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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미석 Dec 31. 2015

위대한 자연과 유쾌한 인간.

나의 푸른 동굴 수집기 2.

 생각해 보니 내가 갖고 있는 카프리 섬의 이미지란 2천 년 전 어디쯤에 멈춰 있다. 로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카프리 섬보다 세배나 넓고 온천까지 있는 이스키아(Ischia)섬을 주민들에게 주고 카프리 섬을 황제의 사유지로 지정했다. 2대 황제 티베리우스는 카프리 섬에 최고신 쥬피터의 이름을 딴 ‘빌라 요비스’(Villa Jobis)라는 저택을 지어놓고 말년엔 그 곳에 은거한 채 원격조종으로 제국을 통치했다. 2천 년 전에 멈춰있든 아니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카프리 섬은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것은 진위를 따질 수 있는 역사적 ‘사실(史實)’과는 다른 엄연한 ‘사실(事實)’이다. 

 재작년에 이어 두 번째 방문하는 카프리 섬. 8시간 야간열차를 타고 시칠리아 섬에서 이탈리아 반도로 넘어왔던 내 지친 몸을 어루만져주었던 그 카프리 섬은 여전했다. 여전히 아름답고 사람이 많았고 물가가 비쌌다. 두 번째 카프리 행의 목표는 분명했다. 지난번에 오후 늦은 시간에 섬에 들어갔기에 보지 못했던 푸른 동굴(Grotta Azzurra), 이번에는 볼 수 있을까. 

카프리 마리나 그란데 항구.

 나폴리의 몰로 베베렐로에서 쾌속선을 타면 한 시간이 채 안되어 카프리 섬의 마리나 그란데에 도착한다. 푸른 동굴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기에 오전 10시가 안되어 섬에 닿을 수 있었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고 바람도 불지 않아 바다는 마치 호수인 냥 고요했다. 시끄러운 것은 사람뿐! 쾌속선에서 내려 땅을 발을 대자마자 호객꾼들이 요란법석을 떨면서 몰려왔다. 파란색과 하얀색이 섞인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유쾌하게 말을 거는 바다 사나이의 이야기를 못 이기는 척 웃으며 들어줬는데 어라? 나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이었다. 혼자서 푸른 동굴에 가려면 카프리 섬의 가파른 절벽 길을 굽이굽이 따라 올라갔다가 다시 바닷가로 내려오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유람선으로 섬을 한 바퀴 돌면서 푸른 동굴에 잠시 정차했다가 동굴을 구경 후에 다시 같은 유람선으로 마리나 그란데까지 돌아오는 투어가 17유로. 푸른 동굴 입장료 13유로와 거룻배 사공의 팁은 별도. 그 자리에서 바로 거래 성립. 표를 사들고 급한 마음에 유람선까지 한달음에 뛰어가려는 내 손을 붙잡고 유람선까지 친절하게 에스코트해주는 직원. 이탈리아 남자는 정말 못 말린다고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유람선이 출발하는 그 순간부터 내내 탑승객들의 탄성이 끊이지 않았다. 왜 로마 황제가 이 섬을 그리고 사랑했는지, 왜 전 세계 부호들이 이 섬에 별장을 갖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 것만 같았다. 유명인의 별장이나 기암괴석을 지날 때면 선내 안내방송이 이탈리아어와 영어로 나왔지만 잘 들리지도 않았고 아무도 듣지 않았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 시시콜콜한 설명 따위 필요 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푸른 동굴 앞의 멋진 뱃사공들.

 30여분을 달려 드디어 푸른 동굴 앞. 하얀 셔츠를 깔끔하게 차려입은 뱃사공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푸른 동굴로 들어갈 수 있는 나무로 된 작은 보트에는 네 명까지 탈 수 있다. 유람선을 타고 온 사람들 중에서 네 명이 한 그룹을 먼저 만든 사람 순으로 보트에 올라타 동굴로 들어갔다. 혼자 어찌할 바 몰라 쭈뼛대고 있으려니 한 사공 아저씨가 내 몸을 들 듯이 먼저 보트에 태워주고 일행을 맞춰주었다. 아마 나를 일본인이라고 생각했나보다. 나머지 세 명의 승객은 일본인이었고 사공 아저씨는 유창한 일본어로 팁을 많이 주면 동굴 안에 더 오랜 시간 머물다 나오겠다고 이야기했다. 미리 말을 하니 오히려 귀엽다고 해야 할까, 다들 큰 소리로 웃으며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화답했다.

비현실적인 푸른색.

 크로아티아 비스 섬에 있는 푸른 동굴과 마찬가지로 입구가 매우 좁아 상체를 완전히 눕힌 채로 들어갔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사방을 둘러보며 눈을 비빌 수밖에 없었다. 비현실적인 파란색이 동굴 전체를 물들이고 있다. 동굴 내부는 생각보다 넓어 서너 대의 거룻배가 머물러도 넉넉했다. 사공들이 돌아가며 노래를 불러주는 것도 크로아티아에서라면 있을 수 없는 일. 친절하지만 무뚝뚝한 동유럽 사람들과 이탈리아 인들의 차이랄까. 건너에서 ‘산타 루치아~’가 끝나면 저쪽에서 ‘돌아오라 소렌토여~’가 시작되고 이쪽에선 ‘오, 솔레미오~’를 준비 중이다. 본인의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노를 튀겨가며 물장난을 치던 우리 배의 사공 아저씨는 멋들어지게 ‘오, 솔레미오’를 불렀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앙코르! 세 명의 사공 중 처음 나온 앙코르 요청에 기분이 좋아졌는지 노로 장단까지 맞춰가며 ‘푸니쿨리 푸니쿨라’를 열창. 소리의 울림이 좋은 동굴 안은 아저씨에겐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 못지않은 최고의 무대이리라. Bravo! 


 바닷물은 태양빛을 받아 동굴 전체를 파란색으로 물들이고 그 파란색이 다시 바닷물에 비친다. 물 한 방울이 톡, 천장에서 떨어지면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이 보일 정도로 투명한 그 바닷물에. 자연이 이뤄낸 경이와 인간의 유쾌함이 더해진 곳, 카프리 섬의 푸른 동굴은 바로 그런 곳이었다. 




푸른 동굴 여행 정보


 - 찾아가는 길

 나폴리의 몰로 베베렐로 항구, 소렌토, 포지타노 등에서 카프리 섬의 마리나 그란데 항구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카프리 섬의 푸른 동굴에는 개인적으로도 찾아갈 수 있지만 마리나 그란데에서 출발하는 유람선 투어를 추천한다. 유람선 탑승 시간에 따라 투어 가격은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20유로 안팎. 유람선을 타고 푸른 동굴 앞에 도착하면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거룻배로 갈아타야 한다. 동굴 입장료는 투어 금액과는 별도 13유로.       


- 둘러보기

 늦어도 오전 11시에는 카프리 섬의 마리나 그란데 도착해야 푸른 동굴이 가장 아름다운 때에 들어갈 수 있다. 날이 흐리거나 파도가 높으면 동굴에 들어갈 수 없고 여름에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다. 봄이나 가을엔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은 낮아지지만 찾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내부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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