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미석 Jan 11. 2016

오 나의 시칠리아, 그리고 팔레르모 1.

'Godfather'의 도시.

 아아, 자그마치 12시간에 걸친 여정이었다. 피사에서 팔레르모(Palermo)까지. 예정대로라면 7시간 전에는 도착해 숙소에 짐을 풀고 여유롭게 구시가를 한 바퀴 산책하고 다시 숙소로 들어와 숙면을 취하고 있어야 할 시간. 라이언 에어의 비행기는 무심하게 날 팔레르모 공항의 활주로에 내려주었다. 초행인 도시에 밤에 도착하는 일은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하물며 여기는 마피아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시칠리아가 아닌가! 숙소까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가다가 납치라도 당하면 어쩌지?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찾아왔지만 시내로 나가는 마지막 공항버스가 곧 출발한다는 말에 열일 제쳐두고 우선은 버스에 올라탔다.

 피사 공항에서 오후 2시에 출발해야 할 비행기는 자그마치 7시간이나 연착했다. 한두 시간의 연착에는 이미 익숙한 모양인지 이탈리아 인들 누구 하나 불평하지 않았지만 7시간은 정말 너무했다. 느긋한 한편 불같은 성격의 그들은 네 시간이 넘어가기 시작하자 목청껏 불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같은 이탈리아인인 승무원들 역시 만만치 않아 ‘비행기가 안 왔는데 우리보고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승객들에게 또박또박 대꾸를 해댔다. 이 아비규환 속에서 갑자기 게이트라도 변경되면 비행기를 놓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7시간 동안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화장실 한 번 못 가며 자리를 지켰고 밤 11시가 넘어서야 팔레르모에 도착했다.

숙소에서 바라본 팔레르모 항구의 모습.

 버스의 종점은 팔레르모 중앙역. 내가 예약한 숙소는 역에서 걸어서 15분 거리라고 했는데 역을 제외하고는 온 사위가 쥐 죽은 듯 고요한 도시 속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 것도 엄청나게 큰 용기를 필요로 했다. 결국 여행 처음으로 택시를 탔고 걸어서 15분이면 간다는 거리를 택시를 타고 15분을 이동했다. 택시비는 자그마치 15유로. 20유로를 건넸지만 잔돈이 없다며 능글맞은 웃음을 던지는 기사와 싸울 힘조차 없었다. 시칠리아의 첫 인상은 이걸로 결정.     


 장화 모양으로 생긴 이탈리아 반도의 발부리 바로 앞에 소담하게 놓여있는 시칠리아 섬.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이다. 혹자는 시칠리아를 ‘이탈리아의 축구공’이라고 표현했다. 딱 차기 좋은 위치에 놓여있는 이 섬 때문에 이탈리아 인들은 축구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해양 민족이었던 고대 그리스인은 이탈리아 본토보다 시칠리아 섬에 더 화려한 문명의 꽃을 피웠고, 한니발 전쟁 당시 로마 정치인 카토는 “이렇게 싱싱한 무화과가 바로 우리 코앞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라며 이탈리아와 북아프리카가 지리적으로 얼마나 근접해 있는지 강조했다. 그 사이에 덩그마니 놓인 시칠리아 섬은 첫 번째 포에니 전쟁의 격전지가 될 수밖에 없었고 세 번에 걸친 포에니 전쟁이 끝난 후에는 로마의 곡창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중해 한가운데 있기에 끊임없는 외적의 침입에 시달렸지만 온난한 기후와 비옥한 토양은 풍부한 농산물을 사방을 둘러싼 바다는 넘치는 해산물을 그들에게 주었다. 시칠리아 섬에 머무는 내내 코끝을 간질였던 달콤하고 새콤한 향, 그것은 오렌지와 레몬, 포도가 만들어내는 이 섬 특유의 냄새였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마피아. 이제 많은 마피아들이 대도시로, 해외로 빠져나갔다고는 하지만 ‘시칠리아는 마피아의 본거지’라는 인상은 언제까지고 이 섬을 따라다닐 것이다. 마피아가 나 같은 가난한 여행자를 상대해줄리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레 겁을 먹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 자정이 넘은 한밤중, 팔레르모 중앙역에서 내린 내 주변에 현지인들은 모두 날 노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낮에 만난 그들은 모두 친절하고 순박했다. 비록 택시 운전기사에게 가벼운 사기를 당하기는 했지만.


낡고 헤진 팔레르모 구시가의 골목.

 팔레르모에 도착한 다음날, 신시가에 있는 숙소를 나와 볼거리들이 모여 있는 구시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국의 태양은 어젯밤의 공포 따위 다 녹여버릴 듯 찬란하게 쏟아져 내렸고 우연히 들어간 빵집에서 만난 시칠리아 명물 그라니타(Granita)와 까놀리(Canoli)는 손톱만큼 남아있던 경계심마저 사라지게 해주었다. 그때까지 몰랐다. 설마 여기까지 와서 그것도 대낮에 총격전을 보게 될 것이라고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