을 모두 본다면 중세시대부터 현대까지의 작품을 모두 섭렵할 수 있는 셈이다. 이 모든 것이 루트비히 1세의 결단으로부터 시작됐다.


요세프 슈틸러, 대관식 복장을 한 루트비히 1세, 1826


 노이에 피나코테크에는 루트비히 1세의 대형 초상화가 있다. 바이에른 왕국의 궁전 화가였던 요세프 슈틸러(Joseph Karl Stieler, 1781 ~ 1858)의 1826년 작이다. 노이에 피나코테크의 소장품이 너무 방대해서 우리나라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화가, 어디에나 있을법한 왕의 그림은 그냥 지나치기가 쉽다. 하지만 미술관의 역사를 알고 간다면 그가 결코 평범한 왕으로 보이진 않을 것이다. 너무나도 화려한 차림(대관식 복장이라 더욱더.)을 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표정의(그림이 높이 걸려 있어 더욱더.)의 잘생긴 이 남자에게 진심에서 우러나온 감사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1 화려한 여인들.


프랑수아 부셰,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 1756


 왕 이야기를 했으니 왕의 여자 이야기를 한 번 해볼까? 노이에 피나코테크에서 가장 밀고 있는 작품, 엽서뿐만 아니라 포스터, 노트, 마그넷 등등에 활용되는 작품, 입장하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작품이 바로 로코코 시대의 프랑스를 대표하는 화가 프랑수아 부셰(François Boucher, 1703 ~ 1770)의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Bild

nis der Madame Pompadour/ Portrait of Madame Pompadour, 1756)이다. 부셰가 작품 활동을 했던 시기는 루이 15세의 재위 기간과 거의 일치하고 퐁파두르 부인은 루이 15세의 정부였다. 많은 화가들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았는데 부셰는 특히 그녀의 그림을 많이 남겼다. 세로 길이 2미터가 넘는 그림은 화려함으로 관람객을 압도한다. 리본과 장미로 장식된 풍성한 민트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쿠션에 몸을 기대고 있다.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할 만한 외모를 가진 여인이다. 사극의 영향인지 왕의 정부라 한다면 얼굴은 예쁘지만 교양이 부족하고 질투가 심한 여자란 인상이 강했는데 퐁파두르 부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부인의 손에는 책이 들려 있고 뒤에는 책꽂이가 놓여 있으며 발밑에는 악보와 습작으로 보이는 그림 몇 점, 쿠션 옆 서랍장에는 깃털 펜과 또 몇 권의 책이 있다. 부셰는 이 한 폭의 그림에 부인의 모든 재능을 담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예술적 재능이 뛰어났으며 매우 총명한 소녀였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그녀의 사치스런 생활이 프랑스 국고 탕진에 가속도를 붙였다고도 혹평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죽는 날까지 국왕의 친구이자 연인으로 자신의 임무에 충실했다고 한다. 그리고 또한 많은 예술가들의 뮤즈가 되어 후세에까지 그 미모를 칭송받고 있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성공한 인생 아닐까?


장 에티엔 리오타르, 아침식사, 1753


'아침식사' 부분 확대


 노이에 피나코테크에는 부셰의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외에도 당시 상류 사회 여성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그림이 몇 점 더 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한 점은 스위스 화가 장 에티엔 리오타르(Jean-Étienne Liotard, 1702 ~ 1789)의 ‘아침식사’(Das Frühstück/ Breakfast, 1753). 리오타르는 파스텔의 거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퐁파두르 부인과 똑같은 색의 드레스지만 확실히 좀 더 가볍고 부드러운 느낌이다. 그림 속 아가씨는 무릎에 담요를 덮고 있고 이미 곱게 단장을 끝마쳤다. 시녀가 들고 온 쟁반에는 물과 우아한 잔이 놓여 있는데 과연 내용물은 무엇일까. 초콜릿과 여자를 함께 그리기 좋아했던 리오타르였기에 그 잔에 들어있는 음료도 핫 초콜릿일거라 추측해본다. 달콤한 핫 초콜릿으로 시작하는 하루를 생각하니 녹아버릴 듯 기분이 말랑말랑해졌다. 시녀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내게도 매일 아침 핫 초콜릿을 만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2 강한 여인.


아우구스트 리델(August Riedel), 유디트, 1840


 우아한 여인들의 초상을 뒤로 하고 날카로운 눈매에 장검을 손에 쥔 여걸 앞으로 발길을 옮겼다. 굳이 그림의 제목을 보지 않아도 누군지 알 수 있다. 언뜻 보면 미역 다발 같기도 한 것이 여인의 왼손에 들려 있는데 그건 바로 홀로페르네스(Holopherne)의 목이다. 여인의 이름은 유디트(Judith). 홀로페르네스는 유대 지방을 점령하기 위해 유디트가 사는 베툴리아를 포위하였다. 아름답고 총명했던 유디트는 시녀와 함께 단 둘이 적진에 뛰어들어 홀로페르네스의 환심을 산 후 깊이 밤 만취해 잠든 그를 죽이는데 성공한다. 이스라엘 판 논개라고나 할까. 보티첼리, 카라바조, 크라나흐, 클림트 등 많은 예술가들이 남자보다 더 용감하고 강단이 있는 이 여성 영웅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되살려냈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에 있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953 ~ 1652)의 ‘홀로페르네스의 머리를 베는 유디트’(1612/13)이다. 젠틸레스키는 그 당시 유일하게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여성 예술가였다. 그래서인지 그의 유디트는 남성 예술가들의 유디트보다 훨씬 능동적이고 강인한 모습이다. 노이에 피나코테크의 유디트는 모든 일을 다 처리하고 난 뒤 적장의 목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그녀의 표정에서는 일말의 두려움도 찾을 수가 없다. 과거 남성 화가들의 그림과 비교해 봤을 때, 이 그림은 젠틸레스키의 그림과 더 닮아 있다. 젠틸레스키의 시대보다 200년이나 지난 시대에 그려진 유디트는 그 사이에 높아진 여성의 지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일까?  

매거진의 이전글 시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