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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 궁금하죠?

by 이음

“다온이 아빠는 직영이죠? 어느 부서에서 일해요?”

“아니요, 신랑은 협력업체 소속이에요.”

“아, 네에...”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힐끗거리는 눈길과 당황한 표정들이 불편하게 오갔다. 말끝을 흐리며 “네에”라고 하지 않았다면, 이 찜찜한 기분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말은 나와버렸고, 분위기는 냉동실이다.


남편이 조선소 협력업체에서 일한다는 건 결혼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게 뭐 어때서?’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동네가 조선소 근처다 보니, 이런 이야기가 많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모임에서 제외되기 전까지는. 웃어넘기려 했지만, 잘못한 것도 없는데 소외된 기분이 영 꺼림칙했다. 당황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속이 꾸역꾸역 뒤틀렸다. 숟가락을 들다 말고 허공을 쳐다보며 부글부글 끓는 속을 식혔다.

“사랑이 엄마는 건강검진 언제 받아요?”

그 질문의 의도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규직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우회적인 질문이었다. 민감한 주제를 직접 묻지 못하는 사람들은 배우자의 건강검진을 통해 간접적으로 답을 얻으려 했다. 비정규직은 이러한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도라면 분명 그건 대화가 아니라, 선을 넘는 탐문이다.


이곳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는 단순한 직업 구분이 아니었다. 사람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선이 있었고, 그 선을 넘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운 줄타기가 이어졌다. 불평등은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조선소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곳에서는 그 경계가 더 뚜렷했다. “그게 왜 그렇게 궁금하죠?” 반문하고 싶었다. 남편이 정규직에 화이트칼라라고 자랑할 때마다, ‘남편 말고, 네 이야기는 없니?’라고 속으로 되묻곤 했다. 때로는 그들의 질문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과민반응인 건지, 자격지심인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무게로.


2020년 기준, 거제 조선소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약 68%가 비정규직이다. 조선소가 주로 프로젝트 기반으로 운영되다 보니, 수주에 따라 일감이 많이 변동되기 때문이다. 회사는 인건비를 줄이고, 경기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선호한다. 숙련공의 손길이 부족해지고 있지만, 그 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고용 안정성은 물론, 급여나 성과 보상에서도 불이익을 받는다. 같은 일을 해도 그들의 급여는 더 낮고, 보너스나 인센티브는 거의 기대할 수 없다. 정규직은 연차 휴가, 유급 병가, 복지 포인트, 명절 선물, 자녀 학자금 지원 같은 혜택을 누리지만, 비정규직은 이런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제한적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직무 교육, 해외 연수, 자격증 취득 지원 같은 기회 역시 정규직의 몫이다.


조선소에서의 일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고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들은 특히 더 위험한 작업에 투입된다. 계약이 끝나면 일자리를 잃을 위험이 크기 때문에, 위험한 일을 맡아도 쉽게 불만을 말할 수 없다. 예전엔 정규직이 하던 배의 페인트칠 같은 도장 작업도 이제는 거의 비정규직의 몫이 되었다. 유독한 페인트와 화학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큰 작업이다. 생계를 위해 위험을 떠안아야 하는 현실에 심장이 구겨진다.


어느 날, 오후 2시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불길했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가.

“자기, 나 지금 병원인데... 일하다가 좀 다쳤거든. 심한 건 아니고, 간단한 수술만 하면 된다네.”

“뭐? 어디를?! 얼마나?!”

남편의 침착한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심장은 쿵쾅거렸다. 손가락 사이로 0.5mm 두께의 철심이 10cm 깊이로 박혔다니, 머리가 하얘졌다. 딸아이를 안고, 회사 지정 병원으로 다급히 달려갔다. 꽉 잡은 핸들에 손톱은 보랏빛으로 변했고, 손끝의 감각도 사라졌다.


2시간이면 끝난다는 수술실 문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진작에 그만두게 했어야 했는데...’, ‘혹시 잘못되면 어떡하지?’ 염려와 자책이 뒤섞여 시간은 더디게만 흘렀다. 번갈아 찾아오는 무기력함과 두려움을 애써 숨기며 딸아이에게 웃어 보였지만, 속은 울렁거렸다. 마침내 수술실 문이 열렸다. 하얀 붕대를 감은 손을 높이 들어 보이며 그가 웃었다. 내가 딸아이에게 보여주었던 웃음처럼.


“조심 좀 하지! 출근할 때마다 불안해서 못 살겠다! 손가락 못 쓰면 어쩔 뻔했노?!”

안도감과 함께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은 엉뚱한 방식으로 튀어나왔다. 떨리는 목소리에 남편은 아무 말 없이 어깨를 감싸안았다.

“손 다 나을 때까지는 쉬는 거제?”

“그래야지.”


다음 날, 수술이 끝난 지 24시간도 채 되지 않아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출근하라는 말이었다. 사고 조사를 위해, 작업 환경과 안전 조치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일 것이다.

“산재 처리도 안 해준다면서, 왜 아픈 사람한테 출근하라고 난리고?!”

분노가 치밀어, 애먼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다리에 깁스해도 출근하라고 할 판이네! 당장 때려치워라!”

사표를 쓰라는 으름장에도 그는 아무런 대꾸 없이 현관문을 열었다. 문밖으로 사라지는 그의 두 발을 시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산재보험을 적용하면 보험료가 오르고, 회사의 안전 관리 문제도 드러날 수 있다. 공상 처리는 공식 기록에 남지 않아 이런 위험을 피하는 방법이다. 협력업체는 원청과의 재계약을 위해 산재 사고 기록이 남지 않기를 원한다. 드러난 사고는 빙산의 일각일 뿐, 은폐된 사고가 훨씬 더 많다는 생각에, 머릿속에 갑자기 차가운 물방울이 떨어지는 듯했다. ‘남편이 정규직이었다면 이런 취급을 받지 않았을 텐데.’ 마음이 더욱 쓰렸다. 분노와 서러움, 실망과 억울함, 좌절과 혼란, 적대감까지. 복잡한 감정이 나를 삼켰다. 이때부터다. 남편에게 퇴사를 적극적으로 권하기 시작한 게.


뿌리박힌 편견은 위기 때 더 선명해지는 법이다. 코로나로 온 세계가 떠들썩 한 시기였다.

“이래서 식당을 따로 써야 한다니까.”

무슨 말인가 했다. COVID-19에 처음 걸린 사람이 협력업체 직원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사람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식당을 분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적 불평등을 넘어, 사람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얼마나 깊은지, 묵직함이 내려앉았다.


이러한 불평등은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 비정규직 아빠를 둔 아이들은 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주저하거나 숨기곤 한다. 그 조심스러운 침묵은 학교생활과 친구 관계에까지 그림자를 드리운다. 어른들이 만들어낸 불평등이 아이들에게까지 닿는다는 사실. 미안함과 책임감이 교차한다. 부디 이 문제를 방관하지 않기를. 어른들의 침묵이 아이들의 삶을 흔들지 않기를.


이곳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불평등이라는 구조적인 문제에 오랜 시간 좁힐 수 없는 거리감을 느꼈다. 남편이 비정규직이라 더 예민하게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언컨대, 그가 정규직이었다 해도 내 생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근로자가 공정한 대우를 받고,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며, 정당한 보상을 받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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