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에 피나코테크(Neue Pinakothek)_2
책 읽는 사람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차림새는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하고, 방은 소박하지만 깔끔하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책이 한 권 들려있다. 이미 눈이 침침한 탓일까. 어쩐지 실눈을 뜨고 책을 읽고 있는 것만 같다. 그림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하다. 아니 경건하기까지 하다. 그녀는 지금 무슨 책을 읽고 있는 것일까. 그림의 제목은 ‘가정예배’(Hausandacht I um/ Domestic Devotions, 1888/91), 독일 화가 아돌프 횔첼(Adolf Hölzel, 1853 ~ 1934)의 작품이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뿐이다. 그녀가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성경일 것이다. 실눈을 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예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 일수도 있다. 종교적 목적이 됐든, 배움이 목적이 됐든, 단순히 재미를 얻기 위해서든 나이가 들어서도 책을 손에 놓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왕후장상에게만 기품이 있는 것은 아니다. 소박한 삶을 살고 있는 이 여인에게서도 충분히 기품이 느껴진다.
이번에 조금 우스꽝스러운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좀 전에 봤던 할머니의 방과는 전혀 다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가득한 방. 천장의 모양을 봤을 때 지붕 바로 아래의 다락방이다. 침대 위에는 활짝 펼쳐진 우산이 매달려 있고 목이 긴 신발은 한 짝 뿐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종이 뭉치가 있는가 하면 그 와중에 침대 옆에 두꺼운 책들과 잉크병이 놓여 있다. 자세히 보면 할아버지는 안경을 쓰고 있고 입에는 깃털 펜을 물고 있다. 노인의 옷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팔꿈치 부분은 너덜너덜 해졌지만 옷깃의 모양이며 레이스며 귀족의 차림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독일의 화가 카를 슈피츠베크(Carl Spitzweg, 1808 ~ 1885)의 ‘가난한 시인’(Der arme Poet/ The Poor Poet, 1839)이다. 카를 슈피츠베크는 바로 이 곳, 뮌헨에서 태어났다. 원래는 약제사였다가 화가로 직업을 바꾼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풍속화를 주로 그렸다. 그는 외부 출입을 삼간 채 홀로 다락방에 기거하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고 하는데 이 그림은 어쩌면 슈피츠베크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림 속 노인을 화가 본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분명 행복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문득 그에게 한 마디 충고를 하고 싶어졌다.
‘그런데, 슈피츠베크씨. 이제 그만 한 글자라도 써야 하지 않겠어요?’
노이에 피나코테크가 만들어질 당시 유행하던 ‘그랜드 투어’의 영향인지 노이에 피나코테크에는 이탈리아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 유독 많다. 유럽의 도시들은 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에 이탈리아를 그린 그림을 볼 때마다 내가 방문했던 곳이라면 바로 어딘지 떠올릴 수 있었다. 밀라노의 성 암브로지오 성당, 아래에서 올려다 본 아씨시의 풍경, 나폴리 만의 프로치다 섬, 로마 근교 티볼리의 폭포 등...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아름다운 곳들은 예술가들의 눈에도 아름답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 와중에 아주 재미난 작품을 하나 발견했다.
그림의 제목은 ‘이탈리아와 게르마니아’(Italia und Germania/ Italia and Germania, 1828)로 작가는 독일의 거의 북쪽 끝 뤼베크에서 태어나 로마에서 50여년을 산 프리드리히 오버베크(Johann Friedrich Overbeck, 1789 ~ 1869)이다. 그는 자신의 모국인 독일만큼 이탈리아를 사랑했다. 그래서 자신이 사랑하는 두 나라를 의인화해 사이좋은 친구로 묘사했다. 찰랑찰랑한 금발을 어깨에 늘어뜨린 여인이 게르마니아, 즉 독일이다. 그녀 뒤편으로는 뾰족뾰족한 고딕 성당의 첨탑이 보인다. 갈색 머리카락을 곱게 땋아 올린 여인은 이탈리아이다. 그녀의 뒤편으로 보이는 건물은 이탈리아의 소박한 성당을 떠올리게 한다. 건물 뒤편으로 산이 끝없이 이어져 있는데 아마도 두 나라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알프스 산맥일 것이다. 이탈리아 쪽 산 앞에는 호수와 성채가 보이는데 이는 분명 이탈리아 북부의 가르다 호수의 모습이다. 어떤 이는 고민에 빠진 이탈리아가 현명한 게르마니아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이탈리아보다 게르마니아가 우위에 있고 동등한 관계가 아니라고 이 작품을 해석하기도 한다. 화가의 고향이 독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하지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작품 활동을 위해서 라고는 하지만 화가는 이탈리아에서 자그마치 60년 가까이 살았다. 동료들이 하나 둘 떠난 이후에도 그는 로마에 남았고 결국 그 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수많은 예술가들을 유혹했던 200년 전 이탈리아는 어땠을까 상상해봤다. 무솔리니가 무식하게도 로마 시대 황제들의 포룸을 두 동강 내 아스팔트 밑으로 묻어버리고 만든 포리 임페리알리 거리도 없었을테고, 곳곳에서 하이에나처럼 여행자를 노리는 소매치기도, 스페인 광장 앞에 맥도날드도 없었을 그 시절. 그 당시 이탈리아는 얼마나 더 매력적이었을까! 만약 내가 200년 전 독일인이었대도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것만 같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노이에 피나코테크
개관 시간 : 수 ~ 월 10:00 ~ 18:00(수 ~20:00), 화요일 휴관
입장료 : 7유로, 일요일 1유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