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미석 Dec 13. 2015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나의 푸른 동굴 수집기 1.

 어릴 때부터 파란색이 좋았다. 여자 아이는 분홍, 남자 아이는 파랑이 당연하던 유치원 시절, 남동생의 파란색 소품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생각해보니 태어나서 처음 탔던 비행기의 기체 색깔도 파란색이었다. 나이가 들었어도 파란색 사랑은 여전하여 옷장의 70%는 파란색 옷이고,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르네 마그리트와 마르크 샤갈이다.

 파란색을 좋아하니 하늘과 바다를 사랑하지 않을 리 없다. 크로아티아는 파란색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그야말로 딱 맞는 여행지이다. 하늘과 바다의 파랑이 시시각각 변하고 속이 탁 트이게 맑다.


 기다리고 기다렸던 날이 왔다. 푸른 동굴(Modra špilja)을 보러 가는 날. 사실 푸른 동굴이 크로아티아에만 있는 건 아니다. 이탈리아 카프리 섬이 제일 유명하고, 그리스와 터키에도 있다. 앞으로 차근차근 다 가볼 예정이고 그 첫 타자가 바로 크로아티아 비스 섬의 푸른 동굴이다. 푸른 동굴을 보러 가기 위해서 여행 중 처음으로 단체 투어를 이용하기로 했다. 원래는 비스 섬에 묵으며 개인적으로 다녀올 예정이었으나 로빈에서 만났던 카메이 씨 부부가 스플리트의 여행사를 추천해주셨다. 안 그래도 비스 섬의 숙소 때문에 고민이었는데 망설일 것 없었다. 스플리트에 도착한 첫 날, 바로 예약금을 걸고 투어일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보트를 타고 아드리아 해를 갈라 푸른 동굴이 있는 비세보 섬으로 간다.

 오전 8시 30분, 리바 거리에서 만나 작은 보트를 탔다. 하늘엔 구름이 잔뜩 껴 있었다. 혹여나 못 보는 것은 아닐까 걱정되어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바다 쪽은 지금 날이 맑다며 꼭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다. 가이드의 말이 맞았다. 보트를 타고 20여 분을 이동하니 햇볕에 눈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투어 일행은 단출했다. 캐나다에서 온 중년 부부, 스웨덴에서 온 커플, 대만에서 온 부부, 크로아티아 아저씨, 나까지 총 8명. 각자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비스 섬 서쪽의 무인도 비세보 섬(Biševo)의 작은 항구에 도착했다. 스플리트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다. 여기에서 더 작은 보트로 10분 정도를 더 가야 푸른 동굴에 닿는단다. 입장권을 받아들고 사공이 있는 보트로 옮겨 탔다. 딱 좋은 시간대였다. 푸른 동굴은 내부로 들어오는 태양빛의 양과 각도에 따라 그 색이 미묘하게 달라지는데 오전 11시에서 정오 사이가 가장 아름다울 시간대라고 한다. 푸른 동굴에 가까워질수록 기대감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푸른 동굴 입구. 파도가 조금만 높아도 들어 갈 수 없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동굴 내부.

 허리를 숙여 낮은 입구를 통과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내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동굴 전체와 물이 온통 파란색이었다. 차라리 컴퓨터 그래픽이라고 하면 믿겠다. 보트 두 대가 들어가면 꽉 찰 정도의 좁은 동굴 내부였지만 그랬기에 오히려 더 신비스러웠다. 내가 탄 보트 바로 앞 보트의 사공은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그 소년이 보트 앞머리에 서서 벽을 짚고 커브를 도는 모습은 놀이공원에서 보았던 신밧드 딱 그 자체였다. 여름 성수기에는 계속 다음 보트가 들어오기 때문에 동굴에서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10분이 찰나와 같이 느껴졌다. 항구에 돌아와 보니 파도가 갑자기 높아져 보트가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하늘이 도왔다. 돈이 많아도 시간이 넘쳐도 자연이 허락하지 않으면 못 본다는 푸른 동굴. 여름이어서 볼 수 있는 확률 자체가 높긴 했지만 감사하고 또 감사한 순간이었다.


나의 푸른 동굴 수집기, 그 첫 시작을 성공으로 장식했다.




 푸른 동굴 여행 정보


 - 찾아가는 길

 스플리트에서 비스 섬의 비스 마을(Vis)까지 페리로 2시간 20분이 걸리고 하루에 한 두 대 정도 운항한다. 푸른 동굴에 가려면 비스 마을에서 코미쟈 마을(Komiža)까지 버스로 이동한 후(20분) 코미쟈에서 보트를 타고 비세보 섬까지 가야 한다. 비세보 섬에서 푸른 동굴 티켓(40쿠나)을 산 후 더 작은 보트로 옮겨 탄다. 비스 마을의 버스 정류장은 항구 바로 앞에 있다.

 개인적으로 가기 위해서는 위의 루트를 이용하면 되고 여름 성수기에는 스플리트, 흐바르 타운 등에서 출발하는 당일치기 투어도 많다.      


- 둘러보기

 늦어도 오전 11시에는 비세보 섬에 도착해야 푸른 동굴이 가장 아름다운 때에 들어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 왔든 투어를 이용해서 왔든 푸른 동굴 내부로 들어가려면 무인도인 비세보 섬까지 가서 보트 택시를 타야 한다. 내부가 상당히 좁기 때문에 성수기에는 10분 이상 머무르지 않는다. 날이 흐리거나 파도가 높으면 동굴에 들어갈 수 없고 여름에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이 가장 높다. 봄이나 가을엔 들어갈 수 있는 확률은 낮아지지만 찾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내부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