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르막을 걸어 올랐고, 또 반대로 건너편에서 누군가 내리막을 내려오던 중이었다. 오른편에 놓여 있는 백색 가로등은 이마부터 탁한 물감처럼 빛을 들이부었다. 그의 손에 들린 작은 탄산음료와 햄버거가 보였다. 손이 모자라 장을 뜯을 적엔 이를 써서 결대로 물어 찢었다. 몹시 허기져 보였고, 또 그만큼 시간도 모자란 것 같았다. 정말이지, 쫓기듯 먹는 정도가 아니라 누군가에 약탈이라도 당하는 듯이 먹었다. 촉박하기보다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이 위태로운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손 주변을 거듭 살피는, 허기가 가득 밴 눈이 거슬렸다.
단지, 그는 좀 배가 고팠던 건데, 다른 게 아니라 그냥 길을 걸으며 먹고 있는 흔한 모습이란 말인데. 그게 또 이로 포장을 거칠게 뜯거나 걸음이 자주 길을 잃어버리자니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어찌해보자고, 어떻게든 해보려는 안간힘이 유독 사람을 연약하게 만든다. 그렇다고 보통 무엇을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스스로 허는 일 외엔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그래서 그를 눈으로 담을수록 마음이 아프고 아팠다.
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말들의 몸피를 버리는 것이 하나의 시라고 생각하는 편이니까. 그의 몸짓들에서 그렇게 버려진 말들을 차곡차곡 흘러나오는 중이었으니까. 아마 그는 시를 짓고 싶던 중일 거라고. 애초에 시는 말로 짓는 것이 아니니까, 불통의 멀미를 겪다 오는 것이니까. 그게 바로 시니까. 그는 불현듯 시를 쓰고 싶었던 거고, 마침 기다린 듯이 배가 성질을 좀 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시를 짓는 시인은 없으므로, 모든 시인은 잘 읽을 줄 아는 사람이므로. 좀 읽어보겠다고 한참을 떠 돌았다. 그는 벤츠같은 조형물에 앉아 체할 듯 먹었다. 급하게 입으로 채워 넣었으니, 분명 급하게 어디론가 걸음을 이을 거였다. 그의 등까지 마저 보겠다는 심정으로 주위를 한 번 더 돌았다. 그는 곧 단출한 식사를 마쳤지만, 자리를 뜨지 않았다. 허겁지겁 입으로 구겨 넣는 식사보다 더 오래 자리를 지켰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마음과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동시에 부풀다가, 그보다 먼저 내가 자리를 떠야 할 시간이 되었다. 그는 그때까지 앉아만 있었다. 어디선가 두꺼비 울음소리가 얕게 흘러왔다. 맑고 축축한 소리였다. 취한 듯 그 소리가 감미로워서 몇 번을 더 듣다가도 그의 뒷모습을 좇을 때면 썩 들을만한 것이 못 되었다. 소리가 그의 등에서 피는 것만 같았다.
누군가의 모습이 등으로만 기억되는 건 참 슬프다. 더구나 그 등이 얼굴은 보았지만, 눈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이의 등이라면 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